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은 물론 대중적 인기를 얻은 평양냉면
슴슴하고 시원한 맛으로 불볕 더위를 잊어볼까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밋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토속 방언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춤추는 이 작품은 민족시인 ‘백석(白石)’의 시(詩) <국수>의 한 대목이다. 평안도 정주 출신의 백석은 겨울철 아랫목에 앉아 동치미 국물에 육수를 섞어 꿩고기 고명을 얹은 국수를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국수’는 냉면을 의미하는데 평안도에서는 냉면을 국수로 불렀다고 한다. 

‘백석’의 시처럼 평안도 사람들은 겨울에 야식으로 국수를 즐겼다. 우리가 ‘평양냉면’으로 부르는 음식의 원형이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과 같은 여름철에 평양냉면은 특히 인기 있다. 물론 사철 내내 식도락가들이 찾는 메뉴이기도 하다.

(2021. 07. 21) 을지면옥의 평양냉면.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1) 을지면옥의 평양냉면.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냉면은 (아마도) 테이크아웃과 배달의 원조

조선 말기 문신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순조’ 임금이 야식으로 냉면을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임금이 냉면을 먹고 싶다고 하면 누군가 궁궐을 나가 사 왔다는 내용이다. 

‘고종’도 냉면을 좋아했다. 고종의 대령상궁 김명길의 쓴 <낙선재 주변>에 그 사연이 나온다. 고종이 냉면을 먹고 싶다고 하면 대한문 밖 국숫집에서 사리를 사와 수라간에서 육수와 고명을 만들어 올렸다고 한다.

2008년에 방영한 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에서 고종이 먹던 냉면을 재현했다. 배와 동치미가 들어간 냉면이었다. 마침 29일에 KBS에서 방영한 '다큐인사이트'  <냉면 랩소디>에서도 고종이 즐겨 먹었다던 '배동치미 냉면'을 재현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서울에 냉면집이 많아지자 ‘배달’도 함께 발달했다고 한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단어인 ‘중머리’가 이와 관련 있다. 평북 지방의 방언인 ‘중머리’의 사전적 의미는 “국숫집에서 부엌일을 하는 머슴”을 의미한다. 이 의미가 차츰 ‘냉면 배달부’를 지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인천 향토사를 담은 <인천 이야기 100장면>에는 냉면 배달부의 전설적 모습이 담겨 있다. “긴 목판에 스무 그릇 정도나 되는 냉면을 얹고 자전거로 서울까지 배달했다”는 믿기지 않는 광경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인천 답동 '사정옥'의 냉면 배달부. 자전거를 타고 어깨에 냉면을 얹고 배달했다. 냉면 배달부를 '중머리'라 부르기도 했다. (출처: 부평역사박물관)
일제강점기 시절 인천 답동 '사정옥'의 냉면 배달부. 자전거를 타고 어깨에 냉면을 얹고 배달했다. 냉면 배달부를 '중머리'라 부르기도 했다. (출처: 부평역사박물관)

평양냉면에 문파(門派)가 있다고?

기자가 평양냉면을 처음 만난 건 15년 정도 되었다. 그해 여름 한 지인이 장충동의 ‘평양면옥’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깜짝 놀랄걸요”라면서. 냉면이 나오자 육수를 한 모금 마신 기자는 깜짝 놀랐다. 아무 맛이 없어서. 그리고 국수를 한 젓가락 입에 넣고 씹어 보았다. 또 놀랐다. 너무 잘 끊어지는 바람에. 

기자와 평양냉면과의 첫 만남은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앞으로 계속 생각날걸요”라는 지인의 말처럼 평양냉면은 간혹 떠오르는 음식이 되었다. 

평양냉면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SNS에서는 유명 평양냉면집 순례를 담은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다. 자기 입맛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은 각 냉면집의 육수에 들어가는 재료를 분석하거나 국수에 들어간 메밀과 전분의 함량을 분석한다. 때로는 노포(老鋪)와 노포에서 파생된 평양냉면집 계보를 정리하기도 한다. 

(2021. 07. 21) 우래옥 전경.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1) 우래옥 전경.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1) 우래옥 입구 골목. 식사 시간 즈음이면 주차하려는 차가 몰린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1) 우래옥 입구 골목. 식사 시간 즈음이면 주차하려는 차가 몰린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그 계보를 보면 우선 ‘우래옥’이 있다. 청계천 공구 상가가 밀집한 지역에 번듯한 건물을 세운 우래옥은 서울의 평양냉면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업소일 것이다. 건물 옆 화단 표지석에 “1946년 11월 개업”이라고 쓰여있다. 

