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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소주 박재서 명인 손자 박춘우 청년장인...“3대째 전통 잇고 있죠” 건국대 미생물학과·경북대 발효 공학 석사...“과학으로 전통 발전시킬 것” 알코올 기체와 이산화탄소 가득 찬 발효실에서 작업 중 기절하기도 안동소주 세계화 위한 제2공장 운행 앞둬...“전통주 세제 정책 아쉽다”

[청년장인을 찾아서]⑨ 박춘우 “안동소주식 위스키 세계화 나설 것”

2021. 07. 20 by 이상진 기자

평생직장이란 단어는 곰팡내 나는 책을 뒤적여야 찾는 빛바랜 훈장 닦는 소리가 된 지 오래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말하는 시대. 본지는 일찍이 자신의 업을 찾은 청년장인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사물의 참모습은 비가 내릴 때 드러난다. 나무도, 바위도, 꽃도, 그리고 사람도, 비를 흠뻑 맞은 뒤에야 평소 숨겼던 진짜 향기를 퍼뜨린다.

지난 19일 뉴스포스트 취재진이 소낙비가 쏟아질 때 도착한 게 천운이었다. 경북 안동시 풍산읍 소재 ‘명인안동소주’ 양조장에 도착하자마자 진한 누룩향이 코끝을 찌른 것이다. 이날 ‘명인안동소주’ 누룩향은 빗방울과 함께 양조장에 가득 흘렀다.

명인안동소주 양조장 앞에서 취재진을 맞은 박춘우 청년장인.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명인안동소주 양조장 앞에서 취재진을 맞은 박춘우 청년장인.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비바람과 누룩향에 둘러쌓인 명인안동소주 양조장에서 취재진을 가장 먼저 반긴 건, 명인안동소주 전수보조자 박춘우(34) 팀장이었다. 박춘우 팀장의 할아버지는 안동소주 명인 박재서 선생(전통식품 명인 6호)이고, 아버지는 박찬관 전수자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모여 안동소주의 명맥을 잇는 셈이다. 

4시간으로 계획된 취재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취재진은 박춘우 청년장인의 안내에 따라 먼저 예절방과 누룩방, 소주방 등 체험공간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인터뷰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 진행했다.
 


“‘소주’는 신라 시대부터, ‘안동소주’는 고려 시대부터 유래됐지요”


소주의 역사는 신라 시대부터, 안동소주의 역사는 고려 시대부터라고 설명하는 박춘우 청년장인.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소주의 역사는 신라 시대부터, 안동소주의 역사는 고려 시대부터라고 설명하는 박춘우 청년장인.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박춘우 청년장인은 ‘주도’를 익히는 예절방에서 술을 마실 때 지켜야 할 예절을 말하면서, 우리 민족 ‘소주’의 역사와 ‘안동소주’의 역사를 설명했다. 소주는 신라 시대부터, 안동소주는 고려 시대부터 유래했다는 설명이다.

“소주는 증류기술이 필수인데요. 증류기술은 아랍의 연금술사들이 개발했죠. 그래서 소주의 기원만 놓고 보면 신라 시대부터라고 추정됩니다. 당시 신라와 아랍 사이에 중계무역이 활발했는데, 이때 증류주 제조법도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지요. 안동 지역의 ‘안동소주’ 역사는 700여 년 전 고려 시대부터입니다. 그 가운데 ‘명인안동소주’는 안동 반남 박씨의 가양주로 500여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죠.”

박춘우 청년장인이 옛 방식으로 누룩을 만들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박춘우 청년장인이 옛 방식으로 누룩을 만들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예절방을 나선 뒤 누룩방에 들어선 박춘우 청년장인은 공장식이 아닌, 과거 손으로 누룩을 만드는 방식을 재현했다. 첨가물 없이 100% 국내산 쌀로 만드는 안동소주에서 가장 중요한 게 누룩이라는 설명이다. 누룩을 만든 뒤에는 누룩을 고두밥과 섞는다.

취재진도 옛 방식으로 누룩을 만들기 위해 직접 맷돌을 돌려봤다. 몇 차례 돌리지 않았는데도 팔이 저려왔다. 몇 분 동안의 체험만으로도 안동소주의 명맥을 잇기 위한 500년 세월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됐다.

공장식 제조 방식 도입 전 술을 내리는 기구인 소줏고리를 설명하는 박춘우 청년장인.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공장식 제조 방식 도입 전 술을 내리는 기구인 소줏고리를 설명하는 박춘우 청년장인.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소주방에 들어서자 ‘소줏고리’가 눈에 띄었다. 고두밥에 섞은 누룩은 술에 담그는 과정을 거친다. 그 뒤에 ‘소줏고리’로 내리는 과정이 뒤따른다. 박춘우 청년장인은 명인안동소주만의 비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안동소주는 2단계 발효 과정을 거치는 ‘2단 사입법’을 쓰는데요. 명인안동소주는 ‘3단 사입법’을 쓰죠. 또 안동 지방 지하 암반 270m에서 뽑은 천연 암반수와 100% 국내산 쌀로 만드는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막걸리가 아닌 청주를 증류해 빚은 까닭에 맛과 향이 깊습니다.”

