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개고기 식용’ 논란...국제적 행사 때 외부의 도전에 대한 응전 성격
-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로부터 유래한 도구적 동물론
- 인종차별주의·성차별주의 타파하는데...동물 외면하는 ‘종차별주의’ 여전
- 철학자 피터 싱어 “동물 느끼는 쾌락과 고통도 인간만큼 고려해야”
- 개고기 찬성 측 “개도 가축...식용견과 애완견 철저히 분리하면 문제없어”

올해는 미국 여성이 참정권을 쟁취한 지 100주년 되는 날이다. 1920년 8월 18일 성별을 이유로 투표권을 제한할 수 없다는 수정헌법 19조가 미국 의회를 통과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은 1965년 민권법과 투표법 제정으로 미국 전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투표권을 보장하기도 했다.

도공이 예술 세계의 최선을 위해 못난 사기(沙器)를 쳐 깨부수듯, 인류는 19세기 이후 인종차별주의(Racism)와 성차별주의(Sexism)라는 사기(詐欺)를 타파하고 있다. 한데, 철학자 피터 싱어에 따르면 인류가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거짓이 나타났다. 돼지와 소, 닭, 개 등 다른 동물을 도구로써 이용하는 인간의 종차별주의(Speciesism)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종차별주의 논란은 ‘개 식용’ 문제에 방점을 찍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3부에 걸쳐 종차별주의와 개 식용 논란을 살펴보고자 한다. 1부에선 종차별주의와 개 식용을 둘러싼 논점을 정리한다. 2부에선 주영봉 대한육견협회 사무총장을 만나 개 식용 찬성 측의 입장을 듣고, 3부에서는 개 식용 반대 측인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를 인터뷰한다. -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동물이 느끼는 고통과 쾌락이 인간이 느끼는 같은 양의 고통과 쾌락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동물 해방' 저자 피터 싱어 교수. (사진=Wikimedia Commons)
'동물 해방' 저자 피터 싱어 교수. (사진=Wikimedia Commons)

오스트레일리아 철학자 피터 싱어(1946~)는 자신의 저서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에서 위와 같이 분석했다. 인간과 인간 이외의 동물이 느끼는 고통과 쾌락에 질적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한 우리가 듣기엔 다소 어색한 감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피터 싱어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감성에 호소하지 않고, 철학자답게 이성 중심의 논증을 펼쳤다는 것이다. 그가 이성이 보편적인 공감을 이끄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뉴스포스트>는 기획 기사 1부에서 인간 이외 동물에 대한 도구적 인식의 근원과 피터 싱어가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본 종차별주의, 또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개 식용 논란을 짚어보고자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과 중세 스콜라철학, 근대 서양 철학에서 유래한 ‘도구적 동물론’


인간 이외 동물을 인간을 이롭게 하는 도구적 역할로 규정한 원류는 고대 그리스 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양 철학의 이론적 기반을 정립한 플라톤(BC 427~BC 347)은 현실을 이데아 세계의 복제품으로 봤다. 제작자이자 신인 데미우르고스(demiurge)가 이데아 세계에 존재하는 형상인 에이도스(eidos)를 본 따 질료를 빚어서 현실에 복제품을 내놓는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때 복제품은 완벽한 이데아의 세계보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1510-1511).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가운데 왼쪽 인물이 플라톤, 그 옆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손바닥을 땅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Wikimedia Commons)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1510-1511).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가운데 왼쪽 인물이 플라톤, 그 옆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손바닥을 땅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Wikimedia Commons)

플라톤 이후 서양 철학은 본질주의, 그리고 보수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데아를 복제한 불완전한 현실은 완벽해지기 위해서, 본래 그러해야 할 에이도스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당위성이 부여되는 까닭이다.

모든 사물은 타고난 목적이 있다. 인간은 인간의 본성, 탁자는 탁자의 본성, 돼지는 돼지의 본성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숙고할 수 있는 존재는 ‘이성’을 가진 ‘인간’뿐이다. 이는 인간 중심주의 사상의 배경이 됐다.

이런 사유 방식은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 스콜라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이성을 가진 인간 이외의 동물은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 근대 의무론적 윤리학의 거장 임마누엘 칸트까지 이어졌다.

