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기후위기는 교과서나 과학 도서에만 기술된 게 아니라 2024년 대한민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여름에는 전국 곳곳에서 열대야 일수 신기록을 갈아치웠고, 추석 명절까지 이례적인 폭염이 이어졌다. 9월 폭염은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면서 겨우 가라앉았다. 기록적인 9월 폭우는 무더위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터전까지 무너트렸다.
미래 세대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보다 기후위기에 훨씬 민첩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청소년들에게 환경보전은 교양 과목이 아닌 생존을 위한 투쟁이 됐다. 환경에 무심한 어른들을 대신해 학교 밖을 나온 청소년들은 이른바 '기후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지난 2018년 기후위기를 인식한 청소년들의 작은 모임에서 시작했고, 2019년 3월부터 전 세계 청소년들과 연대해 결석 시위를 주도해 왔다. 2020년 3월에는 환경단체와 어린이들* 등과 함께 정부의 불충분한 기후대응이 청소년들의 생존권과 환경권, 인간답게 살 권리, 평등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에 기후소송을 제기한 소송단에는 '아기기후소송단'이라는 이름으로 태아부터 어린이들도 포함됐다.
헌법소원은 4년이 훌쩍 지난 2024년 8월 28일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지면서 마무리됐다.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에서 어린 청소년들이 정부를 상대로 역사적인 승리를 이룩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기후소송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뉴스포스트>는 기후소송과 청소년들의 입장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헌법소원의 원고로 나섰던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와의 인터뷰를 이달 20일 진행했다.
역사적 결정이 된 청소년기후소송
윤 활동가는 "2018년부터 청소년기후행동에서 활동하면서 깨달았던 게 많다. 정책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 의사결정권자들의 자발적인 의지만으로는 절대로 기후위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라며 "그들에게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촉구하는 것을 넘어서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법이 있을지 찾아보다가 '기후소송'이라는 것을 알게됐다"고 말했다.
윤 활동가에 따르면 기후소송은 네덜란드와 독일, 미국 몬테나주, 스위스 등 전 세계 주요 선진국에서 진행돼 왔다. 환경운동가들은 어려운 싸움 끝에 정부를 상대로 승소했다. 해외의 승소 사례는 우리나라 헌법소원 재판에도 영향을 줬다. 아시아권에서는 한국 최초로 기후소송을 진행해 승리했고, 현재는 일본과 대만 등이 자국에서 기후소송을 진행 중이다.
헌재는 지난달 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법')' 8조 1항에 대해 2026년 2월 말까지 개정하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8조 1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의 35% 이상 감축한다는 내용인데, 2030년 이후의 계획은 나와 있지 않다. 헌재는 현행 탄소중립법의 미비한 내용이 파리협정**의 목표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2015년 UN 기후변화회의에서 채택된 파리협정은 2050년까지 탄소순배출량 0을 목표로 한다.
청소년들에게 기후소송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윤 활동가는 "모든 캠페인들이 다 어려웠지만, 헌법소원은 우리가 쉽게 알지 못하는 법률용어도 많았다"며 "헌법소원 자체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거나, 다가가기 어려운 주제라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헌법소원이 무엇인지, 탄소중립법과 해당 법에 어떤 게 문제인지, 왜 위헌인지 설명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어려운 싸움에서 이겼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헌재는 기후소송단이 위헌이라며 제기한 탄소중립법 시행령에 대해서는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시행령에 제시된 2030년까지 정부의 탄소배출 감축목표나 부문별·연도별 감축 계획에 대해서는 충분하지 않더라도 위헌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헌재 결정 직후 청소년기후행동은 헌재의 일부 기각 결정에 대해 아쉽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윤 활동가는 "사실 헌재 결정 후 일주일 동안 침울했다. 일부 승소는 일부 패소이기도 하다. 기각된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결정문을 다시 읽어보고, 여러 견해를 접하면서 마음 편히 기뻐할 수 있게 됐다"면서 "위헌이 아니라고 해서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위헌 결정'은 '안 된다', '불가능하다'의 의미다. 최소한도 못한다는 지적이다. 헌재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최선의 기후대응을 제시한 게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을 결정한 것"이라며 "적어도 기후대응이 '지금과 같으면 안 된다', '지금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선을 정해준 것이다. 헌재가 최소한의 선을 그어줬으니, 우리는 선을 밀고 나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풀어갈 생각이다"라고 덧붙였다.
