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영향으로 우울증·자해 관련 진료 건수 폭증
대다수 자살시도 충동적, 도움의 손길로 막을 수 있어
봉사자로 이뤄진 생명의전화 “감사편지 보며 버틴다”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매년 9월 10일은 생명의 소중함과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 마련을 위해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자살예방협회가 제정한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다.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자살 예방을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 발생률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020년 9월 발표한 ‘2019년 사망원인통계 결과’를 보면 국내 연간 극단적 선택 사망자 수는 전년보다 129명(0.9%) 증가한 1만 3,799명이다. 이는 하루에 37.8명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고의적 자해로 인한 사망이 10~30대 사망 원인의 1순위이며, 40~50대에서도 2순위를 차지하는 등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 재난으로 떠오른지 오래다. 

자살 시도 ‘충동적’... 도움의 손길 요청 

자살률은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지만, 2018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코로나 블루(우울증)의 영향으로 자해 및 우울증 관련 진료 건수가 폭증한 것으로 나타나 자살 예방 정책 개선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고의적 자해 현황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상반기 자해 진료 수는 1,076건으로 2019년 상반기(792건)보다 35.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우울증 진료자는 59만 5,724명으로 집계돼 2019년 상반기(56만 3,239명)보다 5.8% 늘었다.

자살 시도자 10명 중 9명은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절반이 넘는 58.0%는 정말 죽으려고 자살을 시도한 게 아니거나,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는 죽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점을 인지하고서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지난달 19일 발표한 자살 시도자 총 2만 2572명 실태 분석 결과에 따르면 90.2%가 충동적으로 극단적 시도를 했다. 또한 절반가량(49.2%)이 자살 시도 당시 술을 마셔 감정 조절이 어려운 상태였다.

35.8%는 ‘도움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지, 정말 죽으려고 한 게 아니다’라고 답했고, 22.2%는 ‘죽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실제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반면 ‘정말 죽으려고 했고, 그럴만한 방법을 선택했다’는 응답은 29.7%에 불과했다. 자살 시도자의 행위는 실제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자기파괴행위가 아닌 ‘살려달라’는 구조 요청이었던 것.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대다수의 자살시도자가 충동적이며, 이를 통해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어하는 일종의 신호다”며 “응급실에 온 자살 시도자에게 상담과 치료, 복지 서비스를 지원하면 자살 위험을 분명히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포대교 생명의 전화. (사진=뉴시스)
마포대교 생명의 전화. (사진=뉴시스)

공감과 위로...전화 한 통의 힘

자살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돕기 위한 수단으로는 대표적으로 전화 상담이 있다. 국내에서는 1976년 9월 한국생명의전화가 최초로 문을 열었다. 또한 한강 교량에는 자살 위기자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도록 SOS생명의 전화가 설치돼 있다. 20개 한강 교량에 총 75대가 있다. 

생명의전화 관계자에 따르면 생명의전화 1588-9191 대표 번호에는 하루 평균 60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서울 지역에는 600명의 상담사가 등록돼 있지만, 한 통의 전화는 길게는 2시간까지도 이어져 대기시간이 발생하기도 한다. 

상담사는 자원봉사자로 이뤄졌다. 이들은 상담자의 고민과 걱정 등을 경청하고 위로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본인이 원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무보수 봉사인만큼 활동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진다.

생명의 전화 상담사 김민서(40·가명) 씨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상담 진행 후 상담자의 변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보람 있다고 전했다. 김 씨는 “생명의 전화 구조상 한 번의 상담 이후 다시 전화를 주지 않는 이상 회복 여부를 알 수 없다”며 “간혹 상담 이후 긍정적 변화에 대한 메일이나 전화 또는 손편지를 보내주실 때가 있는데, 이런 경험에 대한 자부심으로 상담 봉사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자살 예방이라는 역할에 대한 부담감도 크다고 했다. 김 씨는 “SOS생명의 전화는 위급 상황인 경우가 많은데, 한 통의 전화가 큰 역할을 맡게 돼 심적 부담감 때문에 힘이 든다”고 설명했다.

다른 콜센터와 비슷한 고충도 겪고 있었다. 김 씨는 “상담자의 힘든 점을 공감하고 자살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욕설이라든지 장난 전화, 성희롱 등의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며 “생명의 전화 상담사들은 금전적인 보상 없이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돼 있는데, 이런 경우 굉장히 지치게 된다”고 토로했다. 

4년째 상담봉사를 지속하고 있는, 김 씨가 생각하는 자살 예방을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예전보다 자살 예방을 위한 도움 체계가 늘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자살 예방이라는 주제가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주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라며 “어려운 이웃이 없는지 돌아보고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작은 관심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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