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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창궐의 시대에 여행의 갈 길을 찾고 있는 배낭여행 개척자, 여행 기획자, 여행 작가 지일환씨

“마스크 없이 여행할 날 꿈꿔요” 여행업 30년차 지일환씨의 바람

2021. 12. 15 by 강대호 기자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해외로 나가기 힘든 시절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겨울 지나면 조금은 풀릴 듯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염병은 새로운 변종으로 세상을 다시 틀어막고 있다. 세계화가 화두인 시절에 인류는 강제로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3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나 해외로 나갈 수 없었다. 회사의 업무나 정부의 공무로 출장을 가거나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은 유학생만 출국할 수 있었다. 그래서 《김찬삼의 세계여행》 같은 해외 문물을 알려주는 책이 인기를 끌었다.

1989년에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후에도 한동안 해외여행은 대중화되지 못했다. 경제적 여건뿐 아니라 정보의 한계 때문에 사람들에게 해외여행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장벽이었다.

지일환씨는 그런 시절에 해외 배낭여행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고 여행안내 서적을 펴냈다.

체코 프라하의 드보르작 무덤 앞. 지일환씨는 냉전 시대가 끝날 즈음 동유럽을 여행한 거의 최초의 한국 민간인이다. (사진 : 지일환 제공)
체코 프라하의 드보르작 무덤 앞. 지일환씨는 냉전 시대가 끝날 즈음 동유럽을 여행한 거의 최초의 한국 민간인이다. (사진 : 지일환 제공)

호기심 많은 청년 배낭여행을 떠나다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한 지일환씨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게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는 중국어뿐 아니라 일본어와 영어로 된 책들을 읽으며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났다고. 

“군에서 전역하고 1990년 1월에 일본으로 배낭여행을 갔습니다. 곳곳을 돌아다녔죠. 3월에는 필리핀으로 갔다가 다시 태국으로 가서 여러 곳을 여행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에 정보가 올라오는 시절이 아니니까 해외에서 발행한 여행안내 책자 등을 참고했죠.”

해외여행이 자유로웠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인은 여행사가 인솔하는 단체 여행을 따라다니는 수준이었다. 사실 여행업은 정보의 비대칭성 덕분에 성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하고 코스와 일정을 짜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일환씨는 정보의 한계를 몸으로 부닥치며 미지의 세계를 자기의 세계로 만들고 싶었다고.

“일본과 동남아를 다녀보니 그동안 좁은 세상에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좀 더 멀리 가고 싶어졌죠. 마침 여행지에서 만난 배낭여행자들로부터 들은 정보들이 큰 자극과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리저리 발품 팔아 여러 국가의 도시를 스톱오버(stopover)하는 1년짜리 항공권을 62만원에 구했죠.”

파키스탄 항공이라는 당시로써는 생소한 나라의 항공사였지만 경유지에서 머물며 여행할 수 있고 기한 내 돌아오기만 되는 장점이 있었다. 당시 그가 선택한 코스는 다음과 같다.

태국의 방콕에서 출발해 파키스탄의 카라치를 거쳐 영국의 런던, 그리스의 아테네, 다시 카라치, 방콕, 마닐라, 도쿄, 그리고 서울에 도착하는 1년간의 여정이었다. 

“1990년 7월에 파키스탄 항공을 타고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문학작품과 음악작품으로 알려진 곳들을 찾아다녔죠. 당시 냉전이 끝나던 시기라 동유럽 국가도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 정보는 현지 도시에서 만든 자료도 참고했지만 외국 출판사가 펴낸 여행안내 책자들도 활용했죠.”

 

지일환씨가 쓴 '세계를 간다 유럽 100배 즐기기' 초판본 표지. (사진: 지일환 제공)
지일환씨가 쓴 '세계를 간다 유럽 100배 즐기기' 초판본 표지. (사진: 지일환 제공)

배낭여행 개척자, 후배들에게 경험을 전수하다

30년 전인 1991년만 해도 해외여행은 아무나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배낭여행을 1년이나 했다니 화제가 되었다. 지일환씨는 언론에도 소개가 되었고 배낭여행을 안내하는 여러 자리에도 초청되었다.

“1992년에 ‘세계로 가는 기차’라는 동아리에서 회장을 맡았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배낭여행 설명회를 개최했죠. 대형 여행사와는 배낭여행 프로그램을 제휴했고요. 아마도 제가 우리나라 배낭여행 인솔자 1호일 겁니다.”

배낭여행과 패키지여행이 다른 점은 여행 코스와 일정, 교통과 숙박 등을 모두 자기가 결정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배낭여행을 어렵게 만드는 점이었다. 그래서 당시 여행사들은 항공과 숙박만 제공하고 나머지 일정은 여행자들이 짜는 배낭여행 상품을 만들었다. 이 배낭여행자들을 지일환씨가 인솔하기도 했다.

