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아이는 세상을 구합니다. 무한 경쟁 사회 속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뉴스포스트>가 직업 멘토 프로그램 ‘마이리틀히어로’를 시작합니다. 수의사, 변호사, 요리사 등 다양한 분야의 현업 멘토들이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만나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나눕니다. 당신도 아이들에게는 작은 영웅이니까요.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작은 시골 마을에서 큰 꿈을 꾸던 소년이 있었다. 한국 사회와 바다 건너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들에 관심이 많았고, 더 큰 세상에 나가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소년은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은행에서 국제금융 계약을 담당하게 됐고 결국엔 변호사가 됐다. 20년 베테랑 국제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변호사의 얘기다.
지난 24일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수륜아시아 사무실에서 ‘마이 리틀 히어로’ 변호사 멘토링을 진행했다. 멘토링에는 박승환(18세·남), 양희준(17세·남) 군이 참석했다. 승환 군은 시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법안을 다루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희준 군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비리를 없애고 싶다고 했다.
송 변호사는 “법을 다루는 직업은 굉장히 길이 넓다. 변호사, 검사, 판사라는 세 직역이 서로 완전히 다르거나 분리돼있지 않다”며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찾아가야 하는데, 여러 가지 관심을 갖고 길을 가면 잘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었다.
다음은 마이리틀히어로 변호사편 일문 일답.
양희준 어떻게 변호사가 되셨나요?
송기호 고등학교 때는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학교 졸업하고, 군대 가고, 언론시험을 봤는데 안 됐어요. 그래서 일반 회사, 은행에 들어갔죠. 주로 중국이라던지 해외 투자 업무를 많이 했어요. 반도체 공장을 중국에 짓는데 수백만 달러가 든다고 하면, 여러 나라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는데 그 국제금융 업무를 담당한 거죠. 큰 돈을 빌리면 계약서를 쓰잖아요? 그 업무를 제가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국제금융, 국제통상 분야에 전문가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변호사 시험을 봤어요.
나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다른 과목은 꽤 잘 봤는데, 아저씨는 형법을 되게 싫어했거든요. 사법시험은 한 과목이라도 40점 밑으로 떨어지면 탈락하는데, 딱 40점을 받았어요. 0.1점만 떨어졌어도 통과를 못했을 거예요. 그러니 운도 따랐던 거지.
변호사가 돼서 국제분야를 다루고 싶었어요. 외국에서 공부도 좀 했고요. 그런데 여전히 우리나라는 국제법이 좀 약하죠.
박승환 요즘 국제 변호사 꿈을 갖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옛날보단 국제 변호사 업무가 많아져서 그런 걸까요? 변호사도 다양한 직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송기호 국제 업무가 늘어나긴 했는데, 내 경험으로는 우리 중심을 잡는 것도 참 중요해요. 결국 우리 안에서 잘 돌아가고 우리 사회가 잘 서야 대외적, 국제적으로도 잘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한 대로 변호사의 길이 꼭 변호사 사무실만 있는 게 아니에요. 길이 굉장히 넓죠. 난 사업연수원 시절에 판사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내가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 데 별로 끌리지 않았고, 국제통상 쪽에 관심을 가졌죠. 최근에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두고 국제 재판이 열렸을 때 정부에 자문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런 업무를 하죠. 또 다른 분은 변호사지만 통일부 공무원을 하고요. 남북 경제협력 시 양측의 제도가 다르니까, 북한 투자를 하고 싶은 기업들을 도와주고 있어요. 또 다른 분은 경기도 공무원으로 도가 법 절차를 잘 밟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을 해요.
박승환 뉴스를 보면, 어떤 범죄는 더 많은 형량을 줘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법에 구멍이 있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고요.
송기호 승환 학생이 이야기한 부분은 ‘좋은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국회의 역할이죠. 법을 만들 때는 우리 사회와 국민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폭넓게 인식하고, 경제와 사회 등 종합적인 고려를 해야 해요.
양희준 전 비리 같은 게 없으면 좋겠어요.
송기호 검사의 역할이 중요하죠. 이를테면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투기 사태가 있었죠. 주거 문제가 국민 삶에 참 중요한데 어떻게 내부 정보를 사적 이익을 위해 썼을까. 직원 한두 명의 문제가 아니라, LH조직 문화 자체의 문제죠. 나는 검찰이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 비리가 벌어지지 않으려면 단지 특정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단하는 것에 멈춰선 안 돼요.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과 원칙을 세워줘야 합니다. LH문제는 대검찰청이 계속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다해야 했어요.
