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인권

스포츠와 철학 좋아했던 스물여섯 청년...차 사고로 휠체어 앉아 처지 비관했던 3년 뒤 불현듯 삶에 대한 깨달음...다시 세상으로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로 아시아대회 4년 연속 우승한 실력파 선수 생활 접고 휠체어무용가로 2막...아내 이소민 무용가 큰 힘

김용우 휠체어무용가 “삶도, 예술도, 일기일회...순간을 잡는 것”

2021. 08. 09 by 이상진 기자
김용우 휠체어무용가(오른쪽)와 아내 이소민 무용가.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김용우 휠체어무용가(오른쪽)와 아내 이소민 무용가.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원래 휠체어를 탄 건 아니었어요. 장애가 찾아온 건 정말 눈 깜짝할 새였어요. 어학연수로 간 캐나다에서 운전 중 차가 산 아래로 굴렀죠. 의사가 척추가 부러지면서 신경이 절단됐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걷지 못할 거라고요. 무력감에 어둠 속에서 3년을 갇혀 있었어요.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생각도 했죠.”

김용우(50) 휠체어무용가는 1997년 10월 청년 김용우에게 찾아온 시련을 담담하게 전했다. 스물여섯 살 김용우는 스포츠와 철학을 좋아하는 건장하고 건실한 청년이었다. 김용우 무용가는 낯선 땅 캐나다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 후 다시 세상으로 나온 자신을 지탱해주는 건 예술과 아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김용우 무용가는 “한 번의 손짓도 다시 정확히 재현할 수 없는 예술의 세계처럼, 우리네 삶과 사랑도 그 재현의 부재 속에서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을 가진다”고 삶의 의미를 설명했다. 지천명의 나이에 이른 김용우 무용가였지만, 인터뷰 내내 그의 눈빛엔 ‘철학가’이자 ‘몽상가’였던 스물여섯 살 청년 김용우의 모습이 어려 있었다.

뉴스포스트 취재진은 6일 서울 송파구 종합운동장 내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김용우 무용가를 만나 그의 인생사를 들어봤다. 이날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는 김용우 무용가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케이휠 댄스 프로젝트’ 팀원들이 오는 21일 공개하는 무대 준비에 한창이었다. 인터뷰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 진행했다.
 


삶과 몸에 대한 깨달음...‘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로 다시 세상으로


김용우 무용가에게 휠체어는 역설적이게도 자유를 의미한다. 휠체어무용가는 휠체어에서 내리면 이동이 쉽지 않다. 휠체어라는 ‘새로운 몸’이 휠체어무용가에게 이동의 자유를 주는 셈이다. 김용우 무용가는 휠체어를 타게 된 사고가 난 지 3년 만에 불현듯 삶과 장애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김용우 무용가는 한국 최초의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로 활동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김용우 무용가는 한국 최초의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로 활동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 스물여섯 살에 찾아온 장애...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시 삶으로 나아가셨나요?

“사고가 나고 처음엔 실감이 나지를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수술하고 재활치료 받으면 다시 걷게 될 줄 알았거든요.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걷지 못했죠. 참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극단적 선택을 고민해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문득 깨달음이 찾아오더라고요. 지금 제 모습은 모두 제 선택이었다는 걸요. 제가 캐나다를 가게 된 것도, 운전한 것도, 모두 제 선택이었죠. 그리고 인간의 몸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어요.”

- 장애를 가진 인간의 몸에 대한 깨달음인가요?

“장애인 비장애인 둘 다죠. 비장애인에게 휠체어는 이동의 제한이나 자유의 부재 등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휠체어를 탄 입장에선 휠체어가 정반대의 의미를 가집니다. 휠체어가 있어야 내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거죠. 인간의 몸이란 무엇인가요? 자기 몸이라고 모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장애인도 심장이나 혈액의 움직임 등은 모두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있어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이걸 가장 가까이서 느낍니다. 어떤 장애는 자신도 모르게 팔다리가 움직이기도 하죠. 저 같은 경우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고요. 그래서 휠체어를 타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는 2002년 국내에 휠체어 댄스스포츠가 처음 도입될 당시 한국 최초의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로 활동하며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6년 동안 휠체어 댄스스포츠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4년 연속 아시아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가장 잘 나가는’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였던 김용우 무용가는 2009년 돌연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휠체어무용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케이휠 댄스 프로젝트' 연습 현장에서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용우 무용가. 왼쪽부터 고아라(34) 무용가, 김용우(50) 예술감독, 이동우(31) 무용가.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케이휠 댄스 프로젝트' 연습 현장에서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용우 무용가. 왼쪽부터 고아라(34) 무용가, 김용우(50) 예술감독, 이동우(31) 무용가.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 미래가 보장된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휠체어무용가의 길을 걷게 된 이유가 뭔가요?

“2008년 국내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내한 공연한 ‘칸두코 댄스 컴퍼니’라는 영국 휠체어무용단의 공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휠체어 댄스스포츠는 1분 30초라는 제한된 시간에 다이내믹한 기술을 선보여야 하는데요. 반면 휠체어무용은 시간제한 없이 무대에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많은 다른 무용수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휠체어무용으로 표현한 시(詩)·서(畫)·악(樂)


김용우 무용가는 2009년 이후 휠체어무용가로 활동하며 프로젝트 무대를 선보였다. 이후 아내인 이소민(42) 무용가와 함께 2018년 1월 ‘케이휠 댄스 프로젝트’라는 장애인 무용단을 창단했다. ‘케이휠 댄스 프로젝트’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과 절단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장애인 무용가들과 비장애인 무용가들이 소속돼 함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김완혁(32) 무용가가 무대 연습을 하고 있다. 절단장애를 가진 김완혁 무용가는 비보이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김완혁(32) 무용가가 무대 연습을 하고 있다. 절단장애를 가진 김완혁 무용가는 비보이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김용우 무용가의 대표 연출작품은 △춤추는 詩(2015) △춤추는 畫 - 순간을 흐르는 몸(2020) △춤추는 樂 - 바람소리(2021) 등이다. 2015년 작품 ‘춤추는 詩’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등이 쓴 시(詩)의 내용을 무대로 구성해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인 소외와 고뇌를 이야기했다. 

