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우리말 공공문서 만들기⑤
임신·출산 공공문서의 모든 것
출생신고서에 담긴 ‘민법’의 한계 개선해야
‘인우인’은 ‘가족, 친지, 이웃’으로 바꿔 써요
국어사전에 없는 ‘삼태아’는 세쌍둥이로 고쳐요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출생신고서는 한 사람이 태어난 후 국가기관에 인적사항을 등록하는 가장 첫 번째 서류로, 이를 통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태어난 아이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국가의 근본인 가족을 법률적으로 엮어주는 중요한 서류지만 현 신고서 양식은 미혼 부모, 다문화가정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정을 포용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출생신고서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작성하는 문서인 만큼, 서식 자체는 상당히 간소화되어 있다. 지난 2016년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국민이 자주 접하는 서식 60종을 간소화하고, 출생신고서의 인구동향조사 9개 항목을 1개로 줄인 바 있다. 출생신고서 개선을 맡은 안양대 국어문화원(박철우·이현희 교수)은 현 출생신고서 양식은 국민이 작성하기 쉽게 만들어졌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에 이번 공공문서 개선 작업에서는 △차별적 표현 △불필요한 한자어 △잘못 쓴 표현을 중심으로 수정했다.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출생신고서, 그냥 고칠 수 없는 이유

간단해 보이는 출생신고서에는 복잡한 법리 적용이 녹아 있다.

가장 논의가 뜨거운 부분은 출생신고서 상단의 ‘혼인 중의 출생자’와 ‘혼인 외의 출생자’를 구분해 적는 칸이다. 이미 여성가족부에서는 지난 4월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혼중자, 혼외자 등 차별적 용어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출생 신고에 있어 부모가 혼인 중인지, 혼외 중인지 밝혀 적어야 하는 이유는 민법의 ‘친생추정’과 연관이 있다. 민법에서는 생물학적 아버지를 아이의 아버지로 보지 않고, 결혼한 남편을 친생자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부모의 혼인 여부에 따라 출생신고를 표시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지적하며, ‘혼인 중의 출생자’와 ‘혼인 외의 출생자’ 표현을 삭제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기간 만료로 폐기됐다.

민법의 친생추정 원칙은 미혼인 아버지가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는 데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어머니의 법률적 ‘남편’이 친생추정으로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 때문에,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려면 아이의 어머니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증명 방법은 어머니의 혼인관계 증명서를 제출하거나, 어머니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가족, 친지, 이웃의 증언(인우인 증명서)이 필요하다. 만약 아이의 어머니가 출생신고에 협조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출생신고를 하기 어려워진다.

어머니의 성을 따라 아이의 성을 정하는 부분도 성차별적 요소가 담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 출생신고서에는 ‘혼인신고 시’ 아이의 성을 어머니의 것으로 하는 협의서를 제출했는지 여부를 묻는다. 현행법 상으로는 어머니의 성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다면, 혼인신고 시 협의서를 제출한 부모만 어머니의 성을 물려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역시 민법이 규정하는 ‘부성(父姓) 우선주의’ 원칙 때문이다.

지난 3월 한 시민활동가는 “왜 아이의 성을 혼인신고 때 정해야 하고 이를 번복하려면 소송을 불사해야 하는지, 왜 아이 성을 선택하게 하지 않고 모의 성을 따를 때만 별도로 체크하게 하는지 등이 의문”이라며 민법 781조 1항에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국회에서도 지난해 10월 자녀의 성과 본의 결정을 ‘출생신고’ 때 하는 내용의 민법,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이번 개선안에서는 혼인 중·혼외 중 표현과 아이의 성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점만 지적하고 개선 대상으로는 삼지 않았다. 이러한 내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족관계등록법 뿐 아니라 상위법인 민법의 개정도 함께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윌리엄 해밍턴은 출생 신고 어떻게 했을까?

유명 육아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샘 해밍턴의 아들 윌리엄 해밍턴의 한국 이름은 ‘정태오’다. 우리나라는 부성 우선주의 원칙을 따르고 있지만, 외국인 아버지에 한국인 어머니인 경우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윌리엄의 경우 어머니의 성을 따랐고, 이름도 한국식으로 지었다.

