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구

한강의 물길 따라 전해진 부군당 신앙 신길동 '방학곳지 부군당'과 당산동 부군당

[도시탐구] 영등포 일대, 부군당의 흔적을 찾아서

2024. 11. 26 by 강대호 기자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혹시 '부군당'을 안다면 서울 지역 역사에 관심이 많거나 눈썰미가 좋은 사람일 것이다. 서울 여러 군데에 부군당이 있지만 외진 곳에 있는 데다 널리 알려진 장소가 아니라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그나마 이태원 부군당은 용산 일대를 조망하기 좋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주민과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부군당은 도시 문헌학자 김시덕 박사의 '한국 도시 아카이브' 시리즈에서 의미 깊은 지역 민속 건축물로 등장한다. 특히, 두 번째 책인 <갈등도시>에서 김시덕은 민속학자 김태우 등의 연구를 인용해 부군당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태원 부군당. 용산 일대가 내려다 보이는 조망 좋은 곳에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태원 부군당. 용산 일대가 내려다 보이는 조망 좋은 곳에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부군당은 조선 초기에 관청에서 아전, 하인, 노비 등이 모시던 신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관청 밖으로 퍼지면서 신흥 자본가 계급의 신앙 대상으로 모셔지게 되었는데 특히 한강 인근 상업이 활발한 곳에서 부군당 신앙을 볼 수 있다고.

'한국 도시 아카이브'의 네 번째 시리즈인 <한국 문명의 최전선>에서도 부군당에 관해 설명한다. 고려 시대에 개성에서 물길을 따라 부군당 신앙이 서울까지 전파되었다고. 지난 '도시탐구' 연재에서 다룬 '창전동 부군당'과 '이태원 부군당' 또한 한강과 가까운 지역에 있다. 그리고, 영등포의 한강과 가까운 동네에도 부군당이 있다.

신길동 '방학곳지 부군당'

영등포 일대의 과거 지명 중 상방아곶과 하방아곶이 있다. 상방아곶은 지금의 영등포시장 일대이고, 하방아곶은 신길역 인근이다. 

상방아곶과 하방아곶 이름의 유래가 된 방아곶의 의미는 두 가지가 전해진다. 방아곶, 혹은 방앗고지는 성안으로 실어 가는 곡식을 빻는 방앗간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 방아곶을 한문으로 옮긴 방학동은 신길동과 여의도 사이를 흐르는 샛강의 경치가 빼어나 학이 노는 호수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 말 이름이든 한문 이름이든 샛강 일대 신길동의 지리적 환경에 맞춰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과거 신길동의 샛강 변에는 마포나루와 연결되는 '방학호진', 혹은 '방아곶 나루'가 있었다. 그리고 '방학곳지 부군당'도 있다.

신길동 방학곳지 부군당 입구. 담장에 약도가 그려져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신길동 방학곳지 부군당 입구. 담장에 약도가 그려져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신길역이 있는 대로변에서 부군당을 찾아가려면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지나야 한다. 지도에서 이 동네의 필지 모양을 보면 전통 마을의 전형적 구획 모양인 걸 알 수 있다. 아마도 하방아곶 마을의 흔적이 아닐까.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앞에 가면 '방학곳지 부군당'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있다. 안내를 따라 가면 구획이 복잡해 보이는 골목이 나오는데 갈림길 담장에 부군당으로 향하는 약도가 그려져 있다.

방학곳지 부군당은 주택가 사이 작은 필지에 자리하고 있다. 가로 세로가 약 7m와 5m 정도의 공간에 전통 양식의 작은 집이 한 채 들어서 있다. 

신길동 방학곳지 부군당. 인근 주택의 담장에는 부군당 관련 전설을 그린 벽화가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신길동 방학곳지 부군당. 인근 주택의 담장에는 부군당 관련 전설을 그린 벽화가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안내판에는 방아곶 지명 설명과 함께 부군당의 유래가 설명되어 있다. 옛날 윤정승이 물난리로 물에 빠져 정신을 잃었을 때 잉어가 나타나 등에 태워 방앗고지 기슭의 모래밭에 내려 주어 살아나 윤정승이 당을 지어 제를 지냈다고 한다. 

부군당 앞 주택의 담장에는 이런 전설을 묘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안내판 문구에 따르면 매년 음력 10월 1일 제사를 지낸다고. 

당산동 부군당

당산동에도 부군당이 있다. 사실 당산동이란 지명도 전통 신앙이 관련 있다. 마을 언덕에 당(堂)이 있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고. 

또한 마을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산이 있어 단산(單山)이라 했는데, 이곳에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어 이를 보호하기 위한 제당을 지어 당산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도 전해진다. 어쨌든 마을 이름이 당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산동 부군당은 당산중학교를 기점으로 하면 찾아가기 쉽다. 당산중학교 후문 입구 쪽에 작은 공원이 있고 그 앞길을 따라가다 보면 삼성래미안아파트와 주택가 사이에 당산동 부군당이 있다.

당산동 부군당.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당산동 부군당.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지도에서 삼성래미안아파트와 양평로 사이의 주택가 모양을 보면 필지가 똑바르지 않다. 과거 이 지역에 전통 마을이 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당산동 부군당 앞에는 안내판과 함께 비석이 하나 놓여 있다. 거기에는 1450년에 당이 설치됐고 1974년에 비를 세웠다고 나와 있다. 비석에는 관리자의 이름들과 유공자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안내판에는 당산동 부군당의 유래가 담겨 있다. 과거 부군당이 없었던 시절에는 30m 인근의 큰 은행나무에서 당제를 지냈었는데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많은 주민이 이 은행나무로 피해 무사했다고 전해진다. 

당산동 부군당은 그 덕을 기리기 위한 당집이었다. 당 안에는 아홉 신의 그림이 있다고 하는데 출입문이 잠겨 있어 내부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현재 건물은 1950년 4월에 지었고 매년 음력 7월 1일과 10월 1일에 당제를 지낸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안내판에서 언급한 큰 은행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부군당 바로 옆 빌라에 은행나무라고 쓰여있다. 그러고 보면 건물 색깔이 은행나무잎 색 같기도 하다.

당산동 부군당과 은행나무 빌라.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당산동 부군당과 은행나무 빌라.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두 부군당의 유래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두 곳 모두 물의 위험에서 사람을 구한 걸 기리고 있다. 그래서 한강 물길과 강변 마을의 평안을 비는 영험 있는 공간으로 주민들이 신봉해 온 게 아닐까. 

신길동과 당산동에 자리한 부군당 안내판을 보면 매년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2023년 말 영등포구 차원에서 '부군당제'가 진행되었다. 다만 당산동 부군당과 양평동의 당제 터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신길동의 제사를 언급한 최근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신길동의 방학곳지 부군당 부근에서 만난 동네 주민에게 부군당에서 제사를 지내는지 물어보니 관심 없다는 반응이었다. 예전에 더러 지낸 거 같은데 요즘도 지내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당산동 부군당 인근에서 만난 주민도 관심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젊은 주민은 무슨 공간인지 잘 모른다고 했다. 부군당이 과거처럼 마을과 주민의 구심점이 되는 거로 보이지는 않았다. 

두 부군당에서 제를 지내왔다는 음력 10월 1일이 올해 양력으로는 11월 1일이다. 그즈음 두 부군당에서 제를 지낸다는 소식은 접하지 못했다. 전통 마을이 사라지며 예로부터 전해오는 전통도 함께 사라져가는 오늘날, 이를 지켜나가는 건 지자체의 관심과 의지에 달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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