평일 점심시간 즈음 우래옥 앞을 가보면 대기하는 사람들과 주차하려는 차들로 북적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 도심 땅값 비싼 곳에 커다란 건물과 널찍한 주차장이 있을 만큼 우래옥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평양옥’은 사람들에게 우래옥 계열로 알려졌다. 우래옥 주방 출신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2021. 07. 21) 장충동 평양면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1) 장충동 평양면옥.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장충동의 ‘평양면옥’도 서울에서는 노포에 속한다. 평양에서 ‘대동면옥’을 운영했던 시아버지의 손맛을 이어받은 며느리 ‘변정숙’씨가 1985년에 열었다. 지난 29일에 방영한 KBS 다큐인사이트 <냉면랩소디>에는 4대 사장이 나와 인터뷰했다. 남한에 정착한 실향민들에게 인정받은 평양냉면이라는 취지였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평양면옥’은 장충동 평양면옥에서 파생된 곳이다. 창업주 변정숙씨가 장충동 업장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논현동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2021. 07. 21) 을지면옥. 청계천 공구 거리에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1) 을지면옥. 청계천 공구 거리에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1) 을지면옥. 청계천 공구 상가 한가운데에 있어 처음 가면 입구 찾기 힘들 수도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1) 을지면옥. 청계천 공구 상가 한가운데에 있어 처음 가면 입구 찾기 힘들 수도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울 강북 도심의 유명 평양냉면집인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은 뿌리가 같다. 두 냉면집 모두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성지로 꼽는 ‘의정부 평양면옥’ 창업주의 딸들이 하는 식당이다. 

의정부 평양면옥은 1969년에 연천에서 열었다가 1987년에 의정부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필동면옥’은 첫째 딸이 1985년에 남산 아래에서, ‘을지면옥’은 둘째 딸이 1985년에 청계천 인근에서 개업했다. 의정부 본점은 창업주의 맏아들이 물려받았다. 서초구 잠원동의 ‘의정부 평양면옥’도 같은 집안이다.

우래옥, 장충동 평양면옥, 그리고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은 서울 강북 도심에 자리한다. 모두 청계천에서 가까운 곳들이다. 전쟁 후 서울에 터 닦은 월남민들이 편하게 닿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고향의 맛을 찾던 실향민들을 만족시킨 덕분에 성장했을 것이다.

(2021. 07. 21) 을밀대 전경.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1) 을밀대 전경.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반면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을밀대’는 주택가에 자리한다. 1971년에 문을 연 을밀대는 서울 도심과 거리가 멀지만 입소문에 의해 평양냉면 성지가 되었다. 오래된 건물과 고풍스러운 폰트의 간판이 노포임을 보여준다. 주변 건물들을 별관으로, 골목을 대기 장소로 쓸 정도로 손님이 많이 찾는다. 

‘을밀대’라는 이름을 쓰는 평양냉면집들이 여러 곳에 있다. 하지만 몇 해 전 각자 다른 매장을 운영하는 형제가 분쟁을 벌여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육수를 만드는 ‘공장’ 운영과 관련한 분쟁이었다. 식당이 커지다 보니 대량 생산이 필요했을까.

최고의 맛은 당신이 결정한다

기자는 이번에 평양냉면에 관한 자료를 모으며 블로그나 칼럼, 그리고 언론기사에서 다룬 평양냉면집에 대한 평가들을 살펴봤다. 전문가로 자부할수록 비판적 접근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육수가 어떠니, 국수가 어떠니, 반찬이 어떠니 트집 잡곤 한다. 때로는 그릇을, 수저통을, 서비스를 지적하기도 한다. 

참으로 현란했다. 그런데. 그런 예민한 혀와 감각을 가진 전문가들의 평가에 기자처럼 평범한 입맛을 가진 사람들이 현혹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평론가들이혹평했지만 대중에게 큰 사랑를 받은 영화가 많았던 것처럼.

말이나 글로 ‘맛을’ 표현하는 것은 타인에게 대리만족을 주기도 하지만 어쩌면 눈과 귀, 그리고 가슴만 자극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맛은 혀로 직접 맛보고 뇌가 맛있다고 느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름, 당신을 사로잡는 평양냉면을 찾아보면 어떨까.

위에서 언급한 노포와 노포에서 파생된 냉면집 외에도 맛집으로 소문난 평양냉면집들이 많다. 소문난 냉면집이 아니더라도 나름의 맛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곳도 있을 것이다.

불볕더위에 지친 당신을 ‘슴슴하고 시원한 육수에 메밀국수를 말은 평양냉면’이 기다리고 있다. 

(2021. 07. 21) 을밀대의 평양냉면. 예전에는 육수에 살얼음이 있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7. 21) 을밀대의 평양냉면. 예전에는 육수에 살얼음이 있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 참고 자료 

김남천 백석 최재영 외, 평양냉면, 가갸날

백석 이효석 채만식 외, 100년전 우리가 먹은 음식, 가갸날

안도현, 백석 평전, 다산책방

이용재, 냉면의 품격, 반비

이욱정, 누들로드, 예담

서정민, 남북을 잇는 평양냉면, 인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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