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구

[도시탐구] 영등포 일대 발전 이끈 한강의 다리들

2024. 11. 08 by 강대호 기자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영등포는 서울이 된 지 88년 되었다.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 시절인 1936년에 경성부에 편입되며 영등포출장소가 개설되었다. 그전에는 영등포리와 영등포면인 시절도 있었는데 철도가 지나고 철도역이 생기면서 근대도시로 발전했다.

600년 넘은 수도 서울의 역사를 돌아보면 영등포는 서울에서 새내기에 속하는 동네다. 1963년에 서울로 편입된 강남보다는 역사가 오래지만. 그런 영등포는 서울로 편입되었을 때 강남으로 불렸다. 그래서 영등포는 '최초의 강남'이라거나 '원조 강남'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강대교. 1917년에 '인도교'가 놓였고 1925년의 홍수로 무너진 후 1937년에 보수하며 넓어졌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폭파되었다가 1958년에 복구되었다. 1982년에는 한강대교 바로 옆에 새로운 다리가 개통돼 쌍둥이 다리가 되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강대교. 1917년에 '인도교'가 놓였고 1925년의 홍수로 무너진 후 1937년에 보수하며 넓어졌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폭파되었다가 1958년에 복구되었다. 1982년에는 한강대교 바로 옆에 새로운 다리가 개통돼 쌍둥이 다리가 되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영등포의 압력단체 '강남발전회'

1392년 개국한 조선은 1394년에 한양을 수도로 정했다. 그 후로 오래도록 서울의 영역은 한강을 건너가지 않았다. 그 세월 영등포 일대는 한강 남쪽의 한적한 농촌이었는데 1899년에 철도가 뚫리고 일제강점기에 공업 지대로 변화하며 자본이 모이는 지역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영등포 일대가 발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모임이 결성되었다. '강남발전회'.

1926년 9월 동아일보에 실린 '대경성 계획과 노량진 발전책' 기사에서 '강남발전준비회'의 활동 소식을 소개했다. 기사 내용을 종합하면, 강남발전준비회는 노량진 등 영등포 일대 유지들이 강남 지역 발전을 위해 결성했다. 회원은 친일파인 '조병상'를 제외하면 시흥군수 등 일본인이었는데 일종의 압력단체로 보인다. 

이 단체 명칭에 들어간 '강남'은 영등포 일대를 의미했다. 그 범위에는 노량진과 신길동, 대방동과 흑석동, 그리고 상도동이 포함된다. 단어 그대로 한강의 남쪽을 의미했다.

위 기사가 나간 후에 이 단체의 이름은 '강남발전회'로 바뀌었다. 준비회를 떼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1926년부터 1930년대까지 강남발전회 활동 소식을 전하는 신문 기사들이 꽤 검색에 걸린다.

이들은 모임 이름처럼 강남의 발전, 즉 영등포 일대의 발전을 꾀했다. 사례를 보면, 조선총독부나 경성부에 노량진 영등포 간 도로 개축이나 노량진에 상수도 급수 시행 등 지역 기반 시설 확장을 건의했다. 그리고 한강 인도교 확장 보수와 전차 노선 확대를 주장하기도 했다. 

한강대교 앞 노들나루공원의 노량진 정수장 터. 이곳부터 인천까지 상수도관을 설치해 물을 공급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강대교 앞 노들나루공원의 노량진 정수장 터. 이곳부터 인천까지 상수도관을 설치해 물을 공급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1917년에 준공된 한강 인도교는 처음에는 사람과 수레 정도만 오갈 수 있는 넓이의 다리였다. 그나마도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일부가 무너져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1937년에 다리 폭을 넓혀 보수한 후 개통했다. 이때부터 한강 인도교는 전차와 버스가 건너다닐 수 있는 다리가 되었다. 

당시 자료들을 종합하면, 노량진과 영등포 일대에 도로가 정비되고 노량진과 인천 사이에 상수도관이 설치되며 급수도 시행되었다. 그리고 한강 인도교도 넓어졌다. 물론 이 같은 변화가 강남발전회의 활동 때문인지 조선총독부나 경성부가 원래 세웠던 도시계획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영등포 일대가 중요한 지역으로 발전해 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영등포 일대 발전의 시작은 한강 철교와 인도교 부설로 비롯된 영향이 크다.

