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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복지 차원서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필요성 화두 대체 교통 수단 확대와 교통격차 줄이기 해법 동반돼야

'무임승차 폐지'가 쏘아 올린 교통복지의 방향성

2024. 02. 02 by 강대호 기자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무임승차’ 찬반을 두고 세대가 갈라진 듯한 모습이다. 지난 몇 년 이어져 온 논란이지만 지난 18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65세 이상 노인들의 도시철도 무임승차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후부터 각종 공론의 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무임승차가 불공정한 제도라는 취지의 표현을 썼다. 이를 반대하는 측의 공감을 얻었겠지만, 이 제도의 수혜자인 노인 세대에게는 도발적 언사로 받아들여졌다. 

(2024년 1월 24일) 종로3가역에서 한 노인이 지하철 안내도를 보고 있다. 이 노인은 파고다공원 인근 무료 급식소에서 받은 도시락을 지니고 있었는데 성남 모란역의 무료 급식소에 저녁을 해결하러 간다고 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4년 1월 24일) 종로3가역에서 한 노인이 지하철 안내도를 보고 있다. 이 노인은 파고다공원 인근 무료 급식소에서 받은 도시락을 지니고 있었는데 성남 모란역의 무료 급식소에 저녁을 해결하러 간다고 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지난 25일 이대표는 김호일 대한노인회 회장과 토론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4호선 51개 지하철역 중” 무임승차 비율이 가장 높은 역이 “경마장역”이라고 발언했다. 이는 ‘노인들이 무료로 지하철을 이용하며 경마장에 자주 간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무임승차 논란이 불러온 오해

이준석 대표의 ‘경마장역’ 발언은 한편으로는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을 받는 노인들이 경마장에 가서, 즉 교통비로 썼어야 할 돈을 경마에 소진하고 있는 건 아니냐는 프레임을 구축했다. 혹은 마권을 살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노인들까지 무임승차 혜택을 받는 건 아니냐는 프레임도.

이대표의 ‘경마장역’ 발언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역 이름부터 틀렸다. 경마장역이 아니라 ‘경마공원역’이다. 그리고 통계의 이면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서울시 지하철 호선별 역별 유·무임 승하차 인원 정보’에서 지난해 12월 무임승하차 현황을 보면 4호선에서 무임승하차 비율이 가장 높은 역은 ‘경마공원역’이 맞다. 다만 다른 지하철 노선의 무임승하차 비율과 비교하면 18위 정도다.

무임승하차 인원을 비교하면 격차가 더 벌어진다. 경부선의 전철 노선을 제외하고 지하철만 따지면 1호선 종로3가역이 59만7,539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1호선 청량리역(55만1,056명), 1호선 제기동역(52만8,728명), 3호선 연신내역(51만7,114명) 등의 순이다.

무임승하차 인원만 따지면 경마공원역은 18만1,945명으로 124위다.

2023년 12월 기준 서울시 주요 전철역 무임승하차 인원. (그래픽: 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2023년 12월 기준 서울시 주요 전철역 무임승하차 인원. (그래픽: 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그런데 해당 데이터만으로는 무임승차를 이용해 이동한 수치만 알 수 있고 이들이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준석 대표가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려고 통계를 작위적으로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이준석 대표의 통계 해석 오류를 지적거나 다양한 각도에서 통계를 분석한 기사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데이터에서 알 수 있는 건 ‘종로3가역’ 일대처럼 노인을 위한 공간과 서비스가 잘 갖춰진 지역, 혹은 ‘청량리역’과 ‘제기동역’ 일대처럼 전통시장 여러 곳이 있는 지역으로 무임승하차를 이용하는 인원이 많이 이동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무임승차 인원이 많은 상위권 역 일대는 노인 인구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데이터를 근거로, 즉 무임승차 인원과 비율이 높다는 걸 근거로 전철의 만성적자가 심해진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적자의 원인으로 꼽는 전문가들도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2014년에 낸 <교통부문 복지정책 효과분석: 지하철 경로무임승차를 중심으로>에서 지하철 운영의 운송원가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를 요약하면 지하철 적자의 주된 원인은 무임승차라기보다는 초기 시설 투자비에 대한 원리금 상환, 운영 수지상의 만성적인 적자구조에 있었다. 

