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인권

김기백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활동가 인터뷰 지난 총선부터 발달장애인 홀로 기표소 들어가 공적 조력인 배치, 그림 투표용지 도입 등 촉구 스위스 등 해외서는 알기 쉬운 선거자료 배포

[인터뷰] 공보물부터 투표지까지...발달장애인에겐 너무 먼 ‘풀뿌리 민주주의’

2022. 05. 30 by 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참정권 문제는 늘 되풀이되는 거 같습니다. 처음에는 귀족들만 투표를 할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평민들도 투표하게 됐습니다. 남성에게만 부여했던 투표권은 여성에게도 부여됐습니다. 지금은 장애인도 투표를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지난 24일 경기 과천의 한 카페에서 김기백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가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24일 경기 과천의 한 카페에서 김기백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가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2022년은 선거의 해라고 명명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지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내달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예정됐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만 18세 이상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번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장애계에서는 발달장애인 참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채 지방선거가 치러질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단체 한국피플퍼스트는 지난 24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앞에서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제대로 보장하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는 발달장애인 유권자들과 발달장애인 자녀들 둔 부모님 등 수십 명이 모여 중선관위를 향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에는 노태악 위원장에 항의 서안을 전달했다.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뉴스포스트>는 6·1 지방선거 앞두고 장애인 참정권 침해 문제와 보장 방법 등을 알아보기 위해 기자회견이 끝난 후 김기백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와 과천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활동가는 “선관위는 ‘공적 조력인’을 배치해달라는 장애계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대리투표 위험성이 있다며 투표보조 대상에서 발달장애인을 제외시켰다”고 주장했다.

지난 24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한국피플퍼스트 등 발달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촉구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 24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한국피플퍼스트 등 발달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촉구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6년 전보다 후퇴한 발달장애인 참정권

김 활동가에 따르면 선관위는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선거 매뉴얼에 적시된 투표 보조 대상에 ‘지적·자폐성 장애’를 포함시켰다. 기존에는 팔이나 다리, 눈 등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만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었다. 장애계는 발달장애인 역시 투표보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고, 2016년이 돼서야 발달장애인도 투표 시 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를 부모나 활동지원사 등 민간인이 맡게 되면서 대리투표 위험성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장애계는 대리투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선관위가 지정한 ‘공적 조력인’이 투표소에 배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중선관위는 공적 조력인을 배치하는 게 아니라, 투표 보조 대상자에 발달장애인을 제외시켰다. 대리투표 위험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체에 특별한 장애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부모나 활동지원사의 보조라도 받았던 2016년보다 발달장애인 참정권이 후퇴한 것이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 등이 발달장애인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도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은 제대로 투표보조를 받지 못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장애인 단체들은 발달장애인의 지방선거 참여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선관위에 촉구 중이다.

김 활동가는 “활동지원사-공적조력인, 공적조력인-공적조력인 방식으로 발달장애인 유권자와 기표소에 총 3명이 들어가는 게 좋다”며 “낯선 사람과 단 둘이 있을 시 극도로 긴장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있는데, 3명이 들어가면 긴장이 덜할 거 같다. 또한 대리투표 방지를 위해 2명 이상이 들어가야 견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선거, 발달장애인만 어려워하는 게 아냐

김 활동가에 따르면 각 정당 후보별 선거공보물에서 기표소에서 나눠주는 투표용지까지 발달장애인에게는 어느 하나 식별하기 쉽지 않다. 김 활동가는 “투표용지의 글자가 너무 작아 시각장애가 없어도 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기표하는 칸 역시 너무 작아서 찍기가 불편하다”며 “인지능력이 없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는 후보자 사진이나 정당 색, 로고 없이 글자만 보고는 찍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장애계가 주장하는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방법에는 대표적으로 그림 투표용지 도입이 있다.  그림 투표용지는 숫자와 글자 옆에 후보자 사진과 정당 로고, 정당색 등이 있는 투표용지를 말한다. A4용지 사이즈 정도로 성인 여성 손바닥 너비인 현행 투표용지보다 크고 넓다. 김 활동가는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글을 보지 못하는 분들이나 노약자 분들, 한국에 처음 와서 글을 모르는 이주민들이나 이주민 2세 등에게도 그림 투표용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0일 제42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장애인 인권 의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중에는 그림 투표용지 도입 관련 내용도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달 20일 제42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장애인 인권 의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중에는 그림 투표용지 도입 관련 내용도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그림 투표용지 도입 외에도 후보자들과 각 정당이 선거 운동 기간 배포하는 공보물도 바꿔야 한다. 이를 ‘알기 쉬운 선거자료’라고 말한다. 공보물에 나오는 단어들을 발달장애인 등 교육약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재구성하는 방법이 있다. 실제로 스위스 등 선진국에서는 국가 기관 차원에서 알기 쉬운 선거자료를 배포하고 있다.

김 활동가는 모의투표 제도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피플퍼스트성북센터에서는 이달 초 40여 명의 발달장애인 유권자를 대상으로 모의투표를 진행한 바 있다. 지방선거의 경우 투표용지가 많아 상당수가 모의투표에서도 헤맸다는 게 김 활동가의 설명이다. 그는 “선거 교육을 받아 본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이 많이 없다”며 “모의투표를 통해 발달장애인들이 선거를 배울 수 있다”고 전했다.

풀뿌리 민주주의, 아직 멀었나

발달장애인 참정권 실현을 방법을 요약하자면 ▲ 그림 투표용지 ▲ 알기 쉬운 선거자료 배포 ▲ 공적 조력인 배치 ▲ 모의투표 제도 시행 등 크게 4가지다. 하지만 6·1 지방선거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제대로 이뤄진 것은 거의 없었다. 김 활동가는 선관위뿐만 아니라 국회는 물론 각 정당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활동가는 “공직선거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림 투표용지 공적조력인 배치는 행정안전부 등 관련 정부 부처의 힘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각 정당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알기 쉬운 선거공보는 각 정당의 의지로 쉽게 바꿀 수 있다”며 “우리는 (지난 대선 기간) 각 정당에 알기 쉬운 선거자료를 요구한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받아들였지만, 국민의힘은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공직선거 후보자 및 정당은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현실에서 지켜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김 활동가는 절망하지 않고 발달장애인 참정권 실현을 위해 움직인다. 마지막으로 그는 “참정권 문제는 계속 되풀이되는 거 같다. 처음에는 귀족들만 투표하다가 노동자도 할 수 있게 됐다. 남성에게만 부여됐던 투표권은 여성도 가능하게 됐다”며 “지금은 발달장애인의 참정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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