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이 흐르고 드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졌던 광나루 유원지

1960년대 광나루 유원지.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1960년대 광나루 유원지.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강의 옛 사진을 검색하는데 흥미로운 사진이 눈에 띄었다. 드넓은 백사장과 줄 맞춰 세운 천막들, 그리고 물놀이 즐기는 사람들. 얼핏 보았을 때는 어느 해수욕장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진 설명을 보니 1960년대 서울 한강의 광나루 유원지였다.

한강이 지금의 모습으로 된 건 1980년대의 ‘한강종합개발사업’ 덕분이다. 그전의 한강은 강수량이 조절하는 자연 그대로의 굴곡으로 흘렀고, 상류로부터 흘러내려 온 퇴적물과 모래가 쌓여 백사장이 된 곳이 많았다. 각종 행사 장소로 쓰일 정도로 넓은 곳도 있었다.

1956년 5월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신익희 후보의 유세가 ‘한강백사장’에서 열렸다. 당시 신문기사들은 20만에서 30만이 넘는 청중이 모였다고 전한다. 한강백사장은 지금의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즈음인데 백사장은 안 보이고 아파트 단지가 빽빽한 곳이 되었다.

한강은 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했다. 특히 서울 외곽의 한강은 물이 맑고 모래사장도 넓어 여름철 휴가지로 인기를 얻었다. 강수욕장(江水浴場)으로도 불린 광나루 유원지가 특히 그랬다. 

(2021. 07. 19) 한강은 서울 시민이 즐겨 찾는 유원지였다. 광진교와 그 너머의 천호대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19) 한강은 서울 시민이 즐겨 찾는 유원지였다. 광진교와 그 너머의 천호대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광나루 그리고 광나루 유원지

한강철교(1900)와 한강대교(1917) 다음으로 건설된 한강 다리는 1936년에 완공한 ‘광진교’다. 한강에서 세 번째로 세운 다리인 만큼 중요한 교통의 요지에 놓였다. 광나루 인근이었다.

광나루는 오랜 세월 서울 동쪽의 중요한 나루터였다. 삼국시대에는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충돌이 잦았던 전략 요충지였고, 조선 시대에는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의 산물이 서울로 오는 수로와 육로의 길목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지역을 오가는 화물차, 버스, 우차, 손수레들이 발동기선으로 강을 건넜다고 한다. 홍수가 잦고 교통량도 늘어나자 광진교를 건설했다고.

(2021. 07. 19) 광진정보도서관 앞길에 있는 광나루터 표지석.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19) 광진정보도서관 앞길에 있는 광나루터 표지석.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19) 광장동 낭만의 거리.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19) 광장동 낭만의 거리.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2) 광진교에서 바라본 광장동.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2) 광진교에서 바라본 광장동.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광나루가 있던 곳을 가보았다. 광나루역과 워커힐 사이에 있는 광진정보도서관 앞길(광장동 낭만의 거리)에 표지석이 있었다. 한강으로 내려가는 입구였다. 광장동 낭만의 거리에는 나무 데크로 만든 산책로가 조성되었다. 그 중앙에 옛 나루터와 돛단배를 형상화한 조망 데크를 설치했다. 강 건너로는 천호동과 한강공원이 보였다. 

광나루 표지석 부근을 옛 광나루 유원지 사진과 비교해보았다. 사진에는 백사장이 보이지만 기자가 서 있던 곳은 아차산 아래 주택가이고, 주택가 아래는 바로 한강이다. 경사진 곳이라 백사장이 있을 곳이 아니다. 

1960년대 광나루의 모습. 왼쪽 아차산에 워커힐 호텔이 들어섰고, 강 건너 천호동 쪽 강변에 모래사장과 광진교가 보인다.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1960년대 광나루의 모습. 왼쪽 아차산에 워커힐 호텔이 들어섰고, 강 건너 천호동 쪽 강변에 모래사장과 광진교가 보인다.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1960년대 광나루 유원지의 모습. 강 건너로 아차산이 보인다.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1960년대 광나루 유원지의 모습. 강 건너로 아차산이 보인다.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옛 광나루 유원지를 찍은 다른 사진들과도 비교해보았다. 강폭은 지금보다 좁아 보이고 모래사장과 강 건너로는 아차산이 보인다. 아차산은 한강 북쪽 강변에 있다. 그렇다면 한강 남쪽 강변에 광나루 유원지가 있었다는 것인데. 마침 강 건너로 보이는 한강공원의 이름이 ‘광나루 한강공원’이다.

“천호동 쪽에 백사장이 있었어요. 얼마나 넓었는데요. 거기를 광나루 유원지라고 불렀어요. 강 건너 워커힐 호텔 아래로는 식당과 보트장이 많았지요. 모래사장에서 물놀이하는 사진은 아마도 천호동 쪽일 거예요.”

천호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정모씨(남, 55세)의 말이다. 그는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광나루 유원지의 모래사장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한편 광나루 유원지는 광나루와 천호동 인근 주민들뿐 아니라 서울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맑은 물이 흐르고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피서지로 좋은 조건을 갖추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이다. 

