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음악 산업을 지켜온 이가 들려주는 음악과 일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 업계에서 30년 가까이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분야가 만약 음악 산업이라면. 음악 산업은 지난 1990년대부터 큰 변화를 겪어 왔다. 가장 큰 변화는 오래도록 음악을 담아온 매체였던 LP가 사라지고 CD로 대체된 것이었다. CD 또한 전성기를 몇 년 누리지 못하고 디지털 음원에 그 자리를 내줬다. 자연스럽게 음악 산업의 플레이어들이 교체되었다.

이런 변화를 지난 30년 가까이 몸소 체험한 인물이 있다. 해외 대형 음반사의 한국 법인에서 8년을, 그리고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20년을. 칠리뮤직코리아(Chilli Music Korea)의 이준상 대표는 지난 30년 가까이 음악 산업의 변화를 직접 겪었다. 그를 만나 음악과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준상 칠리뮤직코리아 대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준상 칠리뮤직코리아 대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음악을 좋아한 아이

음악 관련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1970년대와 1980년대 부산에서 자란 이준상 씨는 선박회사에 다닌 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해외 문화와 접할 수 있었다. 특히 형과 누나의 영향으로 ‘소울 트레인(Soul Train)’을 즐겨 봤고 그들이 듣던 팝송도 즐겨 들었다. 음악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중학교부터는 저만의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고 라디오 음악 방송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좋아했던 장르는 ‘락(Rock)’이었어요. 대학교 들어가서는 하드락과 헤비메탈을 주로 들었죠. 돈이 생기면 거의 음반을 샀습니다.”

그는 대학생 시절 학교 방송국에서 일했다. 프로그램 제작과 연출을 맡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때부터 프로듀싱에 관심을 두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영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미래를 위한 절묘한 선택이었다.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음악을 특히 많이 알고 있으니 방송 제작에 중심 역할을 맡을 수 있었죠. 무엇보다 영문학을 전공한 게 팝송과 해외 음반 시장 흐름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관련 일을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도 되었죠.”

해외 직배 음반사에서 8년

대학교 졸업 즈음 이준상 씨는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광고회사 취업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그의 꿈은 음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간절히 바라니 길이 열렸다. 이준상 씨는 1994년 EMI 코리아에 입사한다. EMI는 영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음반사다. 

“클래식 음반 부문 마케팅 담당으로 들어갔어요. 팝송 부문에 입사하길 원했지만 자리가 없었지요. 덕분에 음악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EMI는 클래식 음악에서 최고거든요. 명반과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었던 기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클래식은 물론 재즈와도 친해졌죠.”

이준상 씨는 EMI에서 음반 마케팅을 배웠다. 세계적인 회사의 노하우를 배우며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조금은 목마름을 느꼈다. 팝 음반 관련 일을 하고 싶었던 그에게 오퍼가 오기 시작했다. 마침 한국에서 오픈을 준비하던 세계적인 음반 유통회사인 ‘타워레코드’에서 온 제안에 마음이 갔다. LP가 저물고 CD가 뜨던 시기였다.

“제가 좋아하던 팝 음악을 맡았었는데 그때 유통 관련 일을 많이 배웠어요. 해외 팝 음반 바이어 역할이었으니 무역 업무를 해야 했죠. 사수도 없었으니 혼자 해내야 했어요. 그때 배운 통관 등 무역 업무가 지금까지 도움이 되네요.”

당시 전 세계의 음반사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며 음반업계 돌아가는 상황을 잘 배울 수 있었다고. 그런 이준상 씨에게 또 다른 대형 회사가 손짓했다. 워너뮤직코리아(Warner Music Korea)에서다. 

“워너뮤직코리아에는 마케팅과 프로모션 담당으로 들어갔어요. 주로 방송국 홍보를 맡았지요. 이 업무에 재능이 있었는지 성과도 좋았어요. 제가 기획해서 히트한 것도 많아 보람이 컸던 시절이기도 했죠.”

음악 산업 변화의 파도에 배를 띄우고

1990년대 후반 IMF를 겪은 한국의 음악 산업은 2000년대에 들어오며 큰 변화를 겪는다. 지금 보면 아날로그 음반에서 디지털 음원으로 전환되는 초기였지만 전통을 고수하던 음반 회사들은 다운사이징을 감내해야 했다. 해외 직배 음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준상 씨도 변화하는 음악 산업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계획했다.

