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투자와 경영의 글로벌 기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연기금 등 국내외 재무적투자자는 기업의 ESG 지표에 따른 지속가능경영 수준을 투자 기준으로 삼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국내 공기업의 ESG 경영을 짚어본다. -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한국전력공사는 최근 국내 신재생·친환경 에너지사업을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9년 국내 최초로 지속가능채권(Sustainability Bond)을 발행하는 등 사회적 가치와 친환경 프로젝트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전은 해외에서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 사업을 추진하는 등 ESG 경영에 국내와 다른 모순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ESG 경영 확대 의지
한전은 지난 2020년 11월 비재무적 성과와 지속가능경영 활동을 담은 ‘2020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 한전의 2020년 보고서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ESG’ 항목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한전은 2005년부터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해왔지만, ESG 관점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 것은 최초다.
한전은 보고서에서 ESG 경영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투자 확대와 개발 △국내 석탄화력발전소 조기 폐지 △LNG 발전으로의 전환 △해외 석탄화력발전 사업 추진 중단 △전력사업 특화형 사회공헌 활동 확대 등의 계획을 밝혔다.
실제로 한전은 ESG 경영을 위해 지난해와 올해 5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그린본드를 발행한 바 있다. 또 국내 최초로 2,000억 원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한전은 향후 이사회 산하에 ‘ESG 추진위원회’도 설치해 ESG 경영을 챙길 계획이다.
‘글로벌 석탄 퇴출 목록’ 등재 불명예... ‘APG’, 한전 지분 처분하기도
문제는 한전의 ESG 경영 방침 천명에도 글로벌 NGO와 금융기관, 재무적투자자 등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관들은 한전이 진행하고 있는 해외 석탄화력발전 사업을 이유로, 한전의 탄소 배출 감소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
독일 환경·인권 비정부기구 우르게발트(Urgewald)는 2020년 11월 ‘글로벌 석탄 퇴출 목록’(GCEL)에 한국전력공사를 등재했다. 2017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GCEL은 전 세계 400여 개 글로벌 금융투자자가 참고하는 ESG 투자 기준으로 활용된다. 14조 달러 이상의 기금을 운용하는 재무적투자자도 이 기준을 참고해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GCEL에 등재된 기업들은 글로벌 투자를 받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한국전력공사가 여러 발전 자회사들을 활용해 석탄화력발전을 운용하는 게 GCEL 등재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전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추진하는 석탄화력발전 사업이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다.
한전 측은 지난해 6월 30일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원안 가결했다”고 밝혔다. 당시 한전은 국내 석탄화력발전 사업을 축소하는 상황에서 해외 석탄화력발전 사업을 추진한다는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날 한전 임시 이사회는 인도네시아 현지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원안 가결했다.
인도네시아 자와섬 서부에 들어서는 자와 석탄화력발전소는 총사업비가 4조 1,000억 원으로, 2000MW 규모 전력을 생산할 예정이다. 두산중공업이 이 사업에 1조 6,000억 원 규모를 수주했는데, 이런 까닭에 두산중공업 역시 GCEL에 이름을 올리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한전의 해외 석탄화력발전 사업은 베트남에서도 진행 중이다. 한전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5일 “이사회에서 베트남 붕앙-2 발전 사업에 참여하는 안건이 의결됐다”고 전했다.
베트남 북동부 하띤성에 1200㎿급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붕앙-2 사업은 총사업비 2조 6,000억 원 규모로 진행된다. 한전과 일본 미쓰비시가 투자하고 두산중공업과 삼성물산이 EPC 형식으로 참여한다.
이에 5,480억 달러(약 595조 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네덜란드공적연금운용사(APG)는 올해 초 한전 지분 6,000만 유로(약 800억 원)을 처분했다. 인도네시아 자와 석탄화력발전소와 베트남 붕앙-2 사업으로 한전의 탄소 배출 감소 의지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APG 측은 한전 지분을 처분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석탄화력 분야에 등을 돌리고 있다”며 “한전 최고 경영자와 이사회 구성원은 스스로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한국전력이 ESG 경영 방침을 밝혔지만,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해외에서 석탄화력발전 사업을 한다면 그 진정성이 없다고 본다”면서 “매년 GCEL에 포함되는 한전은 석탄화력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글로벌 금융기관과 투자자의 ESG 기준은 향후 더 높아지고 엄격해질 것”이라면서 “한전은 지금부터 준비해서 선도적으로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나중에 울며 겨자 먹기로 큰 손해를 보면서 ESG 투자에 나서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세종 기후솔루션 변호사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이 해외 석탄화력발전 4건 가운데 2건을 중단한다고 했는데, 남아공과 필리핀 석탄화력발전 사업은 환경오염을 우려한 현지 반발로 이미 추진 동력을 잃은 상황이었다”며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석탄화력발전 사업이야말로 한전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생색내기용 발언에 불과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내 전력의 송전과 배전을 독점하고 있는 한전은 석탄화력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여 전력계통의 유연성을 높이는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는 환경을 고려하는 도의적인 의무일 뿐만 아니라, ESG가 글로벌 경영 기준으로 자리잡는 상황에서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