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대규모 집단 범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대한민국 사회는 이주민 차별과 혐오 문제라는 또 다른 숙제를 떠안게 됐다. 무고한 캄보디아 이주민들은 물론 전체 국민들이 '제노포비아'의 대상이 됐다. 이에 국내에서도 자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9일 틱톡을 비롯한 SNS상에서 자국 내 조직범죄를 성토하는 캄보디아 출신 이용자들의 게시물이 전파되고 있다. 이들은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조직범죄와 관련해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캄보디아 사람들은 나쁘지 않다", "인종차별을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일부 범죄 사례로 캄보디아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면 안 된다는 취지다.
댓글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캄보디아 경찰도 연루 됐다", "부패한 캄보디아 정부가 문제다" 등 현지 치안과 정치적 상황에 대한 비판이 댓글 창에 이어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후진국이 문제다', '캄보디아는 집단 범죄 국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한국에서 떠나라' 등 외국인을 향한 혐오·차별적 발언들도 서슴지 않았다.
캄보디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일부 온라인 댓글에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리얼미터가 지난 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50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범죄 사태가 동남아 국가 해외여행에 대한 인식 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물은 결과 10명 중 8명 이상(82.4%)이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아울러 과거 정부에서 주도한 '캄보디아 지원사업'에 졸속 행정이나 이권 개입 등의 비위 행위가 있었을 것이란 일각의 주장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물은 결과 절반 이상인 57%가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5.9%로, '공감한다'는 응답과 무려 21.1% 포인트 차이가 났다.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범죄 사태를 두고 해당 국가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전반적인 인식이 나빠지면서 '제노포비아'로 일컫는 외국인 혐오·차별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온라인을 벗어난 혐오와 차별은 한국 내 외국인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국내에 체류 중인 캄보디아인들 일부는 오프라인에서 직접적인 폭력을 마주하기도 했다.
YTN과 KBS 등 방송사에서는 국내에 거주하는 캄보디아인이 내국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건이 보도됐다. 이달 19일 경기도 이천시에서는 술에 취한 남성이 한 캄보디아인에게 국적을 물은 뒤 답을 듣고는 머리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피해를 당한 캄보디아인은 신체적으로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지만,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범죄 국가' 오명에 억울한 캄보디아
캄보디아에서 형성된 조직 범죄는 불과 수년 전 일이다. 국제앰네스티와 미국 재무부 등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범죄 단지는 2020년대 초에 형성됐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집권 초부터 자국 내 조직범죄를 강하게 단속하면서 조직원들은 동남아시아 인접국가로 이동했다. 설상가상 코로나19 사태에 카지노를 비롯한 사행성 산업이 무너지면서 온라인 사기 범죄로 업종을 변경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로 캄보디아 내 범죄 조직의 상당수는 현지인이 아닌 중국인을 비롯한 외부인이다. 국가정보원은 한국인 2천여 명이 캄보디아 내 조직범죄에 가담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다수는 해외에서 고수익을 보장하는 아르바이트가 있다는 허위 취업 광고를 보도 캄보디아로 떠났다. 일부는 목숨을 걸고 탈출에 성공했지만, 사망자도 발생했다. 관광객으로 캄보디아를 방문했다가 납치돼 범죄 조직으로 끌려간 사례도 소수 있다.
한국인 조직원들 대부분이 언제부터 범행에 가담했는지는 현재까지 알 수 없다. 처음에는 취업 사기에 속은 피해자였지만, 범죄 조직에 협조하면서 가해자가 된 한국인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범죄에 가담했을 수 있다. 캄보디아 현지 경찰에게 체포됐다가 이달 국내로 송환된 한국인들 대부분은 현재 구속수사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지에 가서 온라인스캠 조직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로 피눈물 나게 하는 사기 행각을 벌인 사람들"이라며 "범죄 조직이 캄보디아의 치안력이 약한 것을 틈타 횡횡하고 있는 것이다. 2천 명 이상 되는 인원이 자국민을 상대로 사기 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실은 이런데 우리는 캄보디아 국민을 비난하고, 캄보디아 국민은 지금 한국을 혐오하는 정서가 생기고 있다. 수천 명이 가서 국민을 상대로 범죄행위를 벌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캄보디아에 또는 국제사회에 부끄러워해야 할 상황"이라며 "캄보디아 사태의 제일 큰 피해자는 (사기를 당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두 번째는 억울하게 낙인찍혀 생업에 엄청난 타격을 받는 현지 동포들"이라고 덧붙였다.
캄보디아 내 범죄 조직에서 한국인들의 위치 여부와 상관없이 국익을 위해서는 외국인 혐오가 근절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경상북도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앞두고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적 행위나 모욕적 표현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K-시대에 대한민국의 국격과 위상을 떨어트리는 행위인 만큼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