“가축은 인간에게 사용되기 위해서나 먹히기 위해 존재한다. 야생 동물은 먹히거나, 의복과 도구 등 생활 부속품으로 사용되기 위해 존재한다...(중략)...이런 까닭에 자연이 모든 동물을 인간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322)

“우리는 동물에 대한 직접적인 의무를 갖지 않는다. 동물은 자의식을 갖지 못하고,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한다. 여기서 목적이란 인간이다.” - 임마누엘 칸트(1724~1804)

피터 싱어는 자신의 저서 ‘동물 해방’에서 위와 같은 일부 철학자들의 동물 인식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이를 종차별주의(Speciesism)적이라고 규탄한다.
 


피터 싱어, 제레미 벤담 공리주의를 모든 동물로 확대


피터 싱어는 영국 철학자 제레미 벤담(1748~1832)의 공리주의를 동물 해방 운동의 윤리적 근거로 삼는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흔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표현된다. 최대한 많은 사람의 쾌락은 높이고 고통은 낮추는 게 윤리적으로 옳다는 논리다.

법률가이기도 했던 벤담은 이를 입법 원리로까지 제시했다. 입법자는 특권층의 이익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이익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벤담 공리주의의 특징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느끼는 모든 쾌락에 질적 차이가 없다고 본다는 점이다. 트로트를 듣는 이의 쾌락과 클래식을 듣는 이의 쾌락, 국악을 듣는 이의 쾌락이 양만 같다면, 모두 같은 정도로 윤리적으로 옳다고 본 것이다.

영국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 1832년 유명을 달리한 벤담이지만, 런던에 가면 그를 만나볼 수 있다. 벤담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방부 처리해 보존한 까닭이다. 그는 자신의 시신을 보존해 후배들에게 자극을 주는 게 공리주의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진=Wikimedia Commons)
영국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 1832년 유명을 달리한 벤담이지만, 런던에 가면 그를 만나볼 수 있다. 벤담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방부 처리해 보존한 까닭이다. 그는 자신의 시신을 보존해 후배들에게 자극을 주는 게 공리주의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진=Wikimedia Commons)

피터 싱어는 벤담 공리주의를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까지 확대한다. 소나 돼지 등 동물도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만큼, 인간의 쾌락과 고통만큼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피터 싱어는 인간의 쾌락과 고통이 다른 동물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고방식이 종차별주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종차별주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자신이 속한 인종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 또는 성차별주의자가 자신의 성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아무런 근거가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피터 싱어는 자신의 철학적 입장에 따라 완전한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가끔 동물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채식한다고 하면 “식물은 생명이 없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다.

피터 싱어 반론에 따르면 간혹 식물이 쾌락과 고통을 느낀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아직 식물이 고통을 느낀다고 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쾌락과 고통을 윤리의 기초로 하는 공리주의의 논점에서 보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식물을 먹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이다.

또 만약 식물이 고통을 느낀다고 최종적으로 밝혀지더라도, 생존을 위해 고통 산출이 불가피하다면 공리주의 윤리학에 입각했을 때 고통을 덜 산출하는 식물을 먹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김성한, 1999.)
 


우리나라는 왜 ‘개 식용’만 논란이 될까?...전통 식문화에 대한 도전과 응전


우리나라는 소나 돼지, 닭 등의 식용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대두된 적이 없다. 유독 ‘개 식용’만 논란이 되는 상황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개 식용 문화가 88서울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등으로 해외의 주목을 받으면서 일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공동대표와 참석자들이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개 식용 종식 공약화 및 “반려견과 식용견을 구분하는데 동의한다” 발언한 박완주 의원 공천 취소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후 죽어간 개 상징 인형을 대량으로 쌓아 놓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공동대표와 참석자들이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개 식용 종식 공약화 및 “반려견과 식용견을 구분하는데 동의한다” 발언한 박완주 의원 공천 취소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후 죽어간 개 상징 인형을 대량으로 쌓아 놓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개 식용 전통은 다른 일부 국가들에도 존재한다. 전쟁이나 재난 등 비상시가 아닐 때 개고기를 먹는 나라는 △한국 △중국 △세네갈 △만주 △중부아프리카 △서부아프리카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이 있다. 한때 개고기를 먹었던 대만은 현재는 개 식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특히 개고기가 합법인 중국은 7,000~8,000년 전인 신석기 시대부터 개를 식용으로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신석기 시대 유물 등에서 개 뼈가 발견된 것으로 개를 식용으로 키웠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앞서 언급한 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현재 개고기 식문화가 없다. 특히, 서양은 전통적으로 개고기를 금기 식품으로 취급했다. (최은정, 2010. 박재범, 2004.)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의 국제동물애호협회(IFAW)는 한국의 개고기 문화가 지속되면 한국 상품 불매 운동과 88서울올림픽을 보이콧하겠다는 서신을 한국 정부에 보냈다. 이에 우리나라 정부는 이목이 쏠리는 올림픽 기간에 보신탕 영업 단속을 강화했지만, 올림픽 기간이 끝난 뒤 개 식용 논란은 다시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1999년 김홍신 한나라당 의원 등 여야 의원 20여 명이 개고기 식용을 합법화하는 내용의 축산물가공처리법 개정안을 제출한다고 밝혀, 다시 논란이 일었다. 동물보호단체의 반대 운동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둔 시기적 고려 등으로 결국 이 법 개정안은 백지화됐다.

