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패트롤

당시 서현역 주변 시민들, 서로 살피며 불안한 기색 목격자 “사람들 소리치며 뛰어다니고 아수라장” 인근 카페 주인 “놀란 마음에 바로 문을 닫았다”

[르포] “지금도 가슴이 철렁”...흉기 난동 벌어진 서현역

2023. 08. 04 by 강대호 기자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어제(3일) 저녁 6시가 좀 넘었을 무렵 기자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 화면에 뜬 아내의 이름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평소 용건이 있으면 먼저 문자로 전하고 용건이 길어지게 되면 통화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자도 없이 전화를 먼저 걸어왔다는 건 뭔가 급한 일이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아내로부터 서현역에서 벌어진 칼부림 사고 소식을 들었다. 그제야 뉴스를 검색해 봤다. 서현역에서 여러 사람이 흉기 난동으로 희생된 참사가 일어났다. 한 20대 남성이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후 다시 백화점으로 들어가 칼부림을 부려 모두 1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서현역 인근의 차단 테이프. 8월 3일 목요일 오후 6시경 서현역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 현장으로 부상자들이 쓰러진 곳이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현역 인근의 차단 테이프. 8월 3일 목요일 오후 6시경 서현역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 현장으로 부상자들이 쓰러진 곳이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분당에서 가장 번화한 서현역

기자는 성남시 분당구에 산다. 동창 등 여러 지인도 분당에 살고 있어 서현역 등 전철역 근처에서 만남이 잦은 편이었다. 사실 목요일 저녁에도 원래는 서현역에서 모임을 하려 했는데 멤버 중 한 명이 서울 강북에 살아서 중간 지점인 강남에서 모인 거였다. 아내는 평소처럼 서현역 근처에서 모일까 봐 놀란 마음에 연락한 거였고.

서현역 주변은 분당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다. 분당신도시 초기에 들어선 시범단지와 이매촌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서현역 위로는 백화점이 있고 그 주변으로는 각종 식당과 카페, 그리고 술집들이 밀집한 먹자거리가 형성돼 있다. 

또한 서현역 근처에는 대형서점 2곳과 멀티플렉스 영화관 2곳이 있고, 주변에 학원가도 형성돼 있다. 그리고, 분당구청과 우체국 등 관공서와 크고 작은 회사들이 서현역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서현역은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서현역으로는 분당수인선 전철이 지나고, 서현역 주변 대로변에는 서울과 경기도 여러 지역으로 향하는 광역버스가 지난다. 물론 많은 성남시 시내버스와 마을버스도 서현역을 지난다. 

서현역의 하루 유동 인구는 14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수치에 모임 멤버 중 한 명이 속한다. 모임 후 기자의 일행은 신분당선을 타고 분당으로 돌아왔는데 서현역으로 가야 하는 지인도 정자역에서 그냥 하차했다. 택시 타고 들어가겠다면서. 하지만 도로에서 택시를 볼 수 없어 결국 가족이 차로 데리러 왔다. 

정자역 주변 버스 정거장의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리는 거였다. 평소라면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이들이 많았을 텐데 모두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는 듯했다. 기자도 마찬가지로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는, 그리고 주변 사람을 유심히 살펴봤다. 버스를 타서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자주 지나다니는 익숙한 곳에 흉기 난동이 벌어진 탓이었을까 사람들에게 불안이 퍼지는 듯했다. 만약 이날 모임을 평소처럼 서현역에서 했더라면 어쩌면 기자가, 어쩌면 지인들이 희생자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뉴스에서나 접했던 묻지마 범죄가 가까이에서, 그것도 너무나 익숙한 장소에서 벌어졌다. 

8월 3일 흉기 난동을 벌이기 전 범인이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현장. 백화점 2층 출입구 앞의 마을버스 정류장이다.  현장은 치워졌고 기자들이 현장 소식을 전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8월 3일 흉기 난동을 벌이기 전 범인이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현장. 백화점 2층 출입구 앞의 마을버스 정류장이다. 현장은 치워졌고 기자들이 현장 소식을 전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흉기 난동 다음 날 아침 서현역은

8월 4일 금요일 아침 8시경 서현역은 평소처럼 사람들로 붐볐다. 서현역의 지하철과 인근 정류장의 버스를 이용해 출근하는 시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범인이 백화점 안에서 칼부림하기 전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곳은 마을버스 기점 바로 앞이다. 백화점 2층에서 시범단지로 연결되는 도로가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평소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곳이기에 각종 상점과 마트, 그리고 노점상들이 들어선 곳이다.