강북과 강남을 이어준 한강 철교와 인도교

1899년에 개통된 최초의 경인선 구간은 인천과 노량진 사이였다. 초기에는 용산에서 배를 타고 노량진으로 건너가서 열차를 타야 했다. 철교가 놓이는 1900년까지는.

한강에 최초로 놓인 교량인 한강 철교는 1897년에 착공해 1900년에 준공했다. 경인선이 서대문역까지 연장되었다. 1912년에 첫 철교의 상류 쪽에 두 번째 철교가 놓이며 복선화되었고, 1944년에는 하류 쪽에 세 번째 철교를 부설했다. 

경인선과 한강 철교가 없던 시절 서울에서 인천으로 가려면 육로로 10시간, 배편으로는 8시간 정도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철도가 개통되면서 2시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서울과 인천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하지만 철교는 열차만 건널 수 있는 교량이었다. 사람들은 인도교가 생기기 전에는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야 했다. 1917년에야 한강에 인도교가 놓였다. 

하지만 1925년의 을축년대홍수 때 인도교 일부가 무너져 1929년 복구할 때까지 사용하지 못했다. 1937년에야 보수공사를 하며 인도교의 다리 폭이 넓어졌다. 이때부터 버스와 전차가 한강 인도교를 함께 이용하게 되었다. 결국 노량진 일대는 교통의 요지로 발전했다. 반면 나루터는 점차 기능을 잃어 갔다.

한강대교. 1917년에 '인도교'가 놓였고 1925년의 홍수로 무너진 후 1937년에 보수하며 넓어졌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폭파되었다가 1958년에 복구되었다. 1982년에는 한강대교 바로 옆에 새로운 다리가 개통돼 쌍둥이 다리가 되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강대교. 1917년에 '인도교'가 놓였고 1925년의 홍수로 무너진 후 1937년에 보수하며 넓어졌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폭파되었다가 1958년에 복구되었다. 1982년에는 한강대교 바로 옆에 새로운 다리가 개통돼 쌍둥이 다리가 되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강 인도교는 한국전쟁 때 폭파되었다. 정전 후에도 복구하지 않고 임시로 부교 등을 이용하게 하다가 1957년부터 복구하기 시작해 1958년에 완료했다. 

하지만 복구할 동안 서울 강북의 시내버스는 용산까지만 운행하고 한강을 건너지 못하게 했다. 반대로 한강 남쪽의 버스는 노량진까지만 운행했다. 발이 묶인 시민들은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다닐 수밖에 없었다. 인도교 부설 후 외면당하던 나룻배가 반짝인기를 끌게 되었다. 

게다가 서울의 한강 전역에서 나룻배들이 몰려 들었다. 당시 신문 기사를 참고하면, 오십여 척의 나룻배가 용산과 노량진 사이를 운행했다고 한다. 평소보다 비싼 바가지요금을 받았다는 지적의 기사가 여럿이다. 

인도교가 폭파된 1950년 6월 28일 국군은 한강철교도 함께 폭파하려 했다. 하지만 일부만 파괴되었다. 철교는 병력과 군수품을 나르는 보급의 중요한 길목이라 복구를 서둘렀다. 

제1철교는 1951년 6월에 임시로 복구되었고, 제2철교는 1952년 7월에 임시로 복구되었다. 제3철교는 1952년부터 복구하기 시작해 1957년 7월 복구를 완료했고, 이후 제3철교로만 열차를 다니게 했다. 

임시 복구 후 이용하지 않던 두 철교는 대일청구권자금으로 제대로 복구하게 되는데 1969년 6월 28일에 완공되었다. 한국전쟁 때 철교를 폭파한 바로 그 날짜였다.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에 걸쳐 놓인 세 개의 철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1994년에는 복선 철교가 추가로 놓였다. 인도교, 지금의 한강대교는 쌍둥이 다리다. 1982년에 새로운 다리가 개통돼 두 교량을 합쳐 왕복 8차선의 다리가 되었다.

20세기 초 노량진과 영등포의 발전을 이끌었던 한강 인도교와 철교는 오늘날에도 강으로 나뉜 서울의 남과 북을 이어준다. 

이들 교량뿐 아니라 현재 서울 권역의 한강에는 31개의 교량이 있다. 서울시 안에 22개가 놓였고, 경기도에 있거나 서울과 경기도를 연결하는 위치에 9개의 다리가 놓였다. 한강의 교량은 서울의 확장과 발전을 이끈 동맥이다.

한강철교. 국가등록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되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강철교. 국가등록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되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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