윌리엄과 같이 복수국적 아이의 경우, ‘가족관계 등록 예규’에 따라 이름을 적어야 한다. 아버지의 성을 따를 경우 외국식 이름으로, 어머니의 성을 따를 경우 한국식 이름으로 신고하도록 ‘권고’한다. 이미 아버지의 나라에서 출생신고가 되어 이름이 기록된 경우에는, 새로운 한국식 이름을 신고할 수는 있지만 기타사항 란에 해당 외국식 이름을 기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작성 방법에 일부만 소개돼 있어, 다문화 가정의 부모는 추가로 이름 표기 방법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개선안에는 ‘작성방법’에 아버지가 외국인인 경우 ‘가족관계 등록 예규 제 502호를 참고하라’는 내용을 덧붙였다.

또 다문화 가정의 경우 아버지나 어머니가 외국인이라 주민등록번호나 등록기준지가 없지만 내용을 적게 되어 있어 혼동을 준다는 의견이 있었다. ‘작성 방법’에 외국인인 경우 주민등록번호는 외국인 등록번호를, 등록기준지는 국적을 적으라는 설명이 있지만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웠다. 개선안에서는 실제 작성란에 괄호로 병기해 적는 식으로 다문화 부모들의 편의를 더했다.

‘영표’는 ‘동그라미표’로 ‘인우인’은 ‘가족·친지·이웃’으로

이 밖에 출생신고서에 쓰인 잘못된 표현이나 한자어 등을 개선했다. 우선 출생신고서 상단의 ‘영표(○)’는 단어의 표현과 문체를 고려해 ‘동그라미표(○)’로 수정했다. 아이의 출생 시간을 적은 ‘24시각제’는 ‘24시간제’로 고쳤다.

부모가 정한 등록기준지에는 ‘동·리 혹은 도로명 주소까지 기재’를 추가로 적어 한눈에 기재 방법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자녀가 복수국적자인 경우 그 사실과 취득한 외국 국적’은 ‘그 사실’이라는 말이 굳이 필요하지 않아 삭제했다.

작성방법 중 어려운 한자어에는 괄호에 추가 설명을 붙였다. 전혼은 ‘재혼 이전의 혼인’, 태아인지는 ‘태중 아이를 친생자로 인정’, 첨부서류에 인우인은 ‘가족, 친지, 이웃’으로 풀어 썼다.

 

 

임신·출산 통합처리 신청서, 이렇게 바꿔봐요

임신·출산 시 부부가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은 △영유아 보육법 △아동수당법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장애인 복지법 등 다양한 법률을 통해 지원된다. 아이는 한 번 태어나는데,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여러 신청서를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서 정부는 ‘임신·출산관련 서비스 통합 처리에 관한 규정’을 세우고 한번에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임신’과 ‘출산’으로 나눠 통합 처리 신청을 받는다.

최근에는 ‘맘편한 임신(임신 통합 처리)’과 ‘행복 출산(출산 통합 처리)’으로 온라인 신청도 받고 있어 더욱 편의성을 더했다. 맘편한 임신 서비스의 경우 서비스가 시작된 지난 4월 19일부터 지난달 18일까지 3개월간 2만 184명이 이용했다.

이번 개선안에서는 동사무소 등 현장에서 접수하는 ‘임신 통합처리 신청서’와 ‘출산 통합처리 신청서’를 살펴봤다. 전체적인 서식에서는 공간이 부족한 부분을 조정해 편하게 글을 써넣을 수 있도록 했다.

임신서비스 통합처리 신청서의 경우 ‘단태아, 삼태아’ 등 사전에 등록되지 않은 단어를 사전에 등록된 단어로 바꾸거나 사전에 등록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다태아는 사전에 등록된 말이지만 언중이 더 많이 쓰는 쌍둥이로, 사전에 없는 삼태아는 세 쌍둥이로 수정했다. 단태아의 경우 사전에는 등록되지 않았으나, 태아가 1명일 경우 부르는 용어가 없으므로 그대로 기재하고 사전에 단태아를 등록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나왔다. 단태아·다태아 구분 역시 ‘태아 수 구분’으로 풀어썼다.

출산서비스 통합처리 신청서는 기존 ‘출산비용 지원(등록장애인)’을 ‘등록장애인 출산비용 지원’으로 바꿔 썼다. 아동수당 등 정부 지원금을 수령받는 계좌인 ‘급여 계좌’는 ‘지원금 수령 계좌’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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