임은혜 기자의 밀착 르포/ 트랜스젠더 24시


쉬메일, 시디, 탑, 시디분구, 부치…그들만의 용어
곱지 않은 시선, 사회적 외면에 우는 성적 소수자

뭐든 처음이 어렵다고 했던가. 하리수가 처음 트랜스젠더라는 이름으로 연예계에 데뷔했을 때 우리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었다. 그러나 얼마 전 여성스러운 남성연기자로 잘 알려진 이대학이 이시연이라는 트랜스젠더로 돌아왔을 때 우리사회는 조금은 너그러워진 시선으로 그녀를 받아들였다. 음지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성적소수자들이 점점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그들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트랜스젠더와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진솔한 얘기를 들어보고, 그들의 일상을 취재해봤다.

성적소수자들, 전문사이트서 활발한 정보공유
지난 3월 17일 저녁 8시경. 트랜스젠더를 만나보기 위해 한 사이트를 찾았다. 이곳은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성적소수자들을 위한 사이트였다. 역시 회원가입이 이루어져야 모든 메뉴를 이용할 수가 있었다. 좀 더 편리한 이용을 위해서는 소액결제도 해야 했다. 기자는 간단한 절차에 맞춰 회원가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만남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게시판에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많은 정보들이 게재돼 있었다. 얼굴, 가슴, 성전환수술에 관한 정보와 호르몬제를 구한다는 내용들도 눈에 띄었다. 또 만남을 원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자신들의 성향과 사진, 전화번호도 서슴없이 남겼고 예쁘게 치장한 사진은 물론 여성이 보아도 부러울 만큼 늘씬한 몸매와 외모를 가진 트랜스젠더들도 많았다.
그런데 난생 처음 보는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만의 언어에 잠시 당황한 기자는 열심히 단어공부를 해야 했다. 게시판에는 ‘00에 사는 쉬메일입니다. 연락주세요’ ‘탑이나 시디분구해요’ ‘부치, 팸 둘다 가능합니다’ ‘바이에요. 애인 구해요’ 등등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가 수두룩했다.
알아보니 모두 정식 명칭은 아니었고 줄임말이나 은어·비속어에 속하는 단어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쉬메일(shemale)은 원래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이 되기 위해 가슴성형을 해 양성(兩性)을 다 가지고 있는, 수술이 덜 된 트랜스젠더를 뜻했고, 시디는 Cross Dresser의 줄임말로 남성이 여성처럼 옷을 입거나 화장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지칭했다. 게이와 레즈비언들도 그들의 역할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각기 달랐고 그래서 단어들이 생소했던 것이다.

2차성징, 성추행에 여성되기로 결심
트랜스젠더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한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상대 트랜스젠더는 한껏 여성스러운 목소리를 뽐내며 전화를 받았다. 엄청 반기는 눈치였다. 그녀는 서울에 살고 있으며 타지생활이 외로워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는 트랜스젠더는 아니지만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녀는 약간 실망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내 “순수한 마음이면 좋아요. 난 신지(가명)라고해요. 술 한잔 할래요?”라며 자신은 22살이며 아직 완전히 수술을 하지 않은 ‘쉬메일’ 상태라고 했다. 신촌에서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약 30분 후 기자와 신지는 한 호프집에서 만날 수 있었다.
긴 생머리에 웨이브 진 머리, 진한 화장을 한 그녀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늘씬한 몸에 175Cm의 키를 자랑하며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가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여성스러운 제스처는 하리수를 떠올리게 했다. 연신 줄담배를 피우는 그녀와 통성명을 하고 서로의 출신과 현재의 직업, 가족관계 등을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었다. 미리 취재라고 얘기하지 않으면 그녀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 기자는 실제의 나이와 직업을 말했다. 처음에는 살짝 거부감을 보이던 그녀도 이내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놨다.
