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인천에서 계모와 친부의 학대로 초등학교 남학생이 목숨을 잃어 대한민국이 들끓고 있다. 6학년에 올라갈 예정이었던 이시우 군은 지난달 7일 인천시 남동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친모가 공개한 국립과학수사 연구원 부검 감정서에 따르면 이군의 직접 사인은 여러 둔력에 의한 사망이다. 폭행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의미다.
계모와 친부와 지내는 동안 이군은 상습 폭행과 각종 엽기적 고문에 시달렸다. 부검 과정에서 발견된 230개 이상의 상처는 학대의 잔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학대뿐만 아니라 굶주림에도 시달렸던 나머지 이군의 사망 당시 몸무게는 또래 아이들보다 15kg가 넘게 적었다. 하지만 계모와 친부는 학대 혐의만 일부 인정 했을 뿐, 살해 등 주요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
비극적이게도 이군 사례와 비슷한 사건들은 언론에 꾸준히 등장한다. 1998년 영훈이 남매 사건, 2000년 신애 사건, 2007년 성민이 사건, 2013년 서현이 사건, 2016년 원영이 사건, 2020년 정인이 사건까지 피해 아동의 이름이 대중 앞에 공개된 사례만 해도 수년에 한 번 꼴이다.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보도되면 전 국가 차원에서 분노 여론이 일어나지만 그때뿐이다. 아동학대 문제는 늘 반복돼 왔다.
<뉴스포스트>는 아동학대 근절에 한발 다가가기 위해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짚어보기로 했다. 피해 아동이 겪었던 잔인한 학대 피해 정황이 아닌, 아이의 보호자가 잔혹한 범죄자가 된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범죄자가 되기 전, 성장기를 주목했다. 이들 역시 성장기에 아동학대를 당한 피해자였는지 말이다.
실제로 지난 2021년 경기 용인에서 10살 조카를 물고문 살해한 이모의 경우 성장기에 아버지로부터 지독한 아동학대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모든 아동학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진 않기 때문에 학대의 세대 간 전이를 쉽게 단정짓기는 어렵다. 본지는 이 같은 추정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 학술적으로 확인해 봤다.
아동학대 생존자에서 가해자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7년 발간한 ‘생애주기별 학대경험의 상호관계성 연구’ 보고서에는 의미 있는 통계자료가 나온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성인 4008명(남성 1934명, 여성 2074명) 중 ‘한 번이라도 가정폭력 가해 경험이 있다’는 사람은 2153명으로 53.7%를 차지했는데, 이들 중 절반 이상인 52.8%는 ‘아동기와 성인기 모두 학대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36.7%는 ‘아동기에만 학대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고, 나머지 9.1%만이 ‘과거 폭력 피해 경험이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즉 가해 경험이 있는 성인 89.5%가 아동기에 학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연구 결과는 이전에도 있었다. 김재엽, 류원정, 오세헌, 이현 연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이 발표한 2014년 ‘가정폭력의 세대 간 전이에 관한 연구: 여성의 생애주기 상 재피해 영향을 중심으로’가 대표적이다. 논문은 학대 피해 경험 여성 676명을 ▲ 성장기 피해(아동학대) ▲ 배우자 신체폭력 피해 ▲ 중복 피해(아동학대+배우자 신체폭력 피해) 집단으로 나눠 분석했는데, 중복 피해 집단 여성이 자녀학대에 가장 높은 영향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장기 피해 집단, 배우자 신체 피해 집단 순으로 자녀를 학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비교적 최근인 2020년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선화, 이주희 동신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가 발표한 ‘학대받은 아동의 부모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에 따르면 아동기 학대 경험 부모 6명을 심층 면담한 결과, 이들 중 4명이 부모에게 받았던 학대를 자녀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물려준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 문제 전문가의 의견도 연구 결과와 같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성장기에 학대를 경험한 부모들 중 약 75%가 자녀에게도 학대를 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국내외 연구 모두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며 “학대의 세대 간 전이 여부는 학술적인 근거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아동학대 대물림 연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와 샘 휴스턴 대학 형사법학과 교수들이 2012년 발표한 연구*는 아동기 학대 피해 경험이 있는 부모 중에서도 자녀를 학대하지 않은 사례와 아동기 학대 피해 경험이 없어도 자녀를 학대하는 사례를 분석하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선행 연구들을 비판하면서 아동학대 예방 및 치료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서는 ‘대물림’ 보다 다양한 평가 도구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Does Maltreatment Beget Maltreatment? A Systematic Review of the Intergenerational Literature, Terence P. Thornberry·Kelly E. Knight·Peter J. Lovegrove, 2012
아동학대 대물림, 끊을 방법은?
이배근 회장은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교사나 의사 등 법률로 정한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들 외에도 평범한 이웃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아동학대 예방 교육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동학대 대물림을 끊기 위한 예방법에는 ‘부모 교육’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선진국에서는 아동학대 예방과 아동 발달 과정 등의 내용이 담긴 ‘부모 교육’이 아이들 교육과정에 포함됐다”며 “부모를 대상으로 부모 교육을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 교육에서도 아이들에게 미리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부모의 아동기 학대경험과 양육스트레스가 자녀 학대와 자녀 우울에 미치는 영향: 아동의 사회적 지지 인식에 따른 완충효과’ 보고서는 기존 연구에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만 9~17세 아동 1인과 부모 1인을 대상으로 수집된 1515건의 부모-아동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아동학대 경험이 있는 부모 모두가 자녀를 학대하는 것이 아니며,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에 따라 자녀 학대에 일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은 자녀학대 위기가정에서는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를 낮추려는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뿐만 아니라 ▲ 가정방문 서비스 등 아동학대 예방 교육 접근성 강화 ▲ 보건 영역에서 부모의 아동기 학대경험 확인 및 치료 지원 ▲ 학대 피해 아동 지원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검증 결과]
대체로 사실. 아동학대의 대물림, 학대의 세대 간 전이는 국내외 많은 연구 자료에서도 증명됐다. 학술적 근거가 있다. 다만 대물림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환경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해외 연구 자료도 존재해 ‘사실’이 아닌 ‘대체로 사실’로 판단했다.
[참고 자료]
학대사망 초등생, 다리 상처만 232개…CCTV 감시·상습 폭행, 연합뉴스, 2023.03.20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생애주기별 학대경험의 상호관계성 연구, 2017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모의 아동기 학대경험과 양육스트레스가 자녀 학대와 자녀 우울에 미치는 영향: 아동의 사회적 지지 인식에 따른 완충효과, 2022
학대받은 아동의 부모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 이선화·이주희, 2020
가정폭력의 세대 간 전이에 관한 연구: 여성의 생애주기 상 재피해 영향을 중심으로, 김재엽·류원정·오세헌·이현, 2014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 전화 인터뷰

https://petitions.assembly.go.kr/status/registered/F655957F5F946C76E054B49691C1987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