박승환 변호사들이 흉악범을 변호할 때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양심적으로 맡기 힘들었던 사건이 있으셨나요?
송기호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변호한 적이 있어요. 국가가 변호사를 임명해주는 국선 변호사 제도가 있는데, 그걸 통해 세 번 정도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을 변호한 적이 있었습니다. 국선을 맡아도 변호사는 양심에 따라 변호를 거부할 수 있어요. 하지만 양심이 개인적으로만 있는 게 아니에요. 한 국가의 양심도 있어요. 중대한 처벌을 받을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변호사 서비스를 아예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양심적일까요? 그러니 한 개인 변호사의 양심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 국가가 그런 상황에서 양심을 지켰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내 양심이 아니라 국가의 사업제도를 위해 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사건은 어떻게 종결됐냐면, 판사가 의외로 강한 처벌을 하지 않았어요. 객관적으로 그 사람이 아버지를 죽인 건 맞았어요. 하지만 아버지도, 또 아들도 정신적으로 치료를 받지 못했던 특별한 상황이 있었어요. 그동안 아버지와 그 사람이 어떤 관계였고,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듣게 됐죠. 두 학생이 변호사가 되든 다른 더 넓은 일을 하든, 개인의 양심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좀 더 공정하고 정의롭게 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양심적으로 맡지 않았던 사건은, 작년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특정 집단에서 감염병관리법을 위반한 사례가 있었죠. 그 단체에서 제게 변호를 해달라고 연락이 온 적 있어요. 이건 아까 이야기한 국선 변호사 사례와는 다르죠. 공중 보건에 위해를 끼치는 집단을 변호해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절했습니다.
양희준 가장 기억에 남은 사건이 있으셨나요?
송기호 현실에도 그야말로 장발장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한 15년 전, 서울 어느 동네에서 경찰관이 범인을 잡지 못한 사건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중·고등학생들에 뒤집어씌운 사건이 있었어요. 한밤중에 학생들 집으로 찾아가서 체포하고, 머리에 총을 겨누면서 자백하라고 협박을 했죠. 학생들은 다 거짓으로 자백하고요. 그 사건을 맡은 검사도 참 잘못됐다고 생각하는데, 경찰이 조사한 대로 사건을 재판에 넘겼어요.
그때 증인이 초등학생 6학년이었어요. 알고 보니 경찰관이 돈을 주고 위증을 시켰는데 법정에서 그 초등학생 뒤에 앉아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증인을 회유하고 조작한 경찰관이 있으니 내보내달라’고 요청했고, 그 경찰관이 자리에서 나가자 초등학생이 “경찰관에 돈을 받고 허위로 진술했다”고 털어놨어요. 그렇게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죠. 국가 권력이 억울하게 범죄자를 만드려고 했던 사건인데, 그 학생들 사건이 제일 보람있게 느껴졌어요. 지금쯤 결혼도 하고, 다 컸겠죠?
박승환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잖아요.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많이 대체하고 있는데 변호사도 그럴까요?
송기호 난 대체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대체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겠죠. 가령, 이건 세법이고 이건 건설편람이에요. 굉장히 두꺼운데 특정 법을 찾기 어렵죠. 어떤 사건에 어떤 법이 적용될지 찾아보는 것은 충분히 인공지능을 도입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까 말한 대로 아버지를 죽인 아들에게는 어느 법을 적용할지 인공지능이 찾을 수 있죠.
그런데 그 사람이 저지를 범죄를 평가하고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 어느 정도의 처벌이 그 사람 스스로 뉘우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없죠. 또 아까 사례대로 국가 권력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 경우도 인공지능이 해결할 수 없고요. 인공지능이 도움을 주는 부분은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정의를 세우고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책임감까지 인공지능에 요구하진 못할 거에요.
멘토링은 송 변호사의 작은 선물 증정으로 끝이 났다. 다문화 가정이 가진 다양한 자산에 자부심을 갖고, 꼭 그것을 키워나갔으면 한다는 덕담도 덧붙였다. 입시 경쟁에 내몰리는 한국 학생들이 안타까운 듯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내가 뭘 잘하나 고민이나 그런 생각도 말고, 내 목소리를 더 들어봐요. 내가 관심 있는 건 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 시절 소년 송 변호사에게 전하는 이야기였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