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서울을 지나는 도시철도 노선 중 무임승차 인원이 가장 많은 역은 어디일까? 경부선 영등포역이다. 1호선 종로3가역이 2위 1호선 청량리역이 3위이다. 노인 문제를 다루는 언론 매체들이 많이 찾는 장소가 종로3가 일대이지만 데이터는 영등포역 일대에도 노인이 많다고 가리킨다.
영등포역 주변에는 전통시장과 콜라텍 등 노인들이 즐겨 찾는다고 알려진 공간이 많다. 이들 공간이 노인을 끌어들이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겠지만 영등포 일대가 역사 오랜 주거 지역이라 자연스럽게 노인 인구가 많아진 영향도 큰 것으로 보인다. 영등포역과 그 일대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본다.
영등포의 발전을 견인한 철도와 기차역
철도 부설은 개항과 함께 우리나라를 근대로 이끈 시작점이다. 새로운 교통수단은 근대도시 형성의 기반이 되었는데 특히 철도가 지나며 역이 들어선 지역이 그렇다. 이들 지역에 철도역이 들어서자 역 주변으로 새로 시가지가 형성되는 등 지역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철도 노선에서 제외된 지역은 쇠락의 길을 걷기도 했다.
철도가 지나며 신흥도시로 발전한 지역으로 대전과 대구가 대표적이고, 철도 노선에서 벗어나 쇠락한 도시로는 상주와 나주가 대표적이다. 특히 철도의 종착역이나 분기점으로 선정된 지역은 철도 공사를 위한 시설이 들어서고 인력이 몰려들며 시가지화가 촉진되는 경향이 있었다. 경인선과 경부선의 분기점인 영등포와 경부선과 호남선의 분기점인 대전이 그렇다.
특히 한국 최초로 철도 배후 지역이 된 영등포는 철도 배후 지역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영등포는 근대 이전만 하더라도 경기도 시흥군의 한강 변에 있는 한적한 포구 마을에 불과했다. 그런데 1899년 경인 철도가 부설되고 역사가 설치되면서 영등포 일대는 시가지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경인선 개통 2년 후인 1901년 영등포 일대에서 경부선 철도 부설 공사가 시작되었다. 경부선은 경인선과 철로를 공유하다가 영등포역에서 분기했고, 경부선 철도 부설의 북부 거점이 된 영등포 일대에 공사를 전담하는 사무소가 설치되었다.
일본에서 많은 기술자와 사무원, 그리고 감독과 인부가 영등포에 들어와 일본인 주거지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들을 상대하는 다양한 상인 계층, 즉 여관업, 요식업, 유흥업 등을 하는 이들도 영등포역 북쪽 일대에 자리 잡게 되었다.
신시가지가 되어 가는 영등포 일대에는 철도 관련 시설이 아닌 다른 시설들도 속속 들어섰다. 철도 교통은 통신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해서 영등포 일원에 우체국, 전화, 전보 시설이 설치되었다. 그 시기가 1903년경이었는데 당시 이러한 통신 시설이 들어선 지역은 서울, 부산, 인천, 개성 등 대도시 정도였다.
담당 일본영사관의 변경도 영등포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 정부는 1904년 5월 영등포가 소재한 시흥군을 인천 영사관 관할에서 경성 영사관 관할로 옮겼다. 일본인 인구가 증가하는 한편 영등포의 중요성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한국 철도 시발점과 철도 인입선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시발역은 어디일까? 노량진역이다. 그런데 1899년, 즉 최초에 개통된 노량진역의 위치는 지금의 영등포역 자리였다. 관련 문헌을 종합하면, 노량진 부근의 홍수로 영등포에 임시로 역을 설치한 거였다.
1900년 한강 철교가 개통된 후 노량진역은 지금의 위치로 옮겨갔고 그 후에 설치한 역이 영등포역이다. 1936년 영등포가 서울로 편입된 후 노량진은 경성부 영등포 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노량진역에 가면 철도 역사와 관련된 전시물을 볼 수 있다. 역사 안에 다양한 사진이 걸려 있고 역 입구에는 예전에 쓰던 시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용산 방향 철로 주변에 '철도 시발지'라는 표지석이 놓여 있다. 가까이 갈 수 없어 멀리서 촬영해야 했다.
한편, 영등포역 앞의 경인로 위로는 고가차도가 지난다. 영등포역을 지나는 철로의 남쪽 지역과 북쪽 지역을 연결하는 영등포역 고가차도는 과거에 영등포역에서 분기한 인입선 철도가 지나는 경로와 비슷하다. 영등포 일대 공장들과 연결된 인입선은 영등포역에서 북쪽으로 빠져나와 당산동 방향으로 연결되었다.
영등포 인입선이 최초로 연결된 공장은 1911년 당산동에 설립된 '조선피혁주식회사'였다. 황소 가죽으로 군수용 피혁제품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원활한 원자재 공급과 완성품 수송을 위해 철도가 연결되었다.
영등포 인입선은 영등포 일대에 큰 공장들이 들어서는 발판이 되었다. 특히 1919년에는 용산 철도공장의 분소 격인 용산 공작소 영등포공장이 들어섰다. 철도 차량을 제작하거나 수리하는 공장이었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 <철도원 삼대>에 이 공장 출신 등장인물이 여럿 등장하는데 일제강점기 노동운동과 연계된 독립운동의 모습을 보여준다.
1923년에는 영등포 인입선 동쪽에 경성방직 공장이 들어섰다. 당시 사무동으로 쓰인 건물 하나가 보존되어 있다. <철도원 삼대>에도 방직공장 출신 노동운동가가 여럿 등장한다. 영등포의 공업지대는 우리나라 노동운동 역사에 기록된 활동을 많이 했다.
인입선을 운행하는 화물철도 노선이 없어진 후에도 철로 흔적이 오래도록 도로 위에 남아 있었다. 오늘날에는 확인할 수 없지만 영등포역 고가차도의 경로가 옛 흔적을 가늠하게 한다.
그런데, 앞으로 영등포역을 이용하는 노인 숫자가 줄어들지 모른다. 초고령사회로 달려가는데 무슨 말이냐고 하겠지만, 세상은 노인 숫자를 줄이려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 노인을 대표하는 대한노인회 회장이 지난 21일 '노인 연령'을 단계적으로 상향하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노인의 기준을 다시 정의하자는 것.
이에 답하기라도 하듯 국무총리는 다음날인 22일 '노인 연령 상향'을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인 연령 기준이 올라가면 무임승차 인원이 줄어들 테지만 그렇다고 영등포역을 이용하는 고령 세대가 줄어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고령 세대가 많이 살고 이들을 위한 시설이 많은 영등포는 크게 변하지 않을 거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