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패트롤

[르포] 분당 정자교 붕괴...지난 수십 년 허공 다리를 건너다녔다

2023. 04. 12 by 강대호 기자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매일 건너다니던 다리가 무너졌다는 건 어떤 경험일까. 그 순간 그곳을 지나는 이가 자기일 수도 있었다는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게다가 근처의 다른 다리에도 위험 신호가 포착되었다. 그러니 돌다리도 다시 한번 더 두드려 봐야 하는 심정이 되지 않았을까.

(2023. 04. 11) 성남시 분당 탄천의 정자교. 2023년 4월 5일 보행로가 무너져 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3. 04. 11) 성남시 분당 탄천의 정자교. 2023년 4월 5일 보행로가 무너져 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돌다리가 무너졌다

지난 5일 분당 주민들은 성남시로부터 ‘안전 안내 문자’를 받았다. “분당구 정자교 파손에 따라 현재 통제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문자를 받은 시각은 오전 10시 41분으로 사고가 난 지 약 1시간 후였다.

정자동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김현욱씨(가명, 56세)는 이 문자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했다. 분당 도로에 하수관 파열로 인해 크고 작은 싱크홀 사고가 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자의 사고도 그런 유형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김씨는 가족들이 전화를 걸어와서야 사고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고. 

“정자동 오피스 거리에서 식당을 하는 저는 아파트를 나서 ‘정자교’를 걸어서 탄천을 건너가곤 했거든요. 점심 영업을 준비하는데 부재중 전화가 많이 와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출근 시간대가 달랐지만 가족들은 혹시나 했다네요. 아무튼 속보에 뜬 사고 사진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탄천의 정자교 인근에는 정자동 아파트 단지와 주택단지가 있다. 다리와 연결되는 대로변에는 신분당선 정자역이 있고 각종 학원과 병원이 입주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두산 등 크고 작은 회사들도 모여있다. 그러니까 정자교는 평소 건너다니는 이가 많은 교량이었다. 만약 인파가 몰렸을 때 사고가 났더라면 더욱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뻔했다. 

수내동에서 탄천 산책로를 걸어서 정자동의 노인복지관에 다닌다는 오모 노인(여, 75세)은 사고 당일 산책로 대신 대로변 인도로 걸어갔다고 했다. 그런데 불정교 즈음에서 사람들이 술렁이는 게 느껴졌다고.

“사람들이 다리에 균열이 생겼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잘 몰랐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렇다니 불안해지더라고요. 누군가 119에 신고하는 소리를 들었지요.”

성남시 주민들은 오후 3시 14분경에 “불정교 전면 통제” 안전 안내 문자를 받았다. “탄천 산책로 구간 이용”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성남대로에서 KT 분당 본사로 연결되는 불정교 아래는 탄천 산책로 구간에서도 사람이 많이 지나는 곳이었다. 

불안한 다리는 또 있었다. 수내동에서 백현동 방향의 수내교도 보행로가 통제됐다. 이 다리는 분당-내곡 간 도시고속화도로, 경부고속도로 등과 연결돼 많은 교통량이 있는 곳이다. 언론에 공개된 수내교의 인도 쪽 난간과 보행로는 눈에 띄게 휘어 있었다. 

(2023. 04. 11) 성남시 분당 탄천의 수내교. 보행로 부분에 이상이 발견되어 잭서포트로 보완 공사를 했다. 4월 12일 현재 보행로가 차단됐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3. 04. 11) 성남시 분당 탄천의 수내교. 보행로 부분에 이상이 발견되어 잭서포트로 보완 공사를 했다. 4월 12일 현재 보행로가 차단됐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1기 신도시이면서 한때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분당의 탄천 교량들이 불안하다. 주민들이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균열 흔적이나 휜 모습이 어쩌면 위험을 경고한 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탄천을 지나는 시민들은 평소에 쳐다보지 않던 다리 교각과 상판을 살펴보며 지나가야 할 형편이 되었다. 

결국 성남시는 지난 7일 오후 6시 사송교에서 오리교 사이, 즉 야탑역과 오리역 사이의 분당 탄천 구간의 진입을 통제한다고 시민들에게 문자로 알렸다. 탄천 교량들에 대한 긴급 안전 점검 및 보강재 설치 공사가 그 이유였다.

