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교사(敎師) 지위는 시대가 변하면서 달라졌다. 서슬 퍼런 권위주의 시대에 교사는 교실의 절대자이자 법이었다. 체벌과 ‘촌지’는 존경받는 스승님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도 교실 내에서는 오랜 시간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했다. ‘학생 인권’이란 개념이 대중화된 지 불과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국민 대다수가 교실에서 존중받지 못했던 세대인 가운데, 2023년 대한민국은 무너진 교권(敎權)이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2023년 하반기 교육계는 여느 해와 달랐다. 수학능력시험이나 입시전형, 교육 과정 등 학업이 아닌 교권(敎權)이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교사가 학교에서 교육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 문제라는 것이다.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학부모와 학교 등에 이리저리 치이는 신세로 전락했다.
교권 침해 문제가 대학 입시를 넘어 교육계 이슈 중심에 떠오를 수 있었던 원인에는 20대 젊은 교사의 비극적인 죽음이 있었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은 A모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교내에서 발견됐다. 아이들을 가르칠 꿈에 부풀던 20대 젊은 교사가 꿈을 펼치지도 못하고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은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특히 A교사가 생전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의 교사들이 추모에 나섰다. A교사의 죽음이 교육자들에게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서이초에는 추모객들과 추모 화환이 줄을 이었다. 검은색 옷을 차려입은 현직 교사들이 학교를 직접 방문해 국화꽃과 추모의 메시지를 남겼고, 방문하지 못한 교사들은 추모 화환이라도 배송했다.
교사들의 분노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주말까지 전국 곳곳에서 교권 회복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교원단체는 물론 개별 교사들도 집회에 나오고 있다. 이들은 ▲ 교권 회복을 위한 관련법 개정 ▲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진상 규명 ▲ 교사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 등을 교육 당국과 전 사회에 촉구하고 있다.
교사, 교실의 법에서 봉으로
연합뉴스는 지난 1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의 연도별 교권 침해 현황 자료를 인용하면서 1970년대에는 연평균 10건에 그쳤던 교권 침해 건수가 1990년대에 들어 연평균 50건 이상으로 증가했고, 2000년대에는 연평균 160건, 2010년대에는 430건으로 폭증했다고 보도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교권 침해 사례가 점차 증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교권 침해 사례가 증가한 것은 아니다.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해 왔던 교권 침해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2010년대에는 교권 침해 사례가 2010년 2226건, 2011년 4801건, 2012년 7971건, 2013년 5562건, 2014년 4009건, 2015년 3458건, 2016년 2616건 2017년 2566건, 2018년 2454건, 2019년 2662건, 2020년 1197건, 2021년 2269건으로 나타났다.
교총과 교육부의 통계를 조합해 보면,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민주화를 이루면서 교사의 권위는 점점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교사의 학생 체벌을 전면 금지한 2011년을 기점으로 교권 침해 사례가 2012년까지 뛰어오르다가, 2013년부터 다시 감소했다. 2016년 이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원격 수업이 이뤄진 2020년을 제외하면 해마다 2000건 이상 발생했다. 교권 침해가 소수 비정상적 사례가 아닌, 교실에서의 일상이 된 것이다.
교사들이 말하는 교권 침해란 무엇일까.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교원 8만 9233명 중 92.3%가 ‘본인 또는 학교 내에서 과도한 민원을 받은 사례가 있다’고 답했다. 유·초·특수 교원은 ‘매우 그렇다’에 93.9%로 응답해 학생의 연령이 어릴수록 과도한 민원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민원으로 받는 교사들의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본인 또는 동료 교사가 민원으로 우울증 치료나 휴직 등을 한 경험을 들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교원 96.8%가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학교도, 교육청도, 교육부도 교사를 지켜주지 못했다. ‘교권과 관련해 교육부는 미온적이었고, 대응도 미흡했다는 지적에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에 95.9%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그 중 82.1%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서이초 사건 후 바빠진 교육 당국
교권 침해 문제가 어느 때보다도 커지자 교육 당국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시교육청은 2일 교권 보호 방안으로 ‘교사 면담 예약제’와 ‘대기실 CCTV 설치’ 등을 시범 도입한다고 밝혔다. 학부모 민원에 대한 교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내달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그 밖에도 아동학대로 교사가 신고당하면 교육청에서 변호인 선임비를 선제적으로 지원한다. 학부모와 법적 분쟁으로 가기 전 조정하는 ‘분쟁 조정 서비스’도 강화한다.
대통령실은 교육부를 질책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인 1일 교권 확립을 위한 고시를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학생 인권을 이유로 규칙을 위반한 학생을 방치하는 것은 인권을 이유로 사회 질서를 해치는 범법행위를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올해 2학기부터 학교 현장에서 적용할 고시를 제정하라”고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우리 사회는 교권 침해 문제를 선생님과 학부모,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개인적 갈등 정도로 치부해 왔다. 하지만 교권 침해가 사람을 죽음까지 내몰면서 더는 개인 간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게 됐다. 교육 당국의 발등에는 불이 붙었다. 당장 2학기 시작 전까지 교사를 보호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교권 침해가 해마다 2천 건 이상 지속적으로 발생해도 사실상 방관했던 교육 당국은 이제 선생님들을 지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