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는 앞서 [18살 홀로서다] 기획을 통해 보호종료아동 자립 문제를 고찰했지만, 이들이 왜 자립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면을 할애하지 못했습니다. 혹자들은 보호종료아동 문제의 본질을 살피기 위해서는 그 이전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보호종료아동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는 보호대상아동이라고 불렸습니다. 본지는 이 땅에 어떤 아동도 소외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보호대상아동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습니다. -편집자주-

영화 ‘크루엘라’ 스틸 컷. 주인공 에스텔라는 보호대상아동이지만,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면서 자랐다. (사진=DAUM 영화)
영화 ‘크루엘라’ 스틸 컷. 주인공 에스텔라는 보호대상아동이지만,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면서 자랐다. (사진=DAUM 영화)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1960년대 중반 영국 소녀 에스텔라는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통통 튀는 성격의 에스텔라는 학교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해 중퇴를 해야 했고,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 이른 나이에 혼자가 된 그는 당시 영국에서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일명 ‘보호대상아동’이 됐다. 

에스텔라는 자신과 같은 보호대상아동 친구들과 런던의 한 버려진 폐건물에서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할 나이였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 다행히 에스텔라는 강한 정신력과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성공을 위해서는 악역을 자처하기도 했다. 결국 성년이 된 후 ‘크루엘라’라는 이름으로 성공을 거뒀다. 현재 흥행 중인 영화 ‘크루엘라’의 이야기다.

하지만 당시 영국의 보호대상아동들이 전부 에스텔라처럼 사회적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부분은 버려진 건물에서 비인간적인 삶을 지속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보호대상아동 복지 선진국이라 불리는 현대 영국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1960년대의 수많은 에스텔라들이 21세기 영국에서 성장기를 보냈다면 어땠을까.

보호대상아동 복지 선진국인 영국을 상징하는 2층 버스와 국기. (사진=픽사베이)
보호대상아동 복지 선진국인 영국을 상징하는 2층 버스와 국기. (사진=픽사베이)

영국, 지자체가 보호대상아동 부모 역할

영국은 보호대상아동 대다수는 보육원과 같은 아동양육시설보다 위탁 가정에서 자란다. 영국 의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지방자체단체가 돌보는 18세 미만 보호대상아동은 약 8만 명. 이들 중 5만 7천여 명이 위탁 가정에서 자란다. 아동양육시설이나 기타 치료 센터 등에서 자라는 아동들을 합하면 약 1만 5천 명으로 위탁 가정 거주 아동 수에 한참 못 미친다. 보호대상아동 상당수가 시설에서 자라는 한국과는 차이가 매우 크다.

한라대학교 장영인 교수가 지난달 발표한 『아동의 ‘원가정보호’와 ‘가정내양육’에 대한 국가지원 확대 방안』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1989년 제정된 아동법을 근거로 공적인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이 있을 경우 누구나 지자체의 아동 담당부서(Children Services)에 의뢰할 수 있다. 따라서 에스텔라가 현대 영국에서 성장기를 보냈다면, 위탁가정에서 보호받으며 자랐을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정인이 사건 같은 비극이 일어날 일도 적다. 만약 에스텔라가 위탁가정에서 갈등을 겪는다면 독립검토관(Independent Review Officer)’ 제도를 받을 수 있다. 덕성여자대학교 정선욱 교수가 지난 2018년 발표한 『아동양육시설 보호대상아동에 대한 양육 상황 점검 계획의 문제 및 개선방안』은 독립검토관을 보호대상아동들이 위탁 가정이나 시설 등에서 제대로 보호받는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사람이라고 요약했다. 이들은 대리 양육자와 아동 사이 갈등을 중재하고, 필요시 아동의 법적 대리인으로 나선다.

논문은 “(독립검토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능력은 지방 당국이 보호 중인 아동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 못할 때 고위 간부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라며 “이처럼 독립검토관은 양육 상황 점검 과정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보호대상아동의 편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옹호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영화 ‘크루엘라’ 스틸컷. 성년이 된 에스텔라는 이름을 바꾸고 성공 가도를 달린다. (사진=DAUM 영화)
영화 ‘크루엘라’ 스틸컷. 성년이 된 에스텔라는 이름을 바꾸고 성공 가도를 달린다. (사진=DAUM 영화)

보호대상아동 복지, 어디까지 왔나

에스텔라가 21세기 영국에서 자랐다면, 지자체의 보호를 받으면서 성장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보호대상아동 복지 선진국에서 영국 아동법에 따라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며 자란 에스텔라는 영화 속 통통 튀는 ‘악당’ 크루엘라가 아닌 인간 에스텔라로 살면서 사회적 성공을 달성했을지도 모른다.

영국이 약 반세기 간 소외받는 아동들을 위해 복지 제도를 정비하는 동안 한국에서도 발전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한국 전쟁 이후 발생한 전쟁고아들을 위한 시설 보호로 아동복지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는데, 1961년 시설 아동 보호 중심의 ‘아동복리법’이 제정됐다. 아동복리법은 1981년 ‘아동복지법’으로 이름이 변경돼 무수한 개정 과정을 거쳤다. 국가가 보호하는 아동 범위도 전쟁고아에서 전체 아동까지 확대됐고, 보호대상아동의 개념도 정립됐다.

하지만 <뉴스포스트>의 지난 취재 결과 국내의 보호대상아동들은 여전히 국가의 세심한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가 부모를 만날 수 있는 당연한 민법상 권리인 ‘면접교섭권’은 보호대상아동들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은 실정이고, 보호대상아동들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도 여전했다.

다행히 최근 수년간 ‘보호종료아동’의 자립 문제가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이들에 대한 각종 복지 정책이 만들어졌다.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전 단계인 보호대상아동에 대한 정책적 노력도 함께 이뤄질지 기대가 모인다. 영국과 같은 복지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하거나, 보호대상아동에 대한 국가 책임 의무에 대해 깊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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