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등 공공미술, 단기간에 환경 개선 효과 얻을 수 있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마저 헤아리는 환경 개선을 고민해야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지난 몇 주 〈도시탐구〉 연재를 위해 장충동 여러 지역을 답사했다. 그때마다 장충단로 대로변에 있는 대문 두 개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는 그곳에 집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대문과 벽에는 예쁜 색채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아기자기한 취향의 주인이 사는가 보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대문이 크게 열려 있었다. 어떤 집일까 하고 들여다본 순간 잠시 당황했다. 대문 안에는 집이 아니라 골목이 있었고 좁은 골목을 마주하고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말 그대로 ‘작은 마을’이었다. 대문에 쓰여있던 작은 마을이라는 글씨가 그 안에 진짜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2022. 02. 15) 장충동 대로변 작은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15) 장충동 대로변 작은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15) 장충동 대로변 작은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15) 장충동 대로변 작은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대로변 대문 안 골목, 그리고 주택가

대문 안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골목은 수십 미터가 이어졌고 건물들이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곳곳에 보수한 흔적이 보이는 그 건물들은 지은 지 50년은 넘어 보였다.

건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오래전 건축 자재와 최근의 건축 자재가 뒤섞여 있었다. 벽체는 오래돼 보이는데 현관과 창틀은 새것으로 보이는 집이 있었고, 최신 키패드 열쇠를 단 집이 있는가 하면 그냥 자물쇠로 잠근 집도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이 골목 안 주택들의 연차를 보여주는 듯했다. 

(2022. 02. 15) 장충동 대로변 작은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15) 장충동 대로변 작은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07) 장충동 작은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07) 장충동 작은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얼핏 빨래도 보이고 배달 그릇도 나와 있는 것을 보면 건물들에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조용했다. 혹시 주민이 내다보면 말이라도 걸어볼까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골목을 걸었지만 아무 기척 없었다.

골목 끝까지 걸으니 휘어진 골목길이 계속 이어지고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 마을 뒤편, 장충동의 다른 동네와는 그 모습이 매우 다르다. 그곳에는 저택과 고급 빌라가 모여있다. 재벌 총수가 살았었고 지금도 그의 일가, 또 다른 재벌 총수가 사는 동네이기도 하다. 

골목길을 계속 걸으니 대문이 또 나왔다. 대문 밖으로는 장충단로가 지난다. 대로변에서 봤을 때 두 개의 대문이 있었는데 골목길과 골목길이 서로 연결된 것이었다. 골목 시작과 끝, 혹은 끝과 시작 지점을 대문으로 연결했고, 골목은 알파벳 유(U)를 거꾸로 한 모양으로 이어진 것.

작은 마을에 대문이 있는 연유는

장충단로 대로변의 ‘작은 마을’을 보면서 두 가지가 궁금했다. 이 골목 안 마을의 유래와 왜 골목 입구에 대문을 설치하게 되었는지.

마을의 유래는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월남한 실향민들이 장충동 일대에 벌집촌으로도 불린 좁은 골목들에 터를 잡았고 그들이 냉면과 족발 등 고향 음식을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작은 마을은 오래전 벌집촌의 흔적이었다.

마침 기자는 이를 증언으로 들을 수 있었다. 취재 후 족발을 사러 들른 인근 장충동 족발 골목에서다.

(2022. 02. 15) 장충동 족발 골목의 '뚱뚱이할머니집'..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15) 장충동 족발 골목의 '뚱뚱이할머니집'..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제가 작은 마을에 살고 있어요. 원래는 이 가게를 시작한 제 할머니가 살던 집이었어요. 그곳에 토굴도 있어서 젓갈을 보관하셨지요.” 

장충동 족발 골목 ‘뚱뚱이할머니집’ 김송현 대표의 말이다. 김대표의 할머니 ‘전숙열’은 장충동 족발 골목의 1세대 창업자였다. 원래는 이북 음식 전문점으로 시작해 녹두빈대떡 등을 팔다가 술안주를 찾는 손님들 입맛에 맞춘  ‘돼지족발’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할머니에게 들은 바로는 작은 마을뿐 아니라 장충동 다른 골목들에 실향민들이 많이 살았다고 해요. 그들은 가까운 동대문시장 등에 일터를 가졌었죠. 지금은 작은 마을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살아요. 인근에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상권이 있어서인지 그쪽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니 낮에는 텅 빌 수밖에 없죠.”

창업주 전숙열은 2021년 4월 세상을 떠났고 ‘뚱뚱이할머니집’은 2021년 5월에 중소기업부에서 ‘백년가게’로 선정했다. 

