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울은 예로부터 중심지였다. 근대로 접어들면서는 변혁의 중심지였고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다. 이를 역사책에도 기록했지만, 표지석에도 새겨놓았다.
시절에 따라 과거를 기념하는 방법 또한 변해왔다. 1960년대에는 위인들의 동상이나 기념물을 서울의 요지마다 설치했다. 1990년대에는 역사 현장의 의미를 담고자 표지석들을 세워 이를 기념했다. 그래서 서울의 거리를 걷다 보면 표지석이 곳곳에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 표지석의 글귀를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8월은 역사적으로 기억해야 할 날들이 있다. 15일은 광복절이고 29일은 국치일이다. 서울의 표지석들은 항일운동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던 서울
서울 종로구에는 표지석이 많다. 종로 일대는 조선시대 행정의 중심지여서 옛 관청 터를 기념하는 표석을 많이 볼 수 있는데 항일운동을 기념하는 표석 또한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삼일운동 관련 인물과 이들의 활동, 그리고 삼일운동 관련한 시설에 관한 표석들이 많다. 탑골공원이나 보신각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물론 승동교회나 천도교 중앙대교당처럼 종교 시설에도 삼일운동을 기념하는 표석이 서 있다.
이들 표지석을 살펴보면 언제 어느 기관이 표석을 설치했는지 알 수 있는데 그 시기별로 표석의 내용과 성격에 차이가 있다. 1990년대 초에는 주로 삼일운동과 임시정부 관련 표석을 설치했고 90년대 후반에는 대한제국기 계몽운동, 군대해산과 의병 전투에 관한 표석을 설치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는 민족운동과 사회운동 관련 표석이 들어섰다. 그중 하나가 종로구 경운동의 '조선 건국동맹 터' 표지석이다. 운현궁 건너편 서울노인복지센터 앞 보도에 있다.
조선건국동맹은 1944년 8월 10일 조국 광복을 위한 항일운동을 위해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이다. 중심인물은 여운형, 조동호, 현우현, 황운, 이석구, 김진우 등이었다.
이 표지석 앞의 도로 이름은 '삼일대로'인데 삼일운동에서 이름을 땄다. 도로 자체가 항일운동 기념물이나 다름없다.
현재 서울시 관내의 항일운동 관련 표석은 대개 서울시에서 설치했다. 물론 자치구나 보훈부에서 설치한 표석이나 안내판도 있다. 서울시에서 2021년에 이 현황을 파악했는데 이때 기준으로 총 92개의 표석이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위치 정보가 혼동을 주는 표석이 있거나 현재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표석도 있었다. 체계적 관리와 홍보가 필요한 지점이다.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 서울 연통부' 표지석은 공사 현장이라 현재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중구 순화동 5번지에 있었는데 현재 동화약품 신축 공사 현장이다.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던 서울 연통부의 거점이었다. 서울 시민 등 조선인들에게 중국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활동하고 있음을 알리고 나라 안의 각종 정보와 군자금을 임정에 보고,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서울 연통부'가 이곳에 있었던 이유는 동화약방 주인 민강이 그의 집을 연락거점으로 내어주어서였다. 동화제약 역사와도 관련 깊으니 새 사옥 준공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 서울 연통부' 표지석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이제라도 알려야 할 항일운동의 현장
지난 2021년 서울시에서 '서울 항일독립운동 표석 현황 및 신규 표석 사료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서울시의 항일운동 관련 표석 현황을 파악하기도 했지만, 신규로 설치해야 할 곳들을 제안하기도 했다. 주로 항일운동 사실이 파악된 곳이지만 아직 표석이나 기념물이 설치되지 않은 곳들이었다.
그중에는 아픈 과거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담은 곳이라 특히 인상적인 곳이 있었다. 용산 일본군 위수감옥이 그곳인데 '항일 의병 순국지'였다.
용산 일본군 위수감옥은 1909년 용산 주둔 일본군의 병영 내 설치된 군사 감옥이었다. 1909년부터 1913년 사이 의병들이 이곳에 구금되고 처형되었다.
특히,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펼쳤던 강기동 등이 이곳에 수감되었다가 총살형으로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용산 일본군 위수감옥은 일제의 탄압과 독립운동가의 수난을 동시에 보여주는 역사 유산으로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본 군사감옥이다.
광복 후 이 감옥은 미군 구금소로 이용되다가 주한미군형무소 육군형무소 등으로도 쓰였다.
이곳을 거쳐간 인물 중에 백범 암살범 안두희, 김두한, 시인 김수영 등의 이름이 눈에 띈다. 군 시설이었지만 다양한 역사적·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민간인들도 다수 수감됐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건물은 용산 미군 기지에 남아 있는데 부분 개방된 구역에 속한다. 1909년에 지은 건물이니 115년 정도 된 건물이다. 감옥을 둘러싼 벽돌 담장을 비롯해 행정시설, 샤워실, 화장실로 사용됐던 건물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중요한 역사적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이 건물은 역사적 가치가 고려돼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공원 시설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책에 짧게 기록된 일제강점기 초기 의병 활동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지점이다.
표지석에는 그곳의 과거가 새겨져 있다. 도로와 보도 사이, 혹은 건물 구석에 있는 데다 크기까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도 그곳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흔적이 담겨 있다.
광복절과 국치일이 있는 8월만큼은 길을 걷다 표지석이 보이면 잠시 걸음을 멈춰 보자. 그래서 그곳이 어떤 현장이었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