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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 사회 5년 코앞...新 노인복지 수요 커져 어르신 놀이터로 노년층 삶의 질 상승 기대도

[인터뷰 上] 국내서도 ‘어르신 놀이터’ 도입, 기대와 우려는?

2020. 12. 24 by 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초고령 사회가 한 발자국 다가오면서 새로운 노인복지 정책이 떠오르고 있다. ‘건강’과 ‘여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어르신 놀이터’가 대표적인 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어르신 놀이터의 도입을 추진 중인 가운데,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독일 뉘른베르크의 모든세대를위한공원에서 노인들이 쉬고 있다. (사진=이건웅 교수 제공)
독일 뉘른베르크의 모든세대를위한공원에서 노인들이 쉬고 있다. (사진=이건웅 교수 제공)

한국은 어느덧 초고령 사회에 한 발자국 앞서게 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15.7%다. 5년 뒤인 2025년에는 노년층 인구 비율이 전체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관련 정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노인들을 위한 정책으로는 기초노령연금 등 현금성 지원 제도와 각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운영되는 경로당 등 각종 여가 시설이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최소 5년 뒤 인구 20%를 차지하게 될 노령층을 위해서는 이들 정책 외에도 새로운 복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어르신 놀이터’는 초고령 사회를 대비한 새로운 노인 복지 정책으로 꼽힌다. 아이들의 놀이터와 마찬가지로 어르신들을 위한 놀이터를 지역 사회에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핀란드 헬싱키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해외 주요 도시에서는 어르신 놀이터가 이미 정착된 지 오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어르신 놀이터 조성 사업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다.

새로운 노인 복지 정책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뉴스포스트>는 어르신 놀이터에 대한 심도 있는 보도를 위해 이달 18일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이건웅 교수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어르신 놀이터 연구를 목적으로 두 차례 유럽을 방문해 관련 서적을 저술했다. 인터뷰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서면으로 진행됐다.

핀란드 헬싱키에 마련된 어르신 놀이터. (사진=이건웅 교수 제공)
핀란드 헬싱키에 마련된 어르신 놀이터. (사진=이건웅 교수 제공)

노년층에게도 ‘안전한 놀이터’가 필요하다

이 교수에 따르면 어르신 놀이터는 좁은 의미로 ‘노인여가복지시설’에 해당한다. 노인여가복지시설에는 대표적으로 노인복지관과 경로당, 노인교실이 있다. 하지만 어르신 놀이터와 기존의 노인여가복지시설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 교수는 “경로당이나 시니어클럽도 넓은 의미의 노인 놀이터”라면서도 “노인 놀이터는 야외에 설치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놀이터나 공원 형태로 돼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의 노인여가복지시설은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 등 대부분 실내 활동에 한정됐다. 노년층의 야외 활동을 지원하는 시설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동용 놀이터나 인근 공원에 마련된 운동 시설은 사실상 노인들을 위한 게 아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복지가 좋아지면서 인근 공원이나 유휴지 등에 운동기구가 많이 설치됐지만,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 노인 대상이 아니다”라며 “낙상 등 안전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어르신 놀이터는 안전한 야외 활동을 지원하면서 노년층의 건강과 여가를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이 교수는 “안전문제를 해결하고 간단한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게 노인 놀이터”라면서 “노인 놀이터는 운동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건강, 웰빙, 여가 활동, 사회적 유대관계와 참여 등을 강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노인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어르신 놀이터에는 아무 기구나 설치할 수 없다. 이 교수는 “노인은 어린이와 달리 근육과 골격이 퇴화돼 빠르고 힘을 요하는 능동적 놀이기구보다 정적이고 부드러운 놀이와 운동기구가 필요하다”며 “유연성과 부드럽게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장비”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로 ▲ 고정식 자전거 ▲ 크로스 트레이너 ▲ 윗몸일으키기 기계 ▲ 러닝머신 등이다.

