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강남대로를 지나다 보면 불경기를 실감할 수 있다. 특히 강남역 인근이 그렇다. 대로변에 통째로 빈 건물이 있는가 하면 대로 안쪽 먹자골목에도 빈 점포가 많이 보인다.
강남역 일대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트렌드 변화와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지역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세태가 바뀌면서 용도가 바뀌거나 헐린 후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다. 뉴욕제과와 제일생명이 대표적이다.
이들 장소는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강남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였다. 하지만 뉴욕제과는 오래전에 문을 닫았고 건물은 재건축됐다. 제일생명 사옥은 인근 사거리의 이름을 제일생명사거리로 지을 정도로 인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었다. 하지만 이 건물 또한 헐렸고, 사거리의 이름은 교보타워사거리로 변경됐다.
"뉴욕제과 앞에서 봐"
뉴욕제과는 빵집이었다. 근현대를 배경으로 만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빵집은 청춘남녀들의 만남 장소로 등장하곤 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 대로변에 있었던 뉴욕제과도 만남의 장소였다.
그런 뉴욕제과는 1974년 강남대로 옆 건물에 들어섰다. 강남역이 1982년 12월에 영업을 시작했으니, 뉴욕제과는 강남역보다 먼저 이 일대의 명물이 되었다.
뉴욕제과는 1949년에 창업한 제빵업체다. 프랜차이즈도 있어서 1980년대와 90년대만 해도 독일제과와 함께 동네 빵집을 대표했다.
뉴욕제과는 강남 개발이 한창이던 1974년에 영동1로와 삼릉로가 교차하는, 즉 강남대로와 테헤란로가 교차하는 지금의 강남역사거리 인근에 건물을 올리며 직영점을 냈다. 강남 뉴욕제과의 시작이었다. 그러다 지하철이 뚫리며 강남역 뉴욕제과로 불렸다.
뉴욕제과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만남의 장소였다. 한때 '강남역에서 만나!'라는 말은 '뉴욕제과 앞에서 보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세기 후반에 뉴욕제과에 변화가 생겼다. IMF 구제금융 시기인 1998년에 강남점 건물이 ABC상사로 넘어가 'ABC뉴욕제과' 간판을 내걸게 되었다. 뉴욕제과 본사는 2000년에 최종 부도 처리되었지만, 그래도 빵집의 명맥은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던 2012년 뉴욕제과 건물에 패스트패션 매장이 들어섰다. 건물주로서는 빵을 파는 것보다는 임대하는 게 좋을 거란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2021년에 건물이 헐리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현재 이 건물에는 다양한 미용 목적의 의원들이 영업하고 있다.
제일생명사거리에서 교보타워사거리로
9호선과 신분당선이 교차하는 신논현역은 교보타워사거리에 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사거리의 이름은 제일생명사거리로 불렸었다. 지금은 교차로 바로 옆에 교보생명 서초사옥이라는 거대한 건물이 서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이 일대를 대표하는 건물이 제일생명 사옥이었기 때문이다.
제일생명 사옥이 강남대로 근처에 있던 시절 교보생명 서초사옥 자리는 자동차학원이었다. 제일생명 사옥은 사거리에서 경부고속도로 방향으로 한 필지 들어간 위치에 있었다.
과거 항공사진을 보면 교보생명 서초사옥 자리에 있었던 자동차학원을 확인할 수 있다. 항공사진에 면허 시험 코스의 도로 모양이 보인다. 그리고 자동차학원 옆에는 큰 건물이 한 채 보이는데 제일생명 사옥이다.
제일생명은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생명보험 회사 중 하나였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1999년 독일 알리안츠에 매각되었다.
그리고, 강남의 랜드마크이기도 했던 제일생명 사옥은 2000년대 초반에 헐렸다. 2016년에는 회사가 중국 보험회사에 매각되었고 이름도 ABL생명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또 다른 매각 소문이 들리고 있다.
교보생명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서초사옥의 설계는 1991년부터 논의가 되었고, 90년대 말부터는 공사에 들어간 거로 보인다. 완공 후 건물 사용이 승인된 건 2003년이었다. 이때까지 '제일생명사거리'로 불렸던 교차로는 '교보타워사거리'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세태의 변화가 담긴 정경
강남대로가 처음 뚫렸을 때 이름이 '영동1로'였고, 테헤란로의 원래 이름이 '삼릉로'인 데서 보듯 도로나 지역 이름의 변경은 세태 변화를 반영한다. 강남대로는 지역 관할이 영동출장소에서 강남구가 된 걸 의미하고, 테헤란로는 당시의 외교적 관심사를 의미한다.
이렇듯 원래의 지명을 변경하게 되는 건 보통 정책이나 정치적 의미가 담길 때가 많은데 교보타워사거리처럼 그 지역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의 변화를 상징할 때도 있다.
이렇듯 강남대로 일대는 랜드마크가 변했을 뿐 아니라 철마다, 혹은 트렌드에 따라, 때로는 경기에 따라 계속 변화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도시는 계속 변신하는 유기물 같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모습을 기억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지금의 강남이 미래에 추억의 모습으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