“2002년에 독립했습니다. 약 8년 동안 해외 직배 음반사에서 일하다 보니 음악 시장 전반에 관한 일을 모두 섭렵했더라고요. 시대가 변하니 회사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대형 회사는 그런 변화를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설립한 회사가 ‘칠리뮤직코리아’입니다.”

작게 시작했지만 하는 일까지 작은 건 아니었다. 칠리뮤직코리아는 지난 20년 동안 다양성을 추구하며 산업의 변화에 적응해 왔다. 해외 음원 라이센싱, 국내 음원 제작 및 디지털 배급, OST 기획, 저작권 관리, 그리고 공연 기획까지. 어떻게 보면 음악 산업의 거의 모든 영역에 발 담그고 있는지도 모른다. 

“몇 해 전부터는 국내 뮤지션을 발굴해 제작도 하고 있습니다. ‘에이프릴 세컨드(April 2nd)’가 대표적인데 국내와 해외 여러 페스티벌에서 초청받는 밴드가 되었죠. 드라마 ‘도깨비’와 ‘사랑의 불시착’ OST에도 참여해 인지도가 오르기도 했습니다.”

지난 2년,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가 음악 산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준상 대표와 칠리 뮤직 코리아도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우선 지난 10여 년은 음악 산업의 격변기였습니다. 스마트폰과 유튜브 같은 동영상 플랫폼이 그 현상을 주도했죠. 아이튠과 멜론 등이 돈을 내고 음악을 내려받거나 스트리밍하는 추세를 이끌었고, 동영상 플랫폼은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을 추구하는 현상을 부추겼습니다. 그 흐름에 올라탄 회사들은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는 쉽지 않은 시절을 겪었을 겁니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닥친 거고요. 만약 오프라인 공연에 비중을 둔 뮤지션과 회사들은 견디기 어려웠을 겁니다.”

칠리 뮤직 코리아도 공연 부문이 주춤했다고 한다. 코로나19는 산업 측면에서 비대면 공연이 활성화된 배경이 되었는데 그의 회사도 동영상 콘텐츠 부문의 사업 확대를 꾀한 계기가 되었다고. 

이준상 칠리뮤직코리아 대표가 '허클베리 핀'의 LP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가 A&R 디렉터를 맡았고 칠리뮤직코리아가 마케팅과 매니지먼트를 맡은 음반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준상 칠리뮤직코리아 대표가 '허클베리 핀'의 LP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가 A&R 디렉터를 맡았고 칠리뮤직코리아가 마케팅과 매니지먼트를 맡은 음반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독립한 지 어느덧 20년

2022년은 이준상 대표가 칠리 뮤직 코리아를 시작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칠리 뮤직 코리아는 음악을 매개로 OSMU(One Source Multi Use)를 추구하는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사업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20년 동안 회사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어떤 힘이 그와 회사를 20년을 끌고 오게 했을까.

“사회 초년병 시절 일을 잘 배운 것 같아요. 그때도, 창업 후에도 열심히 일했고요. 산업의 변화를 잘 지켜보며 적절히 대응한 것도 큰 도움이 됐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변화와 시도를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네요. 아무튼, 20년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집니다.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기도 해야 하지만 미래도 준비해야겠지요.”

이준상 대표는 음악 산업에 종사한 선배로서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까 고민이 된다고 한다. 음악 산업에 뛰어들고픈 대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 그는 A&R(Artist and Repertoire) 업무를 제대로 정의하고 가르칠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관련 학교에서 A&R 영역을 다루고 기획사들도 A&R 담당이 있지만 조금은 지엽적인 게 사실입니다. 아티스트 발굴은 물론 기획과 제작하는 입체적 능력까지 키워야 당당한 A&R로 성장할 수 있거든요. 30년 가까이 음악 산업에 몸담아온 경험에서 얻은 시각과 교훈을 후배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명함에 적힌 회사 이름과 직위가 20년 동안 바뀌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결같다고 느끼는 한편 거친 파도를 이기고 부두에 돌아온, 그리고 큰 파도에도 서슴지 않고 바다에 다시 나서는 우직한 뱃사람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이준상 대표다. 음악 산업이라는 바다에 뜬 칠리뮤직코리아는 다음 10년은 물론 그 이후에도 계속 큰 바다를 헤쳐 나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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