지난해 7월 개 사육 농민 단체인 대한육견협회 회원들이 초복을 맞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개 식용 금지 법안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7월 개 사육 농민 단체인 대한육견협회 회원들이 초복을 맞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개 식용 금지 법안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개 식용 논쟁에 가장 크게 불이 붙었던 해다. 동물보호 운동가인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한국을 ‘개고기’를 먹는 ‘야만적인 나라’라고 비난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브리짓 바르도를 향한 우리나라 시민들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시민들은 브리짓 바르도의 발언이 월드컵을 앞둔 한국인의 이미지를 실추하고 국격을 떨어뜨린다고 분개했다. (이소영, 2017.)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도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이 보인 보신탕 혐오 반응에 대해 “개고기 문제는 FIFA에서 간여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대응하기도 했다.

사실 피터 싱어를 포함한 동물 해방 운동 사상가들은 ‘모든 동물’의 해방에 방점을 찍는다. ‘개’만이 아닌 모든 동물에 대한 인간의 배타적인 소유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피터 싱어는 한국을 콕 집어 직접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소나 돼지, 닭을 먹으면서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을 비판하는 건 일관성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개 식용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국제적 스포츠 행사를 앞두고 전통 식문화를 비판하는 외부의 도전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응전의 성격이 있는 셈이다. 반면, 국내 동물 해방 운동가들은 개고기 불법화를 계기로 모든 동물의 권리를 인정받고자 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인구주택총조사에 ‘반려동물’ 항목 추가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개 식용 찬반 논란 거세져


통계청은 지난 4일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반려동물’ 항목을 추가한다고 밝혔다.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정책 수요와 사회 변화를 반영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국내 인구는 1,5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사진=뉴스포스트DB)
(사진=뉴스포스트DB)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동물 해방 운동과는 별개로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자신이 키우는 개와 같은 종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등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인 이유로 개 식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반면, 대한육견협회와 개고기 식용에 찬성하는 시민들은 △개도 돼지나 소처럼 가축에 불과하다 △식용견과 애완견으로 철저히 구분해 개 식용을 하면 문제가 없다 △개고기를 합법화해 도축과 유통 과정을 정부가 위생적이고 합리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등을 주장한다.

<뉴스포스트>는 이번 기획 기사의 2부와 3부에서 주영봉 대한육견협회 사무총장과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를 만나 개 식용 찬성과 반대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참고자료
제러미 벤담, 강준호 옮김, 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 아카넷, 2013.
김태길, 윤리학, 철학과현실사, 2010.
Singer Peter, Animal Liberation, Harper Perennial, 2009.
김항철,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위한이론적 실천적 확장전략, 인문학연구,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vol.59, no.1, 통권 118호, pp, 251-279, 2020.
이소영, 한국 동물보호운동의 성장과 프레임 확장에 관한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학위논문, 2017.
최은정, 한국 거주 서구인의 개고기 식용에 관한 식행동 분석:확장된 계획행동이론을 중심으로, 상명대학교 대학원, 생활환경학과 외식영양학전공, 박사학위논문, 2010.
박재범, 개고기의 식용 합법화 찬반론과 위생문제 연구, 중앙대학교 의약식품대학원, 외식산업관리전공, 석사학위논문, 2004. 
김성한,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 고대학술지 「철학연구」 제 22집,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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