그녀는 대구에서 고교를 중퇴하고 인천, 부산 등을 돌아다니며 유흥업소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전국을 떠돌아다니다보니 친구들이 별로 없다. 같은 업소에 다니던 젠더들은 대부분이 동거를 하거나 마음이 맞지 않아 혼자 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녀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나이 차이가 많은 누나를 따라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으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고 했다. 누나는 점점 여성스러워 지는데 자신은 수염이 나고 목소리가 굻어지는 등의 2차 성징이 나타나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그녀는 남학생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여성잡지와 포르노를 보면서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자신이 남자인 것이 혐오스럽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고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초에는 여성스러운 자신에게 같은 반 학생들이 성추행을 하는 등 괴롭히기 시작했고, 이를 견디다 못해 학교를 뛰쳐나와 지금껏 가출한 상태라고 했다. 그녀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수술비 마련이 버거워 아직 남성을 가지고 있지만 조금만 더 고생하면 여성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기자는 그녀와 같은 트랜스젠더들의 일상생활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녀는 “자주 주사를 맞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여성적인 면을 타고난 젠더들은 일반 직장을 다닌다. 법적인 문제도 요즘에는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몸은 여성이지만 호적이 남성인 경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런 경우는 호적이 정리될 때까지 트랜스젠더바나 젠더와의 잠자리를 즐기는 남성들에게서 성을 팔아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한다”고 전했다.
그녀 역시 업소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기자와 만난 날은 휴무였고 집에서 사이트에 접속해 있다가 전화를 받고 나온 것이었다.
22살의 어린 나이에 이런 현실을 감당하기에는 힘겨워 보였다. 그녀는 말을 하다가 가끔씩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여성으로 살아가고 싶은 그녀에게 남성의 외모와 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여성으로 살고 싶어 일주일에 한번 맞는 호르몬 주사를 스스로에게 주사하고, 예쁜 얼굴을 갖기 위해 천여만 원을 들여 성형수술을 했어도 아프지도 아깝지도 않다고 했다. 그녀의 꿈은 오로지 완전한 여성이 되는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단란한 가정을 꾸려 당당한 모습으로 살고 싶다고 말하며 술기운을 빌려 펑펑 울기도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비운 술이 점점 늘어났다. 어느새 언니 동생하며 진지한 얘기들을 나누며 다음 만남을 기약하기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트랜스젠더 바 화려한 쇼까지
다음날. 신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맙게도 “과음했을텐데 괜찮은지 걱정이 돼 전화했다. 취재차 만났는데 술을 마셔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으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봐도 된다”며 안부전화를 한 것이다.
기자는 “신지가 일하는 곳이 궁금하다. 그 곳에 취재를 가도 괜찮겠느냐”며 의사를 물었다. 그녀는 조금 망설이더니 “이 곳은 마담언니가 있어 허락을 받아야한다. 아마도 술을 마시러 온다면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술값이 만만찮다”며 술값을 얘기해줬다.
이태원의 한 바에서 일한다는 그녀는 “500ml 양주세트에 30만원~40만원으로 술값이 만만치 않으니 조금 저렴한 곳을 추천해주겠다. 말만 잘하면 가격은 좀 더 할인 되지만 그다지 고급스러운 트랜스클럽은 아니다”라며 위치와 술값 등을 일러줬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니 술을 마시며 취재를 해야 응해줄 것 같다. 다른 손님들도 있는데 취재한다고 그냥 앉아있으면 눈치를 줄 것이 뻔하니 양주 한 병 먹으며 언니들하고 친해지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신당동에 위치한 한 트랜스젠더바에 동료 여기자와 방문했다.
외진 곳에 있어서인지 업소 오픈 시간이 꽤 늦었다. 저녁 10시가 돼도 간판불은 꺼져 있었다. 옆 호프집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신지 30분쯤 지났을까. 2명의 여성이 셔터를 열었다. 동료기자와 함께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한 트랜스젠더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녀는 “신지한테 얘기 들었어요. 잘 왔어요”라며 메뉴판을 건넸다. 맥주세트와 양주세트가 있었다. 양주 가격을 보니 이태원 보다는 10만원 정도 저렴했다. 국산 양주 500m에 20만원 선이었다. 물론 맥주와 음료, 마른안주 등이 서비스 되는 금액이었다. 기자는 양주를 시켰다.
어느새 다른 트랜스젠더 3명이 출근해 홀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클럽 안에는 3개의 테이블이 있었고 구석 진 곳에 커튼이 쳐지는 작은 룸이 있었다. 중앙에는 노래방 기기가 설치돼 있었다.