광나루 인근에 기동차(전차처럼 궤도 위를 달리지만 전기 대신 내연기관의 힘으로 달리는 1량짜리 열차) 종점이 있었고, 서울 중심가에서 천호동까지는 버스가 다녔다. 서울 시민들이 저렴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유원지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즈음부터인가 부모님께서 한강에 가는 걸 못하게 하셨어요. 위험하다면서요. 광나루 유원지 인근에서 모래를 많이 퍼갔거든요. 백사장은 물론 강 속까지요. 그래서 웅덩이가 여러 군데 파여서 위험했지요. 물에 빠져 죽은 사람도 많았고요.”

정 씨의 회상이다. 조선일보 1975년 8월 5일 <모습 잃어가는 광나루 유원지> 기사가 그의 기억을 뒷받침한다. 

기사는 광나루 유원지 인근이 “곳곳에 모래 파인 웅덩이가 2년 동안 8만㎡가 넘는다”고 고발한다. 이 때문에 “시민 안전에 위험요소”가 되고 “백사장도 점차 줄어들어 유원지의 모습을 잃고 있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 들어 서울에는 시설 좋은 수영장이 들어서 한강의 유원지들과 경쟁한다. 당시 신문기사를 검색하니 휴가철 수영장 정보를 알려주는 기사들이 많다. 워커힐과 타워호텔 같은 호텔 수영장부터 ‘그린파크’ 같은 당시로는 신개념 수영장까지.

그린파크는 1968년 우이동 북한산 아래에서 문을 연 호텔인데 부속시설인 야외수영장이 더 유명했다. 그린파크는 2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야외수영장이었고,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던 슬라이더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인기였다. 

그린파크 수영장 전경(1973). 그린파크는 최신식 시설을 갖춘 대형 수영장이었다. (출처: 국가기록원)
그린파크 수영장 전경(1973). 그린파크는 최신식 시설을 갖춘 대형 수영장이었다. (출처: 국가기록원)
그린파크 수영장의 하이슬라이더(1973). 그린파크는 최신식 시설을 갖춘 대형 수영장이었다. (출처: 국가기록원)
그린파크 수영장의 하이슬라이더(1973). 그린파크는 최신식 시설을 갖춘 대형 수영장이었다. (출처: 국가기록원)

경향신문 1972년 7월 22일 <자녀 손 이끌고 가까운 물 쉴 곳을 찾는다> 기사에 그린파크 이용 안내가 담겼다. 대인 400원과 소인 300원의 입장료로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지만 하이슬라이더는 1회에 20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고. 

물론 기사들은 뚝섬과 광나루 등 한강의 유원지들도 안내한다. 하지만 오염된 물과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위험해진 환경을 경고하기도 한다. 1970년대 중반부터 한강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한강종합개발사업과 한강의 변화, 그리고 광나루 한강공원

1970년대 신문기사들을 보면 광나루 유원지 등 한강 유역의 모래 채취와 관련한 기사들이 많다. 공유수면 매립 사업과 강남 개발에 한강의 모래를 이용한 것이다. 그래서 밤섬과 같은 한강의 섬들을 폭파했고 광나루와 이촌동의 드넓은 모래사장을 파헤쳤다.

1980년대 들어서는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한강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대표적인 공사가 한강 고수부지에 시민공원을 조성하고, 한강 남쪽 강변을 따라 올림픽대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굽이굽이 흐르던 한강도 이 공사 덕분에 넓어지고 직선화된다.

(2021. 07. 22) 광진교에서 바라본 (왼쪽 강변) 광장동과 (오른쪽 강변) 광나루 한강공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2) 광진교에서 바라본 (왼쪽 강변) 광장동과 (오른쪽 강변) 광나루 한강공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2) 광진교에서 바라본 천호동 쪽 강변의 광나루 한강공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2) 광진교에서 바라본 천호동 쪽 강변의 광나루 한강공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광나루 유원지도 ‘광나루 한강공원’으로 변신했다. 공원 안내에 따르면 “한강 상류로부터 유입된 토사가 퇴적되어 자연스럽게 형성된 모래톱과 대규모 갈대 군락지로 자연 그대로의 한강의 모습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설명한다.

7월 어느 오후 광나루 한강공원을 방문했다. 연일 더위가 기승을 부려서인지 아니면 코로나19 때문인지 공원은 한적했다.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 몇몇과 간혹 지나가는 자전거, 그리고 공원을 관리하는 직원들만 보였다.

(2021. 07. 19) 광나루 한강공원의 수영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19) 광나루 한강공원의 수영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19) 광나루 한강공원의 수영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19) 광나루 한강공원의 수영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수영장이 있었다. 옛 유원지의 자취를 이어받았나 했지만 닫혔다. 공원 관계자는 코로나19 때문에 2021년에는 개장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 

시원한 물놀이가 생각나는 계절이지만 현실은 그러지 말라 말린다. 한강에서 물놀이하는 옛 사진들을 보며 추억에 젖으니 감염병 창궐로 바뀐 지금의 세태를 미래에서는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해진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가 되어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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