평범한 '우리'가 만든 역사적 결정
청소년기후행동은 헌법소원 과정에서 국민참여의견서를 제출했다. 기후위기에 공감하는 다양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모으는 작업이었다. 윤 활동가는 "헌법 재판에서는 제3자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는데, 우리는 국민참여의견서를 제출했다"며 "제3자 의견서는 보통 각계 전문가 등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이 담긴다. 하지만 우리는 기후위기를 마주하는 평범한 사람들 5289명의 이야기를 모아서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윤 활동가에 따르면 국민참여의견서에는 총 5289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한두 문장으로 짧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A4용지 1~2페이지 분량으로 긴 글을 작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용도 다양했다. 출근길에 무릎까지 빗물이 차올라서 무서웠다는 경험담, 비가 많이 와 집에 물난리가 난 사례, 자연재해로 이웃이 다쳤다는 이야기, 한 해 농사를 망쳤다는 농민의 하소연 등 기후위기를 마주한 다양한 사람들의 말이 담겼다.
윤 활동가는 "국민참여의견서가 제출될 때 저는 큰 가능성을 봤다. 사소하면서도 평범한 5289명의 이야기들이 실제로 헌법소원 결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라며 "저는 이번 헌재 결정이 250여 명의 청구인들 만이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함께 얻어낸 결과이자, 우리 모두의 승리"라고 울컥했다.
이어 "국가가 기후위기 대응을 강화하면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의 삶이 안전해진다는 가능성이 열린다"며 "한 문장 혹은 한두 페이지 글들이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격하고 나니, 평범한 우리들이 변화를 만드는 게 가능하구나 싶었다. 아직은 관성적으로 흐르고 견고해 보이는 사회이기도 하지만, 돌파구가 남아 있구나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역사적 승리 후 남은 과제는?
갓 성인이 됐다는 윤 활동가는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기후위기를 배운 세대다. 청소년 때 기후위기 문제에 투신한 그가 보기에 사회는 견고했다. 하지만 기후소송을 통해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힘을 체감했고, 이제는 기성세대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고 말한다. 그는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은 소수지만, 소수는 다수가 변화시킬 수 있다. 다수인 평범한 우리가 행동해야 소수 권력자들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윤 활동가는 "헌재 결정 후 친구들이 갑자기 다 연락을 했다. 뉴스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며 축하한다는 연락도 받았다. 평소 기후위기에 관심 없던 친구들도 이번 헌재 결정을 다 알더라"라며 "저희 또래는 아무리 환경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도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데에 공감한다. 우리에게 기후위기는 '선택적 이슈'가 아니다. 관심을 둬도 되고, 안 둬도 되는 게 아니라 기본으로 인지하는 이슈나 눈여겨봐야 하는 이슈로 취급된다"고 전했다.
헌재의 결정 후 공은 정부와 국회로 갔다. 당장 국회는 1년 6개월 안에 2030년 이후의 기후위기 대응이 담긴 탄소중립법을 개정해야 한다. 대응 기준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이 돼야 한다. 여야는 산적한 현안을 이유로 기후위기 대응 법안 개정을 미뤄서는 안 된다. 청소년기후행동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지켜야 할 원칙과 최소한의 기준들을 정리해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윤 활동가는 "현행 탄소중립기본법 등 기존 법안들의 우리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의 법안이라고 볼 수 없다. 국회가 수준에 부합하는 법안을 1년 6개월이라는 기한에 맞춰 당장 개정했으면 바란다"며 "법안이 개정되면 정부가 더욱 강화된 하위 행정 계획을 짰으면 좋겠다. 지금은 처벌이나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데, 탄소중립을 이행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