안동소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에 대해 묻자 박춘우 청년장인은 나이대별로, 취향별로 다르다고 답했다.

“안동소주 본연의 향을 즐기는 분들은 보통 나이대가 있으신 분들인데, 이분들은 문어숙회나 육회와 드시면 안동소주 향을 그대로 느끼실 수 있습니다. 반면 젊은 층은 삼겹살이나 중식 등 기름진 음식에 안동소주를 곁들여 마시는 걸 좋아하시더라고요.”
 


대통령이 선물하는 명인안동소주...‘안동소주식 위스키’로 세계시장 발판


올해 설 명절에 문재인 대통령이 선물한 명인안동소주 앞에 선 박춘우 청년장인.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올해 설 명절에 문재인 대통령이 선물한 명인안동소주 앞에 선 박춘우 청년장인.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체험공간을 벗어나 들어선 역사관에서는 명인안동소주의 과거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살펴볼 수 있었다. 취재진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올해 설 명절에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의료진과 애국지사, 국가유공자 등 각 분야에서 헌신하고 있는 이들에게 보낸 명인안동소주 선물이었다.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명인안동소주가 전통주의 대중화를 위해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같은 하회탈 술병도 색과 크기, 손잡이 유무 등이 모두 달랐다. 박춘우 청년장인에 따르면, 진열된 대부분의 술병이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역사관의 한 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지금의 명인안동소주 술병 디자인은 많은 실패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하회탈 디자인을 소개하는 박춘우 청년장인.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지금의 명인안동소주 술병 디자인은 많은 실패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하회탈 디자인을 소개하는 박춘우 청년장인.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조금 더 내려가니 흥미로운 포스터가 역사관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1993년 제작한 명인안동소주의 포스터는 요즘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이건 아버지인 박찬관 전수자님이 제 나이 때 회사에 입사해서 추진했던 홍보 포스터예요. 1993년에 촬영한 거고요. 당시 주류 광고물들은 이렇게 슈퍼모델을 써서 파격적인 포스터를 만들었다고 해요. 아버지께서도 안동소주 대중화를 위해 비슷하게 하신 건데, 문제는 양반 지역으로 알려진 보수적인 안동에서 어르신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합니다. (웃음) 그래서 제작한 1톤 분량 포스터를 전부 폐기 처분해야 했죠.”

파격적인 안동소주 포스터는 당시 보수적인 안동 지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파격적인 안동소주 포스터는 당시 보수적인 안동 지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역사관 지하에 도착하니 입구 바로 앞에 오크통이 쌓여있었다. ‘안동소주식 위스키’를 만들어 명인안동소주의 주종을 넓히기 위한 시도의 흔적이었다. 박춘우 청년장인이 세계시장을 목표로 제조하고 있는 새로운 주종이었다.

박춘우 청년장인은 건국대학교 미생물학과(07학번)를 졸업했다. 현재는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발효공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 청년장인은 경북대학교와 함께 2년 동안 연구해 ‘안동소주식 위스키’ 시제품 ‘묵향’을 만들었다. 실제 출시까지는 추가로 2년의 시간이 더 소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묵향의 뚜껑을 열고 향을 맡아보니 익숙한 위스키향에 안동소주 특유의 누룩향이 더해져 있었다.

자신이 전공한 미생물학과 발효공학을 기초로 개발하고 있는 '안동소주식 위스키'인 '묵향'을 설명하는 박춘우 청년장인.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자신이 전공한 미생물학과 발효공학을 기초로 개발하고 있는 '안동소주식 위스키'인 '묵향'을 설명하는 박춘우 청년장인.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지금 명인안동소주의 주종은 45도, 35도, 22도, 19도, 이렇게 4개예요. 저는 여기에 새로운 주종을 추가하고 싶어요. 세계시장으로 외연을 확대하고 싶은 거죠. 그래서 외국인이 봤을 때 익숙한 오크통에서 안동소주를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봤어요. 안동소주식 위스키를 만들고 싶어요. 제가 공부한 과학적 방법으로 안동소주 전통을 발전시켜야죠.” 
 


발효실에서 기절하기도 했지만...“제 삶에 아주 만족합니다” 


박춘우 청년장인이 발효실에 들어가기 앞서 발효실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박춘우 청년장인이 발효실에 들어가기 앞서 발효실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역사관 옆에 위치한 발효실에 들어서자 2,000리터 크기의 발효탱크 28개가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꼭 닫은 문틈 사이로 발효된 누룩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박춘우 청년장인이 발효실 문을 열자 취재진의 숨이 턱턱 막혔다. 발효실 내 알코올 기체와 이산화탄소가 가득해 호흡이 어려웠던 것이다.

“저도 새벽에 발효실에서 작업하다가 기절한 적이 있어요. CCTV로 발효실을 살피던 직원에게 발견돼서 다행이었죠. 그래서 지금은 발효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꼭 환풍기를 켜고 들어갑니다.”

