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구

한양도성 낙산 구간과 다산성곽마을

[서울 도심 산책] 성곽길 따라 봄맞이 힐링 어때요?

2024. 03. 08 by 강대호 기자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걷기 좋은 계절이 왔다. 산책로가 잘 조성된 둘레길이나 공원을 찾아도 좋지만, 주변에서 나만의 코스를 정해 걸어봐도 좋을 것이다. 만약 서울 강북 도심에 가기 편하다면 한양도성 성곽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한양도성은 조선시대에 수도의 경계선이며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방벽이었다. 태조 5년인 1396년에 한양의 지형을 이용해 축조했다. 한양을 둘러싼 네 개의 산인 내사산(內四山), 즉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했다. 

한양도성 낙산 구간에서 바라본 동대문 일대.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양도성 낙산 구간에서 바라본 동대문 일대.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흥인지문에서 낙산까지

한양도성 순성길에는 남산이나 인왕산, 혹은 백악산을 지나야 하는 구간들이 있다. 이들 구간은 경사진 산길이라 산책이라기보다는 등산에 가깝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짧고 경사가 평이한 길을 걷고 싶은 이들에게는 낙산 구간과 장충동 인근의 성곽길을 권한다. 

한양도성 낙산 구간은 흥인지문부터 낙산을 지나 혜화문까지를 말한다. 즉 동대문에서 시작해 낙산을 넘어 한성대입구역 근처까지 이어진다. 이 구간을 편도로 걷거나 왕복해도 좋겠지만 일정에 여유가 없다면 낙산까지 갔다가 출발점으로 돌아와도 좋다. 

한양도성 낙산 구간의 성곽길.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양도성 낙산 구간의 성곽길.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 구간을 산책하던 직장인들에게 물어보니 점심시간에 흥인지문에서 낙산 부근까지 걸은 다음에 다시 흥인지문으로 내려온다고 했다. 다만 올라갈 때는 성곽 안쪽 길을, 내려올 때는 바깥쪽 길을 택하는데 그렇게 30분 정도 걷는다고.

흥인지문 공원에서 출발하는 한양도성 낙산 구간의 성곽 안쪽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동대문과 청계천 일대의 모습이 잘 보인다. 산책로는 물론 경관 조명이 설치되어 야경 명소로 소문나기도 했다. 

낙산(駱山)은 산등성이 모습이 낙타의 등 같아서 낙타산(駱駝山)으로 불리기도 했고, 궁궐에 우유를 조달하던 관아인 유우소(乳牛所)가 있어서 타락산(駝酪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발 125m의 낙산은 그리 높지 않고 골짜기도 깊지 않지만, 물이 맑고 상록수가 빽빽해 풍치가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래서 낙산의 계곡을 중심으로 권문세가의 별장이 있었다고.

한양도성 낙산 구간 정상의 공원.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양도성 낙산 구간 정상의 공원.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그런 낙산 일대의 성곽 주변으로 주거지가 생기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부터였다. 이 시기 서울의 고지대 등에 판자촌 등 서민 주거 공간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한양도성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낙산 일대는 저소득 노동자들의 주거지가 빽빽하게 들어서게 되었다. 

항공사진을 보면 그 변화를 잘 알 수 있다. 1947년 항공사진에는 흥인지문과 낙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의 윤곽이 잘 보인다. 주택가는 성곽을 끼고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1972년 항공사진에서는 성곽의 윤곽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아마도 훼손된 성곽을 축대 삼아 집들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성곽 주변의 불량주택을 단계별로 정비했다. 1980년대 항공사진에서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성곽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오늘날의 한양도성 낙산 구간으로 정비되었다. 

한양도성 낙산 구간 정상 부근의 이화동.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양도성 낙산 구간 정상 부근의 이화동.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도성 안쪽 길로 오르다 보면 이화동이 나온다. 이화동은 벽화마을로 유명했었는데 지금은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 그리고 예쁜 상점들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만약 성곽 안쪽 길로 낙산까지 가서 다시 흥인지문으로 내려온다면 성곽 바깥쪽 길로 택하면 좋다. 창신동 언덕 따라 들어선 집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드라마에 나온 다산성곽마을

장충동 신라호텔 뒤편의 한양도성 구간도 걷기 좋다. 원래는 광희문에서 성곽이 이어졌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장충동과 신당동 일대가 주택지로 개발되면서 한양도성이 훼철되었다. 즉 장충동과 신당동 사이에는 한양도성이 담장처럼 놓여 있었고, 오늘날 장충동 주택가와 신당동 주택가의 구획들은 당시의 흔적이기도 하다. 

