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인구 100만명’ 육박하는 강남의 대동맥 강남대로

[뉴스포스트] 얼마 전 지상파와 인터넷 매체에서 강남역 인근을 뉴스로 다뤘다. 언제나 호황이었던 강남대로에 공실이 된 점포가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강남대로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과거 IMF와 글로벌 금융 위기 시절에도 강남역 인근은 복작였다.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강남대로는 지하철 노선들과 경기도 곳곳을 이어주는 버스 노선들 덕분에 유동인구가 많다. 물론 회사도 많아 상주하는 직장인들이 많기도 하다.

이들 유동인구와 상주인구를 겨냥한 상권도 계속 활기를 띠었다. 트렌드에 따라 간판은 계속 바뀌었지만 강남대로 주변 건물 1층에는 패션이나 화장품 매장이, 2층에는 식음료 매장이, 3층 이상에는 각종 병원이나 학원이 들어서기를 반복했다. 

언제나 호황일 듯한 강남에 공실이 생긴 것이 뉴스가 될 만큼 강남은 상징적인 곳이다. 

(2021. 07. 05) 서울 강남대로의한 빌딩. 1층과 2층이 공실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05) 서울 강남대로의한 빌딩. 1층과 2층이 공실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계획도시 강남은

강남대로는 총연장 6.9km의 왕복 10차로 도로이다. 한남대교에서 신사역, 논현역, 신논현역, 강남역, 그리고 양재역을 지나 염곡사거리까지 연결된다. 이름에 ‘강남’이 붙었지만 도로의 절반 이상은 서초구 지역을 지난다. 대략 강남대로 동쪽이 강남구이고 서쪽이 서초구다. 양재역부터 염곡사거리까지는 양쪽 모두 서초구에 속한다.

강남대로는 강남구와 서초구를 나누는 경계이지만 예전에도 행정구역을 나누는 경계였다. 1963년에 한강 남쪽 지역이 서울에 편입되었을 때 지금의 강남대로 동쪽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 서쪽은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에 속했었다. 서울로 편입되었을 당시 강남 지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962년 한남 나루의 모습. 신사동과 한남동을 연결했다. 강 건너 신사동과 잠원동의 미류나무가 보인다.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1962년 한남 나루의 모습. 신사동과 한남동을 연결했다. 강 건너 신사동과 잠원동의 미류나무가 보인다.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1962년의 한남 나루. 강 건너 멀리 삼성산이 보인다.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1962년의 한남 나루. 강 건너 멀리 삼성산이 보인다.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한남동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모래사장에 도착해. 모랫길을 조금 걸으면 시골길이 나와. 지금의 신사역 인근일 거야. 거기서 한 시간 정도 걸으면 말죽거리가 보이지.”

오래전에 들은 친구 아버지의 이야기다. 그분은 1960년대에 말죽거리 인근에서 채소를 키웠다. 당시 강남 지역은 거의 농촌이었는데 주로 서울에 채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한남대교가 들어서기 전 한남동과 신사동을 잇는 나루에는 채소를 실은 리어카와 나룻배로 붐볐다고. 

“그때 서울에서 차를 타고 말죽거리에 오려면 한강대교를 건너 흑석동과 동작동 국립묘지를 지나 험한 흙길을 달려야 했지. 서울 버스는 국립묘지가 종점이었어. 동작동에서 말죽거리를 가는 버스가 있긴 했는데 (편성이) 한 대뿐이라 기다리기 보다는 그냥 걷거나 웃돈 주고 택시를 타곤 했어.”

친구 아버지의 회고다. 서울로 편입되었어도 도심의 배후 역할도 하지 못한 강남이 오늘날 강남이 된 계기가 있었다. 제3한강교(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 건설 덕분이다.

한남대교 건설은 외졌던 강남 지역을 서울 도심과 빠르게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 1966년 한남대교가 착공되었을 때만 해도 강북과 강남을 잇는 다리는 한강대교와 서울 서쪽의 양화대교, 그리고 서울 동쪽 끝 광진교만 있었다. 광진교가 지나던 천호동 인근이 강남보다 먼저 번화하게 된 이유다.

1969년에 완공된 제3한강교. 지금의 한남대교. 강 건너로 유엔빌리지와 멀리 타워호텔이 보인다. (출처: designers;arty 페이스북)
1969년에 완공된 제3한강교. 지금의 한남대교. 강 건너로 유엔빌리지와 멀리 타워호텔이 보인다. (출처: designers;arty 페이스북)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강남 지역의 부동산 지형을 바꾼다. 고속도로와 배후 시설 용지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토지구획정리 사업을 통해 농지와 산에 선이 그어지면 그곳은 도로가 되거나 택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남대로와 연결되는 강남대로 부지도 확보된다. 

경부고속도로 서울에서 수원 구간이 1968년 12월에, 한남대교는 1969년 12월에 완공된다. 두 대형공사의 완성으로 강남 지역이 발전하게 된 계기도 함께 완성된다. 

한편 한남동과 신사동이 한남대교로 연결되자 한남 나루의 뱃사공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경향신문 1972년 12월 11일의 <서울의 새길따라 달려본 今昔風物(금석풍물)’>기사에서 한강 다리 건설로 바뀌게 된 풍경을 묘사하며 한강의 나루터와 뱃사공들이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진 것을 아쉬워한다.

