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인권

시청각장애인 통계·관련법 여전히 미비 보건복지부 보고서 발간 등 일부 진전

[헬렌켈러를 위해]①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사회, 어디까지 왔나

2023. 11. 14 by 이별님 기자

시청각장애인은 시각과 청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일컫는데, '시청각 중복 장애인'이라고도 말한다. 국내에서는 미국의 사회운동가 헬렌 켈러를 통해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제고됐다. 하지만 두 가지 장애를 가진 시청각장애인은 여전히 교육을 포함한 전 사회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헬렌 켈러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편집자 주-

8살 무렵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선생. (사진=위키백과 갈무리)
8살 무렵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선생. (사진=위키백과 갈무리)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미국의 사회운동가 헬렌 켈러를 설명할 때 앤 설리번 선생의 이야기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생후 19개월부터 시력과 청력을 상실한 헬렌 켈러가 인권 운동에 투신하기까지에는 설리번 선생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다. 헬렌 켈러의 나이 7살 때부터 교육을 시작한 설리번 선생은 사망할 때까지 제자의 곁을 지켰다.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의 이야기가 남긴 교훈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시청각장애인도 적절한 교육과 의지만 있다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해석한다면, 설리번 선생과 같은 헌신과 노력이 없이는 시청각장애인이 사회활동을 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21세기 한국 사회는 국가가 나서서 시청각장애인들의 설리번 선생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20세기 초 미국 사회처럼 시청각장애인 문제를 개인의 헌신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시청각장애인들은 여전히 전 사회 분야에서 소외당할 뿐만 아니라, 존재마저도 지워지는 모양새다.

앞서 <뉴스포스트>는 지난 2019년 10월 시청각장애인 문제에 대해 한 차례 보도한 바 있다. 당시에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명확한 통계도, 법안도 없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역시 전무한 수준이었다. 보도 후 4년 1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국가는 시청각장애인들의 설리번 선생 역할을 맡았을까.

지난 2019년 4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시청각장애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공청회' 등을 안건으로 보건복지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9년 4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시청각장애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공청회' 등을 안건으로 보건복지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시청각장애인 문제, 4년 전과 달라졌나

국내 시청각장애인의 정확한 인구는 4년 전인 2019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5월 말 기준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중복 등록한 장애인 인구는 9198명이다. 해마다 발표되는 등록 장애인 인구 통계는 여전히 시청각장애인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있다. 2023년 현재 국내 시청각장애인 인구는 약 1만 명 규모로 추산된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법조차 제정되지 않고 있다. 이른바 '헬렌켈러법'으로 불리는 시청각장애인 지원법 제정운동이 2019년에 진행됐지만, 제21대 국회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는 2023년 현재에도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지난해 1월 발의된 '시청각장애인 권리보장 및 복지진흥에 관한 법률안'과 '시청각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2년 가까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다만 2019년 12월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법률적 개념이 정의됐다. 장애인복지법은 시청각장애인을 '시각 및 청각 기능이 손상된 장애인'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국가와 지자체가 시청각장애인들의 ▲ 정보 접근 및 의사소통을 기구 개발·보급 ▲ 전문인력 양성·파견 ▲ 직업재활 ▲ 문화·여가 활동 참여 ▲ 보행·이동 훈련 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됐지만,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은 부족한 게 현실이다. 2020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시청각장애인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촉수화 등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방법 교육하고 통역사를 지원하는 전문 기관은 국내에 없다. 보조기구인 점자정보단말기 이용률 은 10%를 넘지 않는다. 기본적인 의사 표현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시청각장애인 인구 역시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행히 민간기관 차원에서는 일부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한 복지단체에서는 시청각장애 아동 가정에 맞춤형 방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 하면, 또 다른 복지관에서는 위생관리 방법이나 정리정돈 등 일상생활에 대한 기본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그 밖에도 시청각장애인 의사소통 수단 교육, 감각발달 지원 사업, 적응 지원 사업 등이 민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정리하자면 4년 전과 비교해 시청각장애인 정책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정확한 통계와 관련법도 없다.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다만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법률 용어가 정의 됐고, 민간 기관 차원에서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2020년 국내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조사 보고서 발간은 눈에 띄는 성과다.

보고서는 "시청각장애인은 장애 정도에 따라 농맹, 농저시력, 맹난청, 저시력 난청으로 분류된다. 장애 발생 시기에 따라서는 선천성 시청각장애인, 농기반 시청각장애인, 맹기반 시청각장애인, 중도 시청각장애인으로 분류된다"며 "시청각장애인 대상 지원방안 마련 시 특성에 기반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청각장애인이 자신에게 맞는 의사소통 방식을 찾고 교육받을 수 있는 시스템, 이동·교통수단 이용, 의료, 교육, 직업재활, 문화·여가 활동에서 적극적인 정보접근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시청각장애인이 자립을 위한 최적의 가능한 발달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및 교육과 훈련 등의 지속성과 통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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