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구

서울시, 돈의문박물관마을 철거해 녹지 공간 조성 계획 박물관마을의 역사·문화 자산 활용 방법 고민해봐야

[도시탐구] 일제강점기에 헐린 돈의문을 복원한다는데

2024. 01. 21 by 강대호 기자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서울시가 돈의문 복원 계획을 밝혔다. 서대문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돈의문은 한양도성의 사대문 중 유일하게 실물을 볼 수 없는 대문이다. 동대문인 ‘흥인지문’, 남대문인 ‘숭례문’, 그리고 북대문인 ‘숙정문’은 복원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양도성의 서쪽 대문인 돈의문은 동쪽 대문인 흥인지문과 대로로 연결되는 한양 도심의 한 축이었다. 돈의문 바깥에는 압록강의 의주까지 이어지는 의주로가 놓여 있어 한양과 서북지방을 연결하는 길목이기도 했다. 그런 돈의문은 일제강점기에 교통망 확장을 위해 헐렸다.

1911년. 돈의문으로 전차가 지나고 있다. (사진=서울역사아카이브)
1911년. 돈의문으로 전차가 지나고 있다. (사진=서울역사아카이브)

교통망과 주택지 건설 때문에 훼철된 한양도성

일제의 식민지 도시가 된 경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옛 건축물이 훼손되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것도 조선의 수도를 보호하던 한양도성과 성문들이 허물리고 왕실 관련 건축물까지 훼손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한양도성이 헐리게 된 최초의 계기는 1907년에 벌어졌다. 당시 일본 황태자의 한성 방문이 결정되었는데 일본식 의전을 그대로 적용하면 황태자 행렬이 숭례문을 지나가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당시 총리대신이었던 이완용이 내각령 1호로 ‘성벽처리위원회’를 만들어 1908년에 숭례문 북쪽 성벽 일부를 철거해버렸다. 

조선총독부는 1910~1920년대 ‘경성시구개수계획’을 통해 경성을 격자형 도시로 만들면서 도로와 교통을 정비했다. 경성에서 도시구조의 변화는 한양도성의 성곽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특히 경성 도심과 외곽을 연결하는 도로망 건설과 전차 노선 부설을 위해 성문과 성곽이 헐린 곳이 많았다. 

그렇게 1914년에 서소문인 소의문이 철거됐고 1915년에는 돈의문이 철거됐다. 1925년에는 동대문인 흥인지문과 남소문인 광희문 사이의 성벽을 허물고는 오늘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자리에 운동장을 만들었다. 1938년에는 동소문인 혜화문을 헐어내고 돈암동으로 연결되는 노면전차 궤도를 놓았다. 

서울 중구 장충동 주택가의 한양도성 성곽 멸실 구간.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울 중구 장충동 주택가의 한양도성 성곽 멸실 구간.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주택지 개발 또한 한양도성 훼철의 주요 요인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지역이 광희문 남측 성곽을 따라 개발된 장충동 일대다. 

한양도성 훼철과 관련해 당시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과거 기사가 있다. 1923년 3월 동아일보에 ‘경성부 도시연구회’에서 경성 개발을 위해 도성을 허물어 주택지나 도로를 만들고, 철거 때 나온 석재들을 그 공사에 자재로 쓰자 제안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도시연구회는 1921년에 설립된 단체로 당시 신문 기사들을 참고하면 건축 규제 완화 등 사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견을 주도했다. 평양 등 다른 도시들에서도 비슷한 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양도성은 “도시 발전에 대한 교통 등 여러 가지 방면에 방해가 되는” 구조물일 뿐이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장충동 일대의 주택 중에는 한양도성 성곽의 돌을 축대나 담장으로 사용한 곳을 꽤 볼 수 있다. 심지어 자유센터와 타워호텔의 축대로 쓰이기도 했다.

한편, 돈의문 일대는 갑오개혁 이후 근대문물이 유입되면서 큰 변화가 있었다. 특히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를 오가는 노면전차 부설은 이 지역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차 종점이 있었던 독립문 부근에 시장이 생겨나고 전차 선로 주변인 의주로에 상가가 들어서면서 상업이 활발한 곳으로 번성했다.

도시 개발 관점이나 도시 발전 관점에서는 한양도성과 돈의문이 그 외곽의 발전을 막고 있는 형국이었을 것이다. 1915년 광화문과 의주로 간 노면전차 복선화를 추진하면서 결국 돈의문은 철거되었다.

정동사거리 일대. 과거 돈의문이 있던 곳이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정동사거리 일대. 과거 돈의문이 있던 곳이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돈의문 복원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돈의문이 어디에 있었을까?’를 물어보면 대개 지하철 서대문역 부근을 꼽는다. 그런데 돈의문은 ‘정동사거리’에 있었다. 

정동사거리는 ‘새문안로’에서 강북삼성병원 방향의 송월길과 덕수궁 방향의 정동길이 만나는 교차로다. 이곳에 돈의문이 있었던 흔적은 사거리의 건널목 앞 표지판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새문안로의 ‘새문’은 돈의문을 일컫는다. 돈의문은 원래 있던 문을 허물고 새로 지은 문이라 새문이라 불렀다. ‘새문안’은 새문 안쪽에 생긴 동네를 뜻했고 지금도 ‘새문안교회’나 ‘신문로(新門路)’ 등 옛 지명이 흔적으로 남아있다. 

돈의문이 있었던 정동사거리 바로 옆에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있다. 돈의문 일대는 뉴타운으로 지정되어 일괄 철거될 예정이었지만 2015년 서울시가 돈의문 인근 마을들의 건물 일부를 보수해 박물관 마을을 조성했다.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로서의 역사적 가치와 근현대 서울의 삶과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돈의문박물관마을. 근현대 건축물들을 보존해 놓았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돈의문박물관마을. 근현대 건축물들을 보존해 놓았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그런데 서울시의 돈의문 복원 계획은 어떤 그림일까? 지난 17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일부 언론이 공개한 돈의문 복원 계획을 확인해 주었다.

서울시는 종로구 정동사거리 일대 새문안로를 지하화하고 그 위에 돈의문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돈의문 복원 사업은 과거 오세훈 시장이 재임했던 2009년에도 추진됐으나 새문안로 한복판인 위치와 예산 문제 등이 지적돼 무산됐었다. 

서울시는 또한 돈의문 복원 계획과 더불어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오세훈 시장은 “돈의문박물관마을을 녹지공간으로 바꾸고 서울역사박물관부터 강북삼성병원까지 그 주변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의 녹지공간을 늘려야 한다고 그 이유를 들었지만, 일각에서는 ‘전임 시장 지우기’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오세훈 시장은 돈의문박물관마을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걸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녹지화 계획에 따라 박물관마을에 남은 역사·문화 자산까지 사라질 것에 대한 대책은 아직 없어 보였다.

사라진 유적을 복원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이에 못지않게 남아있는 근대 문화자산을 보존하고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 또한 소중하다. 그런 점에서 지자체장의 업적으로 기록될 랜드마크 조성을 위해 옛 흔적을 지워버리는  관행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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