다산성곽마을에서 바라본 한양도성과 신라호텔.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다산성곽마을에서 바라본 한양도성과 신라호텔.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이 구간의 한양도성은 신라면세점 입구 즈음에서 시작한다. 장충동인 성곽 안쪽으로 순성길이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성곽은 신라호텔을 거쳐 자유총연맹을 지나며 끊긴다. 성곽은 원래 타워호텔, 지금의 반얀트리호텔 자리를 지났다. 헐린 성벽의 돌들은 자유총연맹과 타워호텔을 지을 때 축대로 쓰였다. 즉 이 구간의 한양도성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훼철됐다.

한양도성 안쪽 순성길은 암문 등으로 성곽 바깥쪽과 연결된다. 성곽 바깥은 중구 다산동이다. 성곽 옆으로 산책로와 도로가 함께 있다. 다산동 주택가의 오래된 문패들을 보면 주소가 신당동이라 쓰인 게 많다. 다산동은 2013년까지 신당2동이었고 1970년까지는 충현동이었다.

서대문구에도 충현동이 있는데 충정로와 북아현동에서 한 자씩 이름을 따왔다. 다산동의 과거 이름인 충현동은 장충단고개를 의미하는 지명이었다. 즉 충현(忠峴)은 장충단고개의 약칭이고, 행정적으로 충현동은 1955년에 붙여진 지명이다.

다산성곽마을 전경. 한양도성 안쪽이 장충동으로 신라호텔과 자유총연맹 등이 들어섰고 바깥쪽이 다산동으로 고지대의 경사를 따라 주택가가 들어섰다.
다산성곽마을 전경. 한양도성 안쪽이 장충동으로 신라호텔과 자유총연맹 등이 들어섰고 바깥쪽이 다산동으로 고지대의 경사를 따라 주택가가 들어섰다.

이 구간의 성곽길 바깥쪽에는 ‘다산성곽마을’이 있다. 과거 다산동 일대는 물론 건너편으로 보이는 약수동 일대에는 저소득층의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섰었다. 불량주택들을 정비하며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그래도 아직 과거의 흔적이 남은 집들이 남아 있기도 하다.

또한 이 동네가 과거 충현동이었다는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성곽길 주변에 ‘충현수퍼’와 ‘충현경로당’이 있다. 간판에 ‘성곽길슈퍼’라 쓰인 가게 출입문의 유리창에는 ‘충현식품’이라 쓰여 있다. 

그런데 만약 다산성곽마을과 성곽길이 어디서 본 듯한 분위기라면 아마도 드라마 탓일 지도 모른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닥터 슬럼프’의 배경으로 다산성곽마을이 나오기 때문이다. 극 중 등장인물들이 사는 집은 물론 운영하는 식당이 성곽길 바로 옆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또한 성곽길과 안쪽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 갤러리와 공방 등이 있다. 드라마 덕분이 아니더라도 이곳을 찾는 이들이 꽤 있다고 한다. 

드라마 '닥터 슬럼프'의 배경으로 나온 다산성곽마을.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드라마 '닥터 슬럼프'의 배경으로 나온 다산성곽마을.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런 모습만 보면 다산성곽마을이 사진에 담기 예뻐 보이지만 동네 주민들은 경사진 언덕에 산다는 고충이 많아 보인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신라면세점에서부터 멀리 걸어와야 한다거나 약수동 쪽에서 경사진 골목을 걸어 올라와야 한다.

평일 오후 드라마 촬영지였던 건물 인근과 성곽 주변에 사람들이 꽤 보였다. 그 옆에서 한 주민이 공용 킥보드와 자전거를 옮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타고 와서 집 앞이나 골목 입구에 세우고는 그냥 간다며 불만을 표했다.

그러고 보면 낙산 자락의 이화동 벽화마을도 그렇지만 다산성곽마을은 사람들이 실제 거주하는 동네다. 걷기 좋은 성곽길이 있지만 주민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걸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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