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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과 산불의 기억을 증언하는 인근 동네 주민들

[르포] “아직 메캐한 냄새가”...인왕산 산불 현장을 가다

2023. 04. 27 by 강대호 기자

[뉴스포스트=강대호기자] 4월 초의 인왕산 산불은 서울이 산불에 취약한 곳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강북 도심만 해도 인왕산, 북악산, 남산에 둘러싸여 있고 그 바깥으로 범위를 넓히면 북한산에 접하고 있다. 이 산들은 크고 작은 등성이로 연결되어 있어 만약 산불이 진화되지 않고 퍼진다면 모든 산으로 옮겨붙을 위험이 있다.

(2023. 04. 26) 인왕산 산불 현장에서 바라본 홍제동.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3. 04. 26) 인왕산 산불 현장에서 바라본 홍제동.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울 도심의 인왕산에 발생한 산불

기자에게 인왕산 산불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난 3월 ‘서대문구의 마을버스’ 연재 취재를 위해 홍제동, 특히 개미마을을 여러 차례 방문했었고, 그 주에도 인왕산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홍제동 개미마을은 인왕산 중턱의 경사진 골목에 자리 잡은 무허가 주택이 밀집한 동네이다. 

개미마을은 인왕산 등산로 입구이기도 하다. 산길을 따라가면 청와대 옆 북촌이나 부암동과 연결되고 무악재를 지나 안산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인왕산 산불 현장은 개미마을에서 가까웠다. 등산로 초입에서 불에 탄 나무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코가 먼저 알아챘다. 메케한 냄새가 났다. 탄 냄새를 따라 기차바위 방향으로 10분 정도 오르니 불에 탄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왕산 산불 현장. 불에 탄 나무들이 보인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인왕산 산불 현장. 불에 탄 나무들이 보인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인왕산 산불 현장. 불에 탄 나무들이 보인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인왕산 산불 현장. 불에 탄 나무들이 보인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검게 그은 땅 위로 검게 탄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옆을 등산객들이 지났다. 홍제동 대로변 아파트에 사는 김모씨(여, 65세)는 화재 당일 많이 놀랐다고 했다.

“큰길에서 연기는 물론 불길까지 보이는데 가슴이 벌벌 떨리더라고요. 그 바로 아래에 아파트 단지에 사니까요. 나중에 들어보니 집에서 귀중품 챙겨 나온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더라고요.”

무악재 너머 홍제역 방향으로 가는 통일로에서 인왕산을 올려다보면 인왕산 화재의 흔적이 보인다. 초록색 나무들 사이로 갈색으로 변한 나무들이 있고 그 아래에 아파트 단지가 있다. 만약 산불이 진화되지 않았더라면 산 아래 아파트 단지까지 번졌을지도 모른다. 

홍제역 인근 대로 변에서 촬영한 인왕산. 산불 현장 아래에 아파트 단지가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홍제역 인근 대로 변에서 촬영한 인왕산. 산불 현장 아래에 아파트 단지가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지금도 탄내가 나지만 처음에는 냄새가 심해서 다니기 힘들었어요. 그동안 비가 몇 번 내렸지만 탄 냄새는 가시지 않네요. 저렇게 탄 나무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염려되네요.”

김씨는 무엇보다 불에 탄 나무들 모습에 안타까워했다. 불에 탄 나무들은 거의 소나무였다. 싹 타버린 나무도 있지만 한쪽만 타거나 그을린 나무도 있었다. 하지만 그 나무들의 잎들은 모두 갈색으로 변했다.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불에 탄 나무들의 운명은?

나무가 일부만 탔더라도 그 정도가 심하면 자연 회복이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불에 그을렸다고 해서 모든 나무가 죽는 건 아니라고. 산불은 그을음 정도 등을 기준으로 ‘지표화(地表火)와 수관화(樹冠火)’로 분류된다. 

