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딛고 우뚝 선 정대세 풀스토리

필드 위에서 뛰는 그의 표정은 이 세상을 다 가졌다. 조선을 대표하는 국가선수만을 꿈꾸던 그가 지근의 자리에 서기까지는 많은 역경을 이겨내야 했다.
조선출신 한국국적을 가진 재일동포인 정대세, 이런 복잡한 배경을 등지고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북한을 국가로 취급하지 않는 일본사회에 속해있는 그가 축구 대표선수로서 필드에 뛴다는 것 또한 허용치 않았다. 1년 내내 선발 명단에 오르지 못했어도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난 26일 월드컵 예선전에서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는 분명 눈물을 흘리는 순간까지의 지난 모든 날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과거, 공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미래를 위해 현재가 되기까지의 그의 삶을 들여다봤다.

 

지난 26일 중국 상하이에서 벌어진 남북 축구경기 2010 남아공 월드컵축구 아시아지역 3차 예선전에서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경기가 끝났다. 하지만 경기 이후 여론과 언론은 경기 전 조례의식에서 보여준 정대세의 뜨거운 눈물에 관심을 보였다. 평소 범상치 않은 실력과 재치 있는 언행으로 스타성을 갖춘 그가 보여준 눈물에는 복잡한 배경과 그만이 가진 한민족에 대한 애틋한 애국심에 더욱 의미가 있다.

재일동포이지만 한국국적을 가진 그가 북한 대표선수로써 이름이 알려진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복잡하고 기교한 사연에 관심을 두면서 알려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국가로도 인정해주지 않는 북한을 한국국적으로 등록하면서 일본에서 살아온 그가 그래도 “나에게 대표팀은 공화국”이라는 확고한 애국심 하나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조선인’이라는 이미지로 일본사회에 핍박받던 당시 축구에 대한 꿈을 꾸는 것 초차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축구에 대한 강한 집념으로 일본사회를 조선인인 정대세에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결과를 낳기도 했다.

 

북한 축구대표선수로 발탁, 남북대결에서 ‘주목’
빠르게 골문 파고드는 스피드와 골 결정력 일품

 

조선인이라는 타이틀로 일본사회에 등장한 그는 차별화 속에서도 동포들이 설립하고 지켜온 ‘우리학교’라는 민족교육기관에서 12년 동안 다녔다. 그러면서 키워온 축구사랑은 J리그 입성 이라는 도전기도 함께 나타났다. 2005년 당시 주총련의 주최로 열린 일본-조선 친선경기에서 6-3으로 패배한 적이 있다. 이마 이 경기가 북한대표로 뛰고싶다고 다짐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가 3골을 넣으면서 얻은 성적은 조총련에서만 인정 되었다. 하지만 일본사회가 본 정대세는 ‘뛰어난 실력자’ 보다는 오히려 ‘잡초 같은 조선인’ 이라는 이미지를 더욱 부각되었다.
일본 고등교육기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학교’ 출신인 그가 높고 높은 J리그의 입단 테스트에 모두 떨어졌어도 축구에 집착하는 그를 1부 리드클럽 가와사키가 받아들였다.
사실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일본과 북한의 대립으로 비난 받아온 상황에서도 지금의 정대세를 이끌어준 데에 한 몫 한 계기가 된 셈이다.
이후 그의 실질적인 상황을 양보해 북한대표선수로서 뛰게 해달라는 재일조선인축구협회의 적극적인 요청을 FIFA에 제출하면서 지난해 5월 대표선수로 발탁됐다. 이어 그는 한국정부에 한국국적 포기 신청을 냈지만,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되기도 했다. 이후 지난 2007 시즌 12골을 기록하면서 이목을 끌었고, 이어 2008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경기 8골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급부상했다.
 
빠르게 골문으로 파고드는 그의 속도는 최고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공격수인 그가 집중적으로 수비태세를 보이며, 수비수를 등지고 공을 받아 몸을 돌리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시아 최고의 평을 받는 그도 동경에 가까운 대상이 있다. 바로 한국대표선수 박지성이다.  2차전을 앞둔 전날 25일 훈련을 마치고 “박지성이 제일 보고 싶다. 팬으로 만나고 싶다”며 박지성에 대한 궁금증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이어 "박지성이 날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TV에서 많이 봤다. 그를 만나면 잘 부탁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 2월에 열린 동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출전하지 않아 대면하지 못한 박지성을 지난 3월 26일에 열린 2010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전에서 처음으로 맞대결을 펼쳤다. 남북을 대표하는 두선수의 경기는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경기가 끝났다. 하지만 경기 전 의식행사에서 애국가에 이어 흘러나온 북한 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그는 지난날 오로지 민족인 북한을 대표해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자신을 느꼈을 것이며, 자신 뒤에 서있는 가족들, 그리고 한 대 한민족 이였던 남북이 함께 뛸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눈물로 그 의미가 크다. 

그는 “그 어떤 도전이 실패했을 때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을지, 누구보다 '정신력'에 의존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불안하다”고는 하지만 실은 “공이 나를 부른다” 고 말한 정대세 선수를 보면, 오로지 축구만을 바라보는 그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보여지기도 한다.
조선이라는 민족에 결핍되어 있는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도 다양하다. ‘한국국적’, ‘재일동포’ 등 하지만 “조선과, 나 자신을 위해 뛴다"며 확고한 목적의식을 가진 그에게 우선적으로 내놓은 명암은 아마도 ‘북한 대표선수’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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