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광장

국회대로서 '공교육 멈춤의 날' 집회 열려 서이초 진상규명 및 교권보호법 개정 촉구

[소통광장-교권추락]③ 서이초 교사 49재...악성민원 성토한 교사들

2023. 09. 05 by 이별님 기자

대한민국의 교사(敎師) 지위는 시대가 변하면서 달라졌다. 서슬 퍼런 권위주의 시대에 교사는 교실의 절대자이자 법이었다. 체벌과 ‘촌지’는 존경받는 스승님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도 교실 내에서는 오랜 시간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했다. ‘학생 인권’이란 개념이 대중화된 지 불과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국민 대다수가 교실에서 존중받지 못했던 세대인 가운데, 2023년 대한민국은 무너진 교권(敎權)이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편집자 주-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서이초등학교 사망 교사 49재 추모 집회가 열렸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서이초등학교 사망 교사 49재 추모 집회가 열렸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사의 49재를 맞아 전국의 선생님들이 학교 대신 영등포구 국회대로 앞으로 향했다. 이들은 교권 회복을 위한 '공교육 멈춤의 날'을 선언하고, 악성민원의 장으로 변질된 학교 현장을 고발했다.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서이초등학교 사망 교사 49재 추모 집회가 열렸다. 전국의 교사들은 고인의 49재인 이날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선언하고, 학교 대신 집회 현장으로 모였다. 개인 휴가와 병가 등을 이용해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도 있었지만, 일부 학교는 임시 휴교를 하기도 했다.

주최 측 추산 4만 명의 인파가 국회대로를 가득 메웠다. 각 시·도에서 진행된 집회까지 더하면 약 12만 명 규모의 교사들이 단체 행동에 나선 것으로 추산된다. 영상 30도에 달하는 무더위에도 집회 참가자들은 추모의 의미를 담아 검은색 옷을 차려입었다. 하늘은 흐렸지만, 습도가 높아 한여름 날씨를 방불케 했다.

집회에서는 서이초 교사를 비롯해 교권 침해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동료 교사들을 추모하면서 이들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또한 정당한 생활지도를 한 교사가 아동학대로 고소당하지 않도록 하는 등 교권 보호 법안을 개정하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열린 서이초등학교 사망 교사 49재 추모 집회에서 현직 교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열린 서이초등학교 사망 교사 49재 추모 집회에서 현직 교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과도한 민원은 기본, 욕설에 폭언까지

'공교육 멈춤의 날' 현장은 성토의 장으로 바뀌었다. 현직 교사들이 단상 앞으로 나와 망가진 교육 현실을 고발할 때에는 집회 참가자들이 악성민원인을 향한 야유를 퍼붓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공립 유치원 교사 A모 씨는 "유아 교육을 하는 교사이고 싶었지만, 교권은 물론 인권조차 존중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A씨는 "'아이가 놀이터를 싫어하니 실외 놀이를 하지 말라'는 양육자, '아이가 결석한 날에 왜 요리 활동을 했냐'고 따지는 양육자, '한글을 잘 모르는 아이가 스트레스받으니 끝말잇기를 하지 말라'는 양육자, '시간을 맞춰 아이에게 유산균을 먹여 달라'는 양육자, 유치원 밖에서 부모님들끼리 다퉈놓고 '교사가 해결하지 않으면 유치원을 그만두겠다'는 양육자도 있었다"고 전했다.

고인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발언도 이어졌다. 20년 차 초등학교 교사인 B모 씨는 6년 전 운동장 수업 중 모르는 학부모로부터 인신공격과 폭언에 가까운 욕설을 들었다. 2년 넘는 재판 끝에 가해 학부모는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정작 B씨는 학교와 교육청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B씨는 "교내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런 잘못도 없고, 오직 사과만 바랐던 저는 곧장 도 교육청에 재심을 청구했다"면서 "하지만 도 교육청은 '학부모의 지속적 민원 제기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가 수반된다고 하더라도 교권 침해로 볼 수 없다'면서 위원회를 열지도 않은 채 각하 처분 공문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대학 입시를 담당하는 고등학교 교사도 단상 앞으로 나왔다. 고등학교 교사 C모 씨는 "1년에 써야 하는 생활기록부의 양은 선생님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총 9반을 가르쳤는데, 270명의 과목별 세부 특이사항을 한 학생당 500자씩 써야 했다"며 "담임 학급과 동아리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합하면 약 15만 자에 달하는 글을 작성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C씨는 "선생님들은 1년에 네 차례의 지필평가와 여러 차례 수행평가에 대한 민원에 시달린다. '내가 영문과 교수인데' 등의 말을 앞세워 자녀가 틀린 문항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며 "학교 내 교과 교사들이 협의해 '오류 없음'으로 판명해도, 해당 문항이 복수정답 처리될 때까지 민원을 넣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열린 서이초등학교 사망 교사 49재 추모 집회에서 참가자가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열린 서이초등학교 사망 교사 49재 추모 집회에서 참가자가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공교육 멈춤의 날' 반응은?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교사 투쟁에 대한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D모 씨는 <뉴스포스트>에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도 예외가 아니어야 한다"며 "교사들이 나서지 않았으면, 교권 침해 문제를 몰랐을 것"이라고 지지했다.

교권 회복을 위해 근본적인 교육 문제를 해결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경기도 소재 고등학교 교사 F모 씨는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 원인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학생 인권과 교사의 교권은 병행할 수 있다고 본다"며 "대학에만 목을 매는 시스템 때문에 '입시에 도움 안 되는' 학교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보다 입시 위주 교육 시스템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교육부는 교사들의 대규모 투쟁에 두 손을 들었다. '공교육 멈춤의 날' 참여 교사들을 상대로 파면이나 해임 등 강경 대응하겠다던 교육부는 입장을 180도 선회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교사들의 집단 연가와 병가에 대해 징계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하고, 매주 교사들을 만나 소통하겠다는 약속도 다짐했다.

이 장관은 교원단체 관계자들과 정부종합청사에서 만나 "분열과 갈등보다는 선생님들의 상처와 상실감을 치유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는데 온 힘을 쏟겠다"며 "교원-학생-학부모가 존중하는 '모두의 학교' 운동을 시작한다. 현장 의견을 경청하기 위해 매주 1회 장관이 직접 현장 선생님들과 정례적으로 소통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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