어느새 의상을 갈아입은 트랜스젠더들이 다가왔다. 각자 서로를 소개했다. 마담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신비(35)는 아주 깡마른 몸매였다. 얼굴과 몸은 모두 성형이 된 여성이었고 이곳을 운영한 지는 2년 쯤 된다고 했다. 또 다른 여성은 딸기(28)라고 했다. 역시 전신 성형으로 여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기자와 동갑내기라며 말을 트고 편하게 지내자고 제안해 왔다. 세 번째 여성은 자신을 은희(32)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게 평범한 예명이었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이기도 했고 다른 트랜스젠더들과는 달리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마지막 네 번째 여성은 아주 앳된 모습의 유키(25)였다. 그녀는 아직 수술을 다 마치지 못해 양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약간은 일본 여성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로 귀여운 이미지가 물씬 풍겼다.
공교롭게도 기자팀이 첫 손님이었다. “트랜스젠더바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 찾아왔다”고 말하자 그쪽에서 화제를 이끌었다. 이에 신비는 “오늘 놀아보면 안다. 일단 맨 정신에는 아무것도 못하니까 술부터 마시자”며 적극적이었다. “영업을 해야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일단 매출을 올려 줘야 쉽게 취재에 응한다”고 전화통화로 충고를 해줬던 신지의 말이 생각났다. 부담감이 생기긴 했지만 곧 술잔이 오고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옆에 앉아 있던 트랜스젠더들이 한 명씩 사라지는 가 싶더니 어느새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휘황찬란한 의상들을 입고 나타났다. 기자는 깜짝 놀랐다. 만화캐릭터 의상부터 일반인들은 입지도 못할 아찔한 옷, 가발, 여러 가지 소품 등으로 한껏 멋을 내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노출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슴은 거의 노출돼 유두가 보였고 등과 엉덩이 노출은 기본이었다.
또 그녀들은 입은 의상대로 제스처도 달리했다. 이미지에 맞게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과연 이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걱정이 앞섰지만 직원들의 쇼에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2~3시간을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그들과 진지한 대화를 하기가 어려웠다.
양성을 가진 은희의 슬픈 과거
한참 음주가무가 오가던 중 유독 표정이 어두워 보였던 은희가 술을 연거푸 들이키기 시작했다. 술기운이 올랐는지 묻지도 않는 질문에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과거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아라고 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고아원으로 갔다가 해외로 입양이 됐었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여성스러웠던 그녀에게 관심을 보인 것은 그녀의 형이었다. 그는 그녀의 방을 찾아와 성폭행하고 부모님께 사실을 알리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두려움에 떨던 그녀는 집을 뛰쳐나와 거리를 전전했다. 노숙자 생활 등 방황하던 그녀는 문득 부모님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향했고 여성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이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비록 아직까지 부모님을 찾지 못했지만 완전한 여성이 되면 찾을 것이라고 한다. 부모님을 만나고 나면 수녀가 돼 자신처럼 버려진 고아들을 돌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괴롭다며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스스로 아무리 여성이라고 세뇌해도 곱지 않은 시선과 외면은 상처로 돌아와 가슴에 박혀버렸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슬픔도 잠시. 어느덧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세 명의 남성이었다. 그들은 단골손님이었는지 들어오자마자 직원들이 달려가며 맞아주었다. 양주세트가 주문되어지자 기자들과 함께 있던 트랜스젠더들이 남성들의 테이블로 인사를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커튼을 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이들의 퇴근시간은 새벽 5시 정도였다. 힘든 일과를 마친 그녀들은 식사를 하고 모두 목욕탕으로 향할 것이라고 했다. 화요일이었는데 손님은 단 두팀 뿐이었다. 기자는 실례를 무릅쓰고 매출이 어떻게 되는지 질문했다. 그러자 “매출이 없으면 어떻게 장사를 하겠느냐. 오늘처럼 안되는 날이 있으면 잘되는 날도 있다. 인건비와 월세를 빼고도 수익이 적지 않다”고 말해줬다.
밖에서는 동이 트는지 비가 오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업소는 지하였고 실내는 자욱한 담배연기와 술냄새가 진동했다.
체험 취재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성적 소수자들이 떳떳하게 활보하지 못하고 변변한 직업조차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양성을 가지고 있던 유키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인간처럼 살고 싶어도 제대로 된 성(性)이 없어 그러지도 못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양성을 다 가지고 있어야한다. 충분히 쓸 만큼 돈을 벌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성전환수술을 하고 나면 생계가 어렵다. 오로지 돈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 싶어, 죽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트랜스젠더 생활의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설명해줬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