아울러 완만한 경사와 안전턱, 손잡이 등을 설치해 노인들을 배려해야 한다. 거주지와 가까운 것 역시 중요하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안전이 보장돼야 어르신 놀이터 이용률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교수는 “유니버설(Universal) 디자인과 배리어 프리(Barrier-free) 철학이 융합되도록 설계해야 한다”며 “근접성도 중요하다. 집과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않고, 대중교통이 편리해야 한다. 고령자는 주차 혜택 등을 통해 편리하게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르신 놀이터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노년층의 삶의 질은 얼마나 달라질까. 이 교수는 노년층의 고독을 해소하는 데 어르신 놀이터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노인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 즉 고독감이다. 임종까지 노인은 고독 및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데, 남성보다 여성이 이 문제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며 “이 때문에 노인에게는 집이 아닌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곳이 바로 노인 놀이터”라고 주장했다.

이어 “기존 노인 복지가 ‘수명 연장’에 집중했다면, 요즘은 ‘삶의 질’과 ‘능동적 노화’로 변하는 추세다. 즉 ‘성공적인 노화’와 ‘건강한 노화’가 대두된다”며 노년학 전문가 로위(Rowe)와 칸(Kahn)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성공적인 노화’를 위해서는 질병과 장애의 부재, 인지 및 신체 기능의 유지, 삶을 지속하는 ‘참여’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9일 충남 공주에 마련된 어르신 놀이터 시연 행사에서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운동기구를 시연하고 있다. (사진=충청남도 제공)
지난 9일 충남 공주에 마련된 어르신 놀이터 시연 행사에서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운동기구를 시연하고 있다. (사진=충청남도 제공)

어르신 놀이터 도입, 풀어야 할 숙제 多

향후 노년층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어르신 놀이터가 국내에서도 설치된다. 충청남도는 공주시에 내년 4월까지 사업비 5억 원을 투입해 어르신 놀이터를 조성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충남 외에도 전남 장성군과 서울, 부산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도 어르신 놀이터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2월에는 국회에서 ‘노인 놀이터’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고, 수많은 지방자치단체가 관심을 두고 긍정적인 평가를 보였다.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어르신 놀이터지만, 이 교수는 사업의 도입이 무조건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내다봤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노인 놀이터가 없기 때문에 문제점이 분명 있다. 노인 놀이터에 대한 공감대와 문화의식이 아직 부족하다”며 “실제 노인이 활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장소와 위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의 천호근린공원은 한국형 어르신 놀이터의 현 모습이라고 이 교수는 말한다. 그는 “천호공원은 음악분수와 야외무대, 체력단련 시설을 갖췄다. 시민들의 여가생활 및 노년층의 휴식공간으로 특화돼 있다”면서도 “도로와 주택 어디든 출입이 가능해야 하는데, 울타리를 쳐 입출입이 제한돼 있다. 또 경사로가 많아 안전과 접근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비교적 잘 조성됐다는 천호근린공원 마저도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어르신 놀이터에 대한 우려점은 접근성 외에도 더 있다. 노인 전용 놀이기구를 만드는 전문업체가 국내에 전무하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국내에 기업이 없기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의 노인 놀이터 모델을 흉내 내거나 아예 무시하고 운동기구만 설치할 가능성이 높다”며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더라도 유럽의 우수한 노인 놀이터 운동기구나 디자인을 도입하고 추후 이들의 기술 이전을 받거나 도입해서 한국형 노인 놀이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르신 놀이터 조성 사업이 이제 첫발을 내딛는 단계에서 해야 할 과제는 현지화(Localization)다. 초기에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유럽이나 미국의 모델을 도입 후 한국식 어르신 놀이터를 제대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장이 선거를 위해 치적 쌓기용 포퓰리즘 정책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우려다.

이 교수는 “어느 정당이나 노인층의 지지가 필요하면 필요할수록 노인 놀이터를 노인 문화복지로 둔갑시켜 선거에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본질은 사라지고 치적만 남는다”라며 “노인을 위한 노인 놀이터가 아니라 놀이터의 개수나 이용률이 낮은 곳에 전시 행정처럼 설치하거나 특정 기업이 독점하거나 몰아주기 식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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