지표화는 낙엽 등 지표면에 있는 연료가 불이 타는 것을 말하고, 수관화는 나무의 잎과 가지가 타는 불을 일컫는다. 산불은 보통 지표화로 발생하고 나무로 옮겨붙은 후 나무가 연료가 되어 강하게 퍼져 나간다.

인왕산 산불 현장. 불에 탄 나무들이 보인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인왕산 산불 현장. 불에 탄 나무들이 보인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인왕산 산불 현장. 나무들은 물론 등산로의 구조물도 탔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인왕산 산불 현장. 나무들은 물론 등산로의 구조물도 탔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만약 지상의 낙엽과 초본층만 태우는, 혹은 나무 아랫부분만 타거나 그을린 지표화라면 땅속에 전달되는 열이 매우 적어 지하부의 피해가 적어서 식물들이 재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인왕산 산불로 탄 나무들을 보면 한쪽만 불에 타고 다른 한쪽은 멀쩡한 나무도 있어 전문가들의 정밀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소방·경찰·산림청·국립산림과학원의 피해 삼림에 대한 합동 정밀 감식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 결과에 따라 피해 삼림 복구 계획이 세워진다고. 이번 산불은 축구장 21개에 해당하는 임야 면적 15.2ha를 태웠다.

개미마을과 인왕산

4월 2일 인왕산에 산불이 발생했다는 속보를 접했을 때 기자는 제일 먼저 개미마을이 떠올랐다. 개미마을은 인왕산과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인왕산의 한 부분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산불이 개미마을 인근까지 번지고 있고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다는 속보들이 잇달았었다.

지난 3월 개미마을을 취재할 때 동네가 산불에 취약하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산과 바로 붙어 있는 데다가 목재로 얼기설기 지은 집들이 밀집해 있었다. 게다가 연탄을 때는 집이 많아 연탄재를 집 밖에 쌓아두는 집이 있었다. 만약 작은 불씨라도 있으면 불쏘시개가 될만한 것들이 개미마을에는 많았다. 

다행히 산불은 진화됐고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십여 일이 지난 개미마을은 예전과 다름없는 조용한 분위기였다. 개미마을 주민 권모씨(남, 80세)는 차분하게 그날을 기억했다.

“지나고 보니 별일 없었지만, 그날은 무척 놀랐지요. 여기서 불은 보이지 않았지만 연기가 보였고 메케한 냄새가 풍겨왔거든요. 사람들이 대피해야 한다고 해서 허겁지겁 내려갔어요. 공무원들이 학교 강당에 가라고 했는데 그냥 바깥에서 산 쪽만 바라보다가 집에 가도 좋다고 해서 돌아왔지요.”

인왕중학교 근처에 사는 이모씨(여, 78세)는 대피하라는 방송을 듣고 집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소방차와 경찰차가 개미마을로 올라가는 도로에 꽉 차 있고 산 위에서 불길까지 보여 무척 놀랐고 며칠 “가슴이 두근두근”돼 병원에 가봐야 하나 했지만 “큰일 없이 마무리돼 다행”이라고 했다.

인왕산 산불 현장에서 바라본 홍제동.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인왕산 산불 현장에서 바라본 홍제동.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올봄은 유난히 산불이 잦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건조한 기후가 계속돼 그렇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삼림 지역의 특성이 변했다고 한다. 

지난 50~60년 정도의 기상 관측 자료들을 분석해 보면 예전에 온난하고 수분 있던 산림 지역이 지금은 굉장히 건조한 산림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겨울에 바짝 마른 가지들과 낙엽들에 조그만 불이라도 붙으면 산불이 걷잡을 수 없어지게 된다는 것.

검고 누렇게 변한 인왕산이 원래대로 복원되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그리고 이번 봄 산불로 사라진 전국의 삼림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전국 주요 산의 등산로 곳곳에 있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산불 진화 장비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봄이다.

인왕산 등산로에 있는 산불 진화 장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인왕산 등산로에 있는 산불 진화 장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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