현재 한강 다리가 있는 곳은 거의 나루터였고, 나룻배는 강남과 강북을 이어주는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이었다.

1983년 즈음의 강남대로. 우성아파트 네거리에서 강남역 방향. 오른쪽 멀리 국기원이 보인다.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1983년 즈음의 강남대로. 우성아파트 네거리에서 강남역 방향. 오른쪽 멀리 국기원이 보인다.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강남은 격자형 도시다. 구릉과 시내 등 자연의 굴곡을 이용해 들어선 강북 도심과 달리 강남은 자로 선을 긋듯 반듯한 도시로 자라난다. 강남 곳곳을 이어주는 도로들이 혈관이라면 강남대로는 대동맥과도 같았다. 강남 지역에 활기를 불어주는 역할을 했다.

격자형 도시 구획은 누군가 의도한 계획이었겠지만 강남대로 주변의 상권 성장은 사람들의 흐름과 선택에 맡긴 자연스러운 변화였을 것이다. 강남역 인근 대로변 양측은 오래도록 병원과 학원, 그리고 패션과 식음료 상권이 형성되었다. 그에 못지않게 이면도로에도 입소문 난 맛집 골목들이 생겼다.

이런 풍경을 강남을 디자인한 사람들이 의도했을 리는 없다. 197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인구변동, 부동산 정책, 교육 환경, 경제 상황 등 다양한 여건들이 현재의 강남 상권을 만들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건축학 교수인 유현준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지금 도시의 구성들은 마치 자연 발생한 유기체의 모습과도 같다”고 한 표현이 딱 들어맞는 듯하다.

강남 현재는, 그리고 미래는

강남역에서 신논현역 사이를 걸으며 건물들을 살펴보았다. ‘임대’ 안내가 붙은 건물이 여러 곳 있었다. 강남대로의 중앙버스정류장 앞 건물 1층과 2층에 붙은 임대 안내가 특히 눈에 띄었다. 예전에 ‘유니클로’가 있던 자리였다. 신논현역 인근에는 건물 전체가 임대로 나온 곳도 있었다.

(2021. 07. 05) 서울 강남대로의한 빌딩. 유니클로가 있던 곳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05) 서울 강남대로의한 빌딩. 유니클로가 있던 곳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05) 서울 강남대로의한 빌딩. 건물 전체를 임대 물건으로 내놓았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05) 서울 강남대로의한 빌딩. 건물 전체를 임대 물건으로 내놓았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강남 지역의 공실을 다룬 뉴스와 기사들은 부동산 관점과 경제 관점에서 분석을 내놓았다. 주로 부동산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강남역이 있는 강남대로는 시절을 막론하고 세태와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그런 강남대로 주변의 지난 수십 년간 풍경은 계속 바뀌었다.

교보생명사거리는 한때 제일생명사거리로 불렸다. 제일생명은 국내 4위의 보험사였으나 IMF 여파로 독일의 알리안츠 그룹으로 넘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일생명 빌딩은 강남대로의 상징적인 건물이었다. 하지만 2003년에 교보생명 빌딩이 들어서자 상징은 물론 사거리의 지명까지 넘겨준다.

한때 뉴욕제과와 타워레코드가 강남역을 대표하는 약속장소이기도 했다. 뉴욕제과는 경영난으로 1998년에 건물을 매각했고 회사는 2000년에 최종 부도 처리되었다. 타워레코드는 음악을 소비하는 패턴의 변화로 매출이 부진해 2000년에 폐업했다. 이후 그 자리들은 다른 매장들로 대체되기를 반복했다.

이렇듯 상징적인 곳이 계속 바뀌는 강남역 인근 강남대로에는 시대에 따라 트렌드에 따라 각종 시설이 끊임없이 들어선다. 강남대로와 강남역은 그만큼 유동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2021. 07. 05) 서울 강남대로를 지나는 모든 지하철 노선과 버스 노선 이용자를 합치면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건널목 왼쪽 건물에 타워레코드가 있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05) 서울 강남대로를 지나는 모든 지하철 노선과 버스 노선 이용자를 합치면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건널목 왼쪽 건물에 타워레코드가 있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1970년 초 한남대교를 건너 강북 도심까지 가는 한 개의 버스 노선을 신설한 이후 강남대로를 지나는 버스 노선은 계속 늘어난다. 지금은 서울 전역은 물론 경기도 곳곳을 연결하는 광역버스 노선도 많다. 1982년에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이 생기자 강남대로는 교통요지로 자리 잡는다. 2011년에 신분당선이 연결된 후로는 더욱 사람이 몰린다. 

코로나19 상황이었던 지난 2020년에 강남역 하루 이용자가 약 17만명으로 줄어들었지만 그 전에는 하루 평균 23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여기에 서울 전역은 물론 경기도 곳곳을 연결하는 버스 이용자까지 합치면 유동인구는 엄청날 것이다. 강남대로를 지나는 다른 지하철 노선까지 합치면 하루 유동인구가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이들을 강남대로를 스쳐 가는 행인으로만 머물게 한다면 그것은 불경기 탓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경제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사람들을 사로잡는 곳은 언제나 성황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빈 매장이 늘어간다면 강남대로를 지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다른 거리나 재미난 골목이 생긴 탓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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