발효실 작업을 하고 있는 박춘우 청년장인. 한통당 수십 번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발효실 작업을 하고 있는 박춘우 청년장인. 한통당 수십 번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버틸만하다는 취재진의 말에 박춘우 청년장인은 평소 발효실에서 하는 작업을 재현했다. 28개 통을 하루에 수십 번씩 휘저어야 발효가 제대로 되는데, 박 청년장인은 이때 발효통마다 ‘톡톡’ 나는 소리가 꼭 빗소리를 닮았다고 설명했다. 취재진이 발효통에 귀를 기울여보니, 실제로 바깥에서 내리는 소나기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기계로 하면 시시각각 변하는 발효 상태를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죠.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잘 발효된 통에선 보글보글 누룩이 끓는데요. 이산화탄소가 터지면서 그런 겁니다. 이 터지는 소리가 빗소리와 닮았죠. 그래서 명인안동소주 양조장은 365일 비가 내린다고 보면 됩니다. (웃음) 매일 누룩이 내는 빗소리를 듣는 제 삶에 아주 만족해요.”

잘 발효된 누룩. 조용히 귀 기울이면 빗소리가 들린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잘 발효된 누룩. 조용히 귀 기울이면 빗소리가 들린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박춘우 청년장인은 우리가 흔히 마시는 초록색 병의 ‘희석식 소주’와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안동소주’는 제조 과정 자체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고구마 등 원료로 95% 발효 주정을 만드는 ‘희석식 소주’와 달리, 안동소주는 증류 원액으로만 제조한다는 설명이다.

“일반 희석식 소주는 원료가 타피오카나 고구마예요. 그걸 95%로 발효한 뒤에 물과 섞어서 희석하죠. 거기에 각종 화학 첨가물로 맛을 내고요. 하지만 안동소주는 100% 쌀로 만든 증류식 원액으로 만든 술이라 맛과 향이 다르죠.”
 


제2공장 운행 앞둔 명인안동소주...세제 정책 아쉬워


제조 공정을 설명하는 박춘우 청년장인. 쌓여있는 20킬로그램 쌀 한 가마니당 45도 안동소주 1병이 나온다고 한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제조 공정을 설명하는 박춘우 청년장인. 쌓여있는 20킬로그램 쌀 한 가마니당 45도 안동소주 1병이 나온다고 한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명인안동소주를 제조하는 스마트공장에 들어서니 주종별로 제조 공정이 자동화돼 있었다. 19도와 22도, 35도, 45도 주종 라인이 모두 구별돼 생산현황이 모니터링됐다. 라인별 센서를 통한 제어도 가능했다. 

명인안동소주의 스마트공장은 삼성전자의 지원사업으로 시공됐다. 전통적인 안동소주 제조 과정을 대량생산이 가능한 스마트공장으로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스마트공장 도입 이후 술 주입과 병마개 착용 등이 자동화됐고, 생산성도 향상됐다. 45도 주종은 1일 1,200병에서 2,000병으로 생산량이 늘었다.

삼성전자가 시공한 스마트공장. 스마트공장 도입 후 자동화 과정이 전면 도입돼 생산성이 향상됐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삼성전자가 시공한 스마트공장. 스마트공장 도입 후 자동화 과정이 전면 도입돼 생산성이 향상됐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현재 제1공장만 운행하고 있는 명인안동소주는 제2공장 운행을 앞두고 있다. 전통 안동소주 제조에 중점을 둔 제1공장과 달리 ‘안동소주식 위스키’인 묵향(시제품) 등 새로운 주종에 중점을 둔 스마트공장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박춘우 청년장인이 제2공장의 책임자로 나서 세계시장을 목표로 주종을 확장할 예정이다.

박춘우 청년장인은 정부의 전통주 지원 정책의 아쉬운 점을 ‘세금 제도’로 꼽았다. 연 매출이 일정 기준 이상이면 전통주 면허가 취소돼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 이게 전통주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설명이다.

“매출이 일정 기준 이상이면 국가표시제도상 전통주 면허가 취소되고 일반 주류 면허를 받습니다. 50%를 감면받았던 세제 혜택을 더 이상 못 받는 거죠. 전통주를 만들어서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세제 혜택을 주지 않는다면 전통주의 세계화를 막는 거라고 봐요. 향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쏟아지던 소낙비의 꼬리를 습한 무더위가 얄궂게 붙잡고 있었다. 취재진은 안동 풍산읍을 뒤로 하고 서울로 향했다. 가마솥 더위를 뚫고 중부고속도로와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를 지나 서울로 오는 길에 취재진의 귓가에는 톡톡 누룩이 터지는 시원한 빗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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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꾼 2021-07-20 11:58:25
혼술 좋아하는데 맛이 궁금한....
이달용 2021-07-20 10:44:12
누룩향이 느껴지는 듯한 기사였습니다. 젊은 사람이 가업, 전통을 잇는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멋있습니다. 500년의 세월을 이어온 안동소주가 세계적으로 흥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