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대선을 앞두고 야권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거는 등 젠더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약 26.8조의 성인지 예산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성인지 예산은 그 명칭으로 ‘여성을 위해 사용되는 예산’이라는 오해를 받아왔다. 이에 2022년도 성인지 예산안이 어디에 쓰이는지 살펴봤다.

여성가족부 (사진=뉴시스)
여성가족부 (사진=뉴시스)

우선 성인지 예산은 매년 목적을 두고 책정되는 예산이 아닌, 기존 사업에서 ‘성평등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예산을 분류해둔 것에 가깝다. 이미 각 정부부처에서 사업 예산을 편성하고, 그 중에서 남성과 여성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해 ‘성인지 예산’으로 묶어 보고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피해자 지원 사업’ 등 직접적으로 양성평등을 위한 사업이 있지만, ‘중장년층 취업 지원’ 등 간접적으로 양성평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도 성인지 사업으로 묶인다.

문제는 간접 사업 중 양성평등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사업도 성인지 사업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성인지 예산이 발표될 때마다, 성평등 실현이라는 목적에 맞지 않는 사업이 마구잡이로 포함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22년도 성인지 예산안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0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행한 ‘2022년도 성인지 예산서 분석’에서 “매년 성인지 예산서 및 결산서에 대한 분석을 통해 대상사업의 적절성 여부를 분석하였는데, 성인지 대상사업으로 선정하는데 충분한 근거나 구체적인 맥락이 나타나지 않는 사업이 지속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 많은 성인지 예산은 어디로 흘러갈까

2022년도 성인지 예산은 총 39개 중앙관서에 341개 사업으로 구성돼 있다. 예산 규모는 26조 8821억 원으로, 지난해(35조 2854억 원) 대비 23.8% 줄어들었다.

2022년도 성인지 예산 사업유형별 편성 현황. (자료=국회 예산정책처)
2022년도 성인지 예산 사업유형별 편성 현황. (자료=국회 예산정책처)

이 중 직접적으로 성평등 실현을 위해 쓰이는 예산은 4조 5974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17.1%에 그친다. 나머지 22조 2847억 원은 간접 사업에 투입됐다. 성인지 예산 규모가 가장 큰 부처는 고용노동부로 9조 6644억 원이 편성됐고, 그 다음으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9조 3679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보건복지부도 4조 5895억 원이었다.

직접목적 사업의 경우 세부내역을 살펴보면 성평등을 위한 사업에 정확히 부합한다. 고용노동부의 ‘고용보험 미적용자 출산급여(127억 7600만 원)’, 교육부의 ‘대학 내 양성평등 확산 및 성희롱 성폭력 근절 지원(3억9100만 원)’, 여성가족부의 ‘여성경제활동 촉진지원(737억 4100만 원)’ 등이다.

간접목적 사업의 경우, 국민이 통상적으로 ‘성인지 예산’으로 인식하기 힘든 사업이 다수 포함됐다. 노동부의 경우 ‘국민취업지원제도(1조 5141억 1500만 원)’, ‘청년내일채움공제(8754억 6800만 원)’, ‘내일배움카드(4387억 9400만 원)’이 간접목적 사업으로 성인지 예산에 포함돼 있다. 만약 일부 주장대로 성인지 예산을 전면 삭제할 경우, 취업지원을 위한 핵심 사업이 모두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행정안전부의 ‘민방위 교육훈련 및 시설장비 확충(65억 4800만 원)’도 성인지 간접 사업이다.

일반적으로는 민방위 훈련이 성인지 사업으로 분류된다고 할 때 의문을 갖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2020년 성인지 예산서를 살펴보면, 민방위 교육훈련 및 시설장비 확충 사업의 성평등 목표는 ‘재난상황 발생 시 대처능력 강화’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재난상황 발생 시 대처능력이 다소 부족”하다며 민방위 훈련을 통해 재난 대처 능력을 향상시키므로 성인지 예산에 포함돼 있다는 주장이다.

여전히 성인지 예산으로 편입되기에는 이유가 빈약해 보여도, 간접 사업 세부 기준에는 부합한다. 애초에 간접 사업은 성평등 목표가 ‘1순위’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목표 달성에 기여한다면 성인지 예산에 포함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2022년도 성인지예산서 작성 매뉴얼’에 따르면, ①성별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개선이 필요한 사업, ②재원배분을 통해 양성평등 실현에 기여하는 사업, ③그 밖에 성평등 실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업을 성인지 예산으로 적도록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갖추지 못하고 성인지 예산으로 편입된 사업도 있다. 입법조사처는 “간접목적 사업으로서 미흡한 측면이 있어 적절성 여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사업이 있었다”며 노동부의 ‘실업크레딧 사업’, 교육부의 ‘학문후속세대지원 사업’ 등을 꼽았다. 실업크레딧 사업은 만 18세 이상 만 60세 미만 구직급여 수급자에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보고서에서는 “성별에 관계없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지원되고, 남녀 지원 비율에서 양성 불평등 실태를 도출하기 어려워 성평등 실현에 기여할 여지가 없는”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0년부터 도입된 성인지 예산은 ‘끼워맞추기 식’으로 작성됐다는 지적이 매년 이어졌다. 명칭에 걸맞지 않는 사업이 다수 포함됐지만, ‘성인지 예산’이라는 명칭으로 젠더갈등을 더욱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인지 예산 운영을 위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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