한편, 전숙열 할머니가 젓갈 창고로 썼다던 토굴은 안전을 이유로 지금은 쓰지 않는다고. 김송현 대표는 ‘작은 마을’ 윗동네에서 계속 건물을 짓는 바람에 지반이 약해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2022. 02. 15) 장충동의 재벌 총수가 살았던 저택. 장충동은 실향민이 산 쪽방촌도 있지만 부유층이 산 저택도 많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15) 장충동의 재벌 총수가 살았던 저택. 장충동은 실향민이 산 쪽방촌도 있지만 부유층이 산 저택도 많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15) 장충동의 한 재벌 총수의 집. 노동자들의 요구를 담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15) 장충동의 한 재벌 총수의 집. 노동자들의 요구를 담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그러고 보니 저택과 고급 빌라가 모여있는 장충동 윗동네에서는 크고 작은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작은 마을의 집들과 비교되는 고급 주택으로 보였다. 그런데 작은 마을 입구에 대문은 왜 설치하게 되었을까. 

“장충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제안한 사업이었습니다. 취약한 동네 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였고 동 차원에서 예산을 편성해 2019년 11월에 공사를 했습니다.”

장충동 주민센터 관계자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일종의 주민 참여 사업이었다. 주민 대표들이 작은 마을에 오래된 건물도 많고 여러모로 취약하니 환경도 개선하고 특색 있게 꾸며보자 제안했다고. 

환경 개선 차원에서 대문과 벽을 설치하고 그 위에다 그림을 그렸다는 설명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뭔가를 가리고 싶어서 예쁜 것으로 덮어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마치 집에 누군가 들이닥쳤을 때 눈에 보이는 너저분한 것을 가리려고 뭔가로 덮어놓은 것처럼. 

(2022. 02. 15) 장충동 대로변 작은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15) 장충동 대로변 작은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15) 장충동 대로변 작은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15) 장충동 대로변 작은마을.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그 목적은 달성한 듯싶다. 많지는 않지만 장충동 ‘작은 마을’의 입구가 예쁘고 골목 또한 특색 있다고 평한 블로그와 SNS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림막 안쪽에 사람이 살고 있는데

도시에는 가림막이 흔하다. 지금은 주로 공사 현장에서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가리려고 가림막을 치기도 했다. 올림픽과 월드컵에서도 그랬고 재개발한 구역과 아닌 구역을 구분하려고도 그랬다. 아주 오래전에는 미국 대통령 같은 국빈이 지나가는 노선에 있는 판자촌에 가림막을 친 적도 있었다. 

가림막은 어떤 의도가 있을까. 우선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가려버리는 효과가 있고 안과 밖을 구분하는 효과도 있다. 이 두 효과 덕분에 사람들에게 일종의 착시를 불러오기도 한다. 가림막 안이나 바깥의 모습에 주목하기보다는 그 가림막 자체에 주목하게 한다. 

도시재생 연구자들에 따르면 공공미술에서 많이 활용하는 벽화도 일종의 가림막 역할을 한다고. 부산의 감천마을, 통영의 동피랑, 서울의 이화마을 등이 대표 사례다. 오래된 골목길과 그곳에 늘어선 낡은 집들에 그린 벽화는 낙후한 동네들을 새로운 마을로 태어나게 했다. 

(2022. 02. 23) 서울 대학로 인근 '이화마을'의 벽화.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23) 서울 대학로 인근 '이화마을'의 벽화.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23) 서울 대학로 인근 '이화마을'에 걸린 안내.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2. 23) 서울 대학로 인근 '이화마을'에 걸린 안내.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하지만 예쁜 벽화가 동네에 있고 멋진 사진이 블로그와 SNS에 올라온다고 해서 그 마을 안에 사는 주민들 모두가 반기지는 않나 보다. 이화마을의 경우 주민에 의해 일부 벽화가 지워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방문객이 많아지자 소음과 쓰레기,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불편이 많이 발생한 결과다. 

벽화 등 공공미술을 활용한 도시재생은 단기간 내에 시각적 환경 개선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외모에 치중한다고 해서 내면까지 달라지지는 않는다. 할 수 있다면, 그 안에 사는 주민들 마음마저 헤아리는 환경 개선으로 될 수 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입구가 예뻐진 것은 사실이지만 뭔가 바깥 세상과 분리되는 느낌이 들어요. 왠지 가려야 하는 곳에 사는 느낌이라 할까요."

작은 마을에서 만난 어느 주민의 말이 계속 떠오른다.

 

※ 참고 문헌

김경민 등, 〈지역 특색  자원을 활용한 장충동 골목길 재생 방안〉, 대한건축학회

진경혜, 〈서울시 음식거리의 형성 배경과 발달 과정에 관한 연구〉, 지리학논총

김보미 등, 〈도시재생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이화동 벽화마을에 관한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홍유진 등, 〈벽화마을의 도시재생 활성화 방안 연구〉,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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