“한 번에 수십 명이 출발했습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유럽을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선배의 마음으로 인솔했습니다. 여행안내 책자에 나온 정보만 알려주는 게 아닌 문학작품이나 음악작품과 연결해서 여행지를 권유했죠.”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여행안내 서적을 펴낼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 우리나라에도 여행안내 책자들이 여러 종류 있었다. 다만 해외 출판사가 판권을 가진 책들을 번역한 것들이었다. 

“외국인이 쓴 책들은 그들의 시각으로 쓴 거죠. 여행지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인 여행자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담은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숙소나 음식은 일본인이나 미국인이 좋아하는 그것과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1997년에 지일환씨는 지금도 베스트셀러인 여행안내 시리즈의 작가로 참여한다. 판본을 새로이 하며 지씨가 참여한 판본은 절판이 되었지만 이후에 여행 관련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고.

“책에 정확한 정보를 담으려고도 했지만 여행지가 가진 역사적 가치나 인문학적 배경도 함께 담아보려고 했습니다. 물론 인증샷도 기억에 오래 남겠지만 그곳이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혹은 어떤 작품에 무슨 배경으로 쓰였는지를 함께 기억한다면 더 의미 있는 여행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상하이 임시정부. 지일환씨는 독립군 여정을 따라가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사진: 지일환 제공)
상하이 임시정부. 지일환씨는 독립군 여정을 따라가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사진: 지일환 제공)

차별된 추억을 선물하고 싶은데

지일환씨는 대학 졸업 후 쭉 여행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배낭여행 기획자로, 혹은 여행작가로, 때로는 대형 여행사의 직원으로도 일했다. 그 세월을 합치면 약 30년이다.

지난 수년간은 패키지여행과는 다른 테마로 떠나는 여행을 기획해 여행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코로나19전까지는.

“여행업계 모두가 느끼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다면 기획했던 저술 작업을 진행할 걸 그랬습니다. 혹시 다음 달이면 풀리겠지, 혹시나 이 계절이 지나면 풀리겠지 하다가 2년이 흘렀습니다.”

사실 기자는 지난 11월 초에 지일환씨와 1차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당시 그에게는 이번 겨울 지나고 봄이 오면 펼칠 계획이 많았다. 여행업계 분위기도 내년 설쯤이면 뭔가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바라며 일들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다고.

그런데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했고 오미크론 공포까지 닥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주에 진행한 인터뷰 분위기도 많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불확실성이 더 커졌습니다. 준비하던 것들은 일단 보류했고요. 이 시점에서는 감염병으로 인한 통제 상황이 더욱 길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일을 준비해야겠죠. 물론 그것도 불확실하지만요.”

지일환씨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구축하고 싶다고 했다. 여기서 콘텐츠의 의미는 그의 경험이 녹여진 무엇을 의미한다. 기획했던 저술 작업이 될 수도 있고 이 시대를 반영한 여행 상품이 될 수도 있다. 그는 특히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 주목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외국인들이 찾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을 수용하는 프로그램들이 다양해지고 발전했지만 더욱 다양해지고 발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유럽 도시들을 여행할 때 안내 책자나 도시가 제공한 정보보다는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느꼈듯이 말이죠.” 

지난 2년 여행업계는 팬데믹이 물러간 후의 세상을 준비했다면 어쩌면 지금부터는 팬데믹이 계속될 수도 있는 세상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지일환씨는 전망했다.

그는 이처럼 차단된 세상 덕분에 여행에 대한 열망은 더 커질 수도 있다고도 보았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버티는 건지도 모른다고도 덧붙였다. 여행자나 여행업자나. 

“팬데믹으로 단절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여행을 꿈꾸는 것까지 그만둔다면 더욱 단절된 세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꿈이나 상상에서라도 여행을 즐기길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진짜로 세상으로 나갈 날이 오겠지요.”

마스크 없이 비행기에 오를 날들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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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재 2021-12-16 21:05:15
첫째 직장에서 작가님이 기획한 배낭여행 일정과 상품을 판매했었습니다. 그때 기억이 새롭습니다^^ 늘 작가님 존경합니다!
이은영 2021-12-16 20:19:30
제게 굉장히 의미있는 기억으로 자리한 여행을 인솔해주셨던 선생님이시네요! 한달간 유럽을 누비며 마주했던 모든 추억이 덕분에 다채롭고 풍요롭게 가꿔졌습니다! 감사해요^^
최정욱 2021-12-16 14:08:2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