사고 현장의 차량은 치워져 있었다. 대신 그곳엔 여러 방송국의 취재진이 현장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사고 현장 앞, 즉 정류장에서 승객을 기다리던 한 마을버스 기사가 목요일 저녁 풍경을 전해줬다.

“사고 당시 저는 운행 중이었습니다. 기점인 백화점 앞에 도착하니 정류장 옆에 사고 차량이 타이어가 펑크 난 채로 보도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를 목격한 다른 기사에게 들어보니 사고 차량에서 나온 남자가 백화점으로 뛰어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버스에 올라탔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뜁니다.”

마을버스 정류장은 백화점 입구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 중앙의 백화점 입구로 들어서면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이 나온다. 서현역 인근의 주민들은 그 구간을 이용해 지하철역으로 가곤 한다.

범행 다음 날 아침, 백화점 앞은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지난밤 처져 있었던 차단 테이프는 백화점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경찰들이 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8월 3일 흉기 난동이 벌어진 서현역의 백화점 입구.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8월 3일 흉기 난동이 벌어진 서현역의 백화점 입구.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그런데 백화점과 아파트단지를 연결하는 다리의 보도에 차단 테이프가 처져 있었다. 한 경찰에게 뭐냐고 물어보니 “개인적으로 기자와 인터뷰할 수 없으니 간부와 컨택하라”고 대답했다. 행인들과 인근 상인들이 어제저녁 흉기 난동 때 상처를 입은 이들이 쓰러져 있던 장소라고 답해줬다.

범인은 그렇게 백화점과 인근에서 흉기 난동을 부렸다.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니 범행 현장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백화점의 경비 인력과 경찰로 보이는 이들이 1층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하루 전만 하더라도 범행 현장이었던 곳을 지나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화점 직원들은 질문을 하기도 전에 “모른다”며 입을 다물었고, 백화점을 거쳐 지하철로 가는 행인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범행 당시 서현역 일대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하지만 말을 걸려고 다가서는 기자를 행인들은 불안스럽게 쳐다보곤 했다. 얼굴을 모르는 이가 두려워지는 시절이 되고 있는 것일까.

“어젯밤 이 건물의 식당과 주점에 손님들이 많이 없던 건 사실입니다. 목요일인데도 평소보다 적은 분량의 음식쓰레기가 나왔거든요. 어제 근무자에게 들었는데 저녁 무렵 사람들이 비명 지르며 뛰어다니고 난리가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백화점 인근 한 건물의 관리자로부터 범행 당시 분위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른 건물에서도 평소보다 적은 분량의 쓰레기가 나왔다고 했다. 흉기 난동이 벌어진 저녁 서현역 일대는 목요일 밤을 즐기기보다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시민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였다.

서현역 인근의 한 카페에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들은 카페 사장과 목요일 밤의 흉기 난동을 이야기했다. 카페 주인은 “놀란 마음에 저녁 6시 30분경 문을 닫았다”고 했다. 백화점과 마주한 도로변 건물 1층에 자리한 그 카페 앞에서 수많은 경찰차와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다고. 

8월 3일 흉기 난동이 벌어진 서현역의 백화점 1층.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8월 3일 흉기 난동이 벌어진 서현역의 백화점 1층.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불안은 커져만 가는데

서현역 칼부림 소식을 아내에게 처음 들었을 때 2주 전 벌어진 신림동 흉기 난동이 떠올랐다. 그 사고 후 비슷한 범죄를 예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도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서현역 흉기 난동이 벌어진 서현역에서 새로운 범죄를 벌이겠다고 예고하거나 분당의 오리역과 서울의 잠실역 등에서 무자비한 범죄을 벌이겠다고 예고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온다고 한다.  

전염병만 주변으로 옮는 게 아니라 흉기 난동, 혹은 ‘묻지마 테러’를 모방하는 심리도 다른 이에게 옮아가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불안도 감염병처럼 확대되며 주변 사람들에게 옮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뜨거운 더위와 싸우고 있는 이번 여름, 시민들은 주변 사람들을 경계해야 하고 실체 모를 불안과도 싸워야 할 지경에 이른 건 아닐까.

8월 4일 금요일 오전 분당 서현역 주변 모습. 분당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8월 4일 금요일 오전 분당 서현역 주변 모습. 분당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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