허공에 뜬 다리였다고?

성남시와 전문가들의 진단 결과 성남시 분당구 탄천을 가로지르는 주요 교량 20개 중 16개 다리의 보행로가 ‘외팔보(캔틸레버)’ 공법으로 시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차도만 교각이 받치고 있고 양쪽 보행로에는 지지대가 없는 형태의 공법을 말한다.

다시 말해 붕괴사고가 일어난 정자교 등 16개 다리의 보행로가 하중을 지탱하는 지지대가 없이 다리 상판에 매달린 채, 어쩌면 허공에 뜬 채로  30년 간 이용돼 온 것. 

이에 따라 성남시는 지난 주말 16개의 다리 보행로에 보강재를 설치 공사를 했다. 붕괴 방지용 구조물인 ‘잭서포트’ 1107개를 긴급 설치했다. 잭서포트는 다리 상판 구조물에 과다한 하중과 진동이 가해져도 균열이나 붕괴 등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구조물이다. 

(2023. .04. 11) 성남시 분당 탄천의 궁내교. 잭서포트를 설치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3. .04. 11) 성남시 분당 탄천의 궁내교. 잭서포트를 설치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3. 04. 11) 성남시 분당 탄천 진입로 곳곳에 걸린 통제 안내.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3. 04. 11) 성남시 분당 탄천 진입로 곳곳에 걸린 통제 안내.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성남시 관계자는 “임시로 설치한 구조물은 안정성이 확보된 후 제거할” 것이고 “수내·불정·금곡·궁내교 4개 교량은 비파괴 검사와 철근 탐사, 포장 하부 균열 검사를 추가한 정밀 안전 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1일 오후 탄천 일대는 공사 중이었다. 성남시의 발표처럼 탄천의 주요 다리의 보행로 부분에 잭서포트가 설치돼 있거나 보완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수내·불정·금곡교 등 3개의 탄천 다리는 보행로가 통제된 상태다. 그리고 탄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 진입로 곳곳에 출입을 금지한다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고 차단 줄도 처져 있다.

(2023. 04. 11) 지난 4월 5일 사고로 붕괴된 정자교의 보행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3. 04. 11) 지난 4월 5일 사고로 붕괴된 정자교의 보행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3. 04. 11) 지난 4월 5일 사고로 붕괴된 정자교의 보행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3. 04. 11) 지난 4월 5일 사고로 붕괴된 정자교의 보행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사고가 난 정자교는 보행로는 물론 차도까지 통제되어 있다. 무너진 보행로와 잔해를 직접 보니 사고의 심각성이 느껴졌다. 다리 위에서는 안전 검사와 사고 수습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사고 현장은 대로변이고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 바로 옆이다. 많은 이가 차를 타고 지나면서 혹은 버스를 기다리면서 사고 현장을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분당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다는 강일환씨(가명, 62세)는 분당이 더는 신도시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한 30년 살다 보니 아파트가 많이 낡았더라고요. 엘리베이터 고장도 잦고요. 그래서 우리 단지는 리모델링을 계획하는데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고쳐야 할 건 아파트가 아니라 다리였네요. 게다가 허공에 뜬 다리를 수십 년 건너다녔다니 그동안 무사했던 걸 감사해야 하는 건가요? 비만 오면 잠기는 징검다리가 차라리 안전할 거 같네요.”

탄천에는 징검다리가 여러 곳에 있다. 실제 건너다닐 수 있는 다리이지만 사실 경관 효과가 더 컸었다. 그런데 이번 사고 여파로 징검다리가 보행이 통제된 다리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전망이다. 

성남시는 보행이 통제된 수내교·금곡교·불정교를 14일부터 1개 차로만 임시보행로로 개통할 계획이라 밝혔다. 또한 주민들의 보행 편의를 위해 정자교에서 미금역 방향 약 70m 지점에 징검다리를 놓을 것이라고도 발표했다.

1기 신도시 분당 주민들은 단순하지만 인류의 오랜 지혜가 담겨 있는 징검다리를 불안한 탄천 다리 대신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

(2023. 04. 11) 지난 4월 5일 붕괴 사고로 통제되고 있는 정자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3. 04. 11) 지난 4월 5일 붕괴 사고로 통제되고 있는 정자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