다른 교통 전문가들은 이런 원인에 더해 지하철 운영사의 경영 비효율을 들기도 한다. 다시 말해, 지하철 운영 재정적자의 근본 원인은 적정한 수송 원가에 비해 낮은 운임 징수 등 구조적 문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지 무임승차제도로 인한 손실이 그 주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시철도 무임승차 정책을 향한 지적

65세 이상 도시철도 무임승차는 전철이 다니는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에 국한된다는 지적이 있다. 그중에서도 역세권 노인들만을 위한 정책으로 작용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반면 버스는 무임승차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니 전철이 닿지 않는 곳에 사는 노인들에게는 불공평할 수도 있는 제도다. 

한편 도시철도가 깔린 대도시와 그 주변 도시는 이들 역세권으로 연결하는 대중교통망이 촘촘한 편이다. 그런 면에서 대중교통 수단이 버스밖에 없는 지역은 대중교통 서비스 측면에서 소외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나마도 버스 노선이 적고 배차 간격이 긴 지역에서는 전철 무임승차라는 화두보다는 대중교통망 확대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2024년 1월 30일) 종로3가역 지하보도.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4년 1월 30일) 종로3가역 지하보도.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렇듯 무임승차 폐지라는 화두는 복지로서 대중교통 관련 정책을 손봐야 한다는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준석 대표의 ‘도발적 발언’은 누구도 건드리기 어려워했던 노인 세대를 위한 교통복지를 개선이 아닌 개혁 차원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사회 일각의 목소리, 혹은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가 무임승차 정책을 손볼 때가 됐다고 동의한다. 다만 방향과 속도를 보는 관점은 신중하다. 무임승차는 유지하되 노인 이동권의 격차 해소를 꾀해야 한다고 보는 것.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노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위 보고서에서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제도를 의미 있는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를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그 가치를 ‘3,361억원(2012년 기준)’으로 추산했다. 이는 지하철 운영사들의 2011년 기준 무임 수송액인 3,688억원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전문가들은 또한 무임승차가 보장해준 이동권은 노인들에게 활발한 사회 활동을 돕는 무형의 효과도 있다고 본다. 자살자 및 우울증 감소, 교통사고 감소, 의료비 절감 등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는 것이다. 

준비와 적응이 필요한 초고령사회

지금 추세라면 2025년에 한국은 노인 인구 비중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현실적 이유에서라도 노인복지를 들여다볼 때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다양한 매체와 경로를 통해 이번 논란에 대한 의견과 방향을 제시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최진석 선임연구원은 <뉴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역할 분담을 강조했다. 그는 “전철 건설 비용을 댄 기재부는 운영 적자까지 감수하기 어렵다는 의견이고, 수도권에서 무임승차가 가장 많은 노선인 일산선, 분당선, 경부선이 지나는 고양시, 성남시, 수원시는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지자체에 속하는데도 손실 부분을 부담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철 무임승차에 대해 최진석 선임연구원은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필요한 부분이고, 다만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명확한 역할 분담을 통해 비용을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한다”며 관련 정책의 방향 전환을 제언했다. 

(2024년 1월 30일) 종로3가역 인근에 모여든 노인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4년 1월 30일) 종로3가역 인근에 모여든 노인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파가 잠시 물러간 1월 말의 어느 오후, 종로3가역 일대는 노인들로 북적였다.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는 한모씨(72세)는 “부천에서 전철 타고 나와 바람도 쐬고 옛 친구도 만나면 우울한 기분이 조금은 가신다”고 말했다. 어쩌면 노인들에게 자유로운 외출은 생활 활력소 이상의 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

수혜 연령 조정 등 다양한 논란이 일겠지만, 노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이동권 보장은 기초적 복지정책으로 있어야 한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나아가 이동권 보장의 형평성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의 확대는 물론 도시와 비도시 사이의 대중교통망 격차 해소 노력도 함께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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