지난해 공개한 작품 ‘춤추는 畫 - 순간을 흐르는 몸’은 절단장애를 가진 수묵크로키 대가 ‘석창우 화백’과 함께 화폭에 순간을 옮기는 수묵크로키와 재현할 수 없는 무용의 정반합으로 삶의 나아감을 표현했다.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피아노병창 창시자 ‘최준’과 콜라보로 진행하는 ‘춤추는 樂 - 바람소리’는 오는 8월 21일 온라인으로 관객을 찾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부득이하게 비대면 공연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8월 21일 온라인 공개되는 '춤추는 樂 - 바람소리' 무대 연습을 하고 있는 '케이휠 댄스 프로젝트' 무용가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8월 21일 온라인 공개되는 '춤추는 樂 - 바람소리' 무대 연습을 하고 있는 '케이휠 댄스 프로젝트' 무용가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 모든 대표 작춤에 ‘춤추는...’이 붙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춤, 그러니까 무용은 다시 재현할 수 없어요. 단순한 손짓 하나도 다시 똑같이 할 수 없죠. 같은 힘과 같은 속도, 같은 각도로 움직일 수 없어요. 비슷하게 보여도 아주 미묘하게 다르죠. 시와 그림과 음악으로 그런 춤의 재현 불가능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시와 그림과 악보 모두 순간을 붙잡아 기록해두고선 다시 재현하려고 하잖아요? 그 재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재현 불가능한 춤과 무용으로 표현해보는 거예요. 재밌죠. (웃음)”
 


첫눈에 반한 아내와 ‘케이휠 댄스 프로젝트’ 동료들이 큰 힘


김용우 무용가는 지금의 아내 이소민 씨를 2011년 ‘빛소리 친구들’이란 장애인 무용단의 작품 활동 중에 만났다. 당시 이소민 씨는 비장애인 무용가로 콜라보를 하기 위해 ‘빛소리 친구들’ 무용단을 찾았다. 김용우 무용가는 이소민 씨가 무용하는 모습에 첫눈에 반해 끈질긴 구애 끝에 석 달 만에 정식으로 사귀게 됐다고 말했다. 김용우 무용가는 아내 이소민 무용가를 자신의 영원한 뮤즈라고 표현했다.

아내 이소민 무용가(왼쪽)는 김용우 무용가의 영원한 뮤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아내 이소민 무용가(왼쪽)는 김용우 무용가의 영원한 뮤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 지천명의 나이가 되셨는데,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요.

“아내의 존재죠. 지금 아내를 2011년 6월에 만났어요. 저는 장애인 휠체어무용가로, 아내는 비장애인 무용가로...콜라보 작품이었습니다. 첫눈에 반해서 3개월 만에 고백하고 사귀었죠. 저희 만남과 결혼에 아내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장인어른이 아내에게 그럼 1년만 만나보고 그래도 제가 좋으면 결혼하라고 하셨죠. 콩깍지가 벗겨지길 기다리신 거죠. 그런데 1년 뒤에도 여전히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습니다. 삶도, 예술도, 일기일회, 순간을 잡는 건데, 저는 제 아내 이소민을 잡았죠. (웃음)”

왼쪽부터 고아라(34) 무용가, 김문희(29) 무용가, 이소민(42) 안무, 김용우(50) 예술감독, 이동우(31) 무용가, 송효영(29) 무용가, 김완혁(32) 무용가, 이동원(44) 연출.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왼쪽부터 고아라(34) 무용가, 김문희(29) 무용가, 이소민(42) 안무, 김용우(50) 예술감독, 이동우(31) 무용가, 송효영(29) 무용가, 김완혁(32) 무용가, 이동원(44) 연출.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아내와 함께 창단한 ‘케이휠 댄스 프로젝트’ 동료들도 김용우 무용가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케이휠 댄스 프로젝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무용수 10여 명이 함께 무대를 준비하며 한국의 ‘칸두코 댄스 컴퍼니’로의 도약을 준비하는 중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작품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문화예술계 전반이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데요. 문화예술계 지원 정책 등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극장을 구하는 것부터 힘들고요. 관객을 모으는 것도 어렵죠. 대면 현장 공연이냐, 비대면 온라인 공연이냐를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번 8월 21일 공개하는 ‘춤추는 樂 - 바람소리’도 고민 끝에 비대면 온라인 무대로 진행하기로 했어요. 예년에 40번 정도 무대를 한다고 하면, 코로나 이후엔 온라인 포함해 20번 정도로 절반으로 줄었어요. 수입이 줄어들어 버티기 힘든 무용가들이 많습니다. 문화예술계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 정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김용우 휠체어무용가 약력
2002년 한국 최초의 휠체어댄스스포츠 선수
2004년 ~ 2009년 휠체어댄스스포츠  국가대표
2005~2008년 한국. 홍콩. 일본. 대만.
휠체어댄스스포츠 4년 연속 아시아대회 우승
2006~2008년 휠체어댄스스포츠 세계선수권 결승진출 6위. 4위.
제10회 대한민국 장애인 문화예술대상 “대상 대통령상” 수상
제8회 자랑스런 한국 장애인상 수상
도전 한국인 운동본부 한국판 기네스 인증 “대한민국최고기록 인증”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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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댄스스포츠 연맹 “공로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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