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 인터뷰
폐지 시중가보다 5~6배로 매입
캔버스 작품 등으로 재활용 판매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폐지 수거 어르신들은 본인 일에 자부심을 갖고 계세요. 내가 폐지를 수거하니까 지역이 깨끗해지고, 자원도 재활용되는 거라고. 그분들의 생각을 우리가 인정해 드리는 게 필요해요. 음료 한잔 드리면서 ‘수고하세요. 어르신 덕분에 환경이 좋아지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어떨까요”

지난달 30일 인천 부평 소재 러블리페이퍼 사무실에서 기우진 대표가 폐자원을 활용한 캔버스 아트를 들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달 30일 인천 부평 소재 러블리페이퍼 사무실에서 기우진 대표가 폐자원을 활용한 캔버스 아트를 들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대한민국은 노인이 고달픈 나라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지난 2020년 기준 3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높다. 동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폐지 수거 노인은 세계 최악의 노인 빈곤 국가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구체적인 통계는 없지만, 최소 1만 5천 명 이상이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추정치도 나온다.

폐지 수거의 노동 강도는 상상 이상이다. 꼭두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 종일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다닌다.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무거운 리어카 안을 꽉 채워야 한다. 폐지의 kg당 가격이 고작 120~130원 남짓이기 때문이다.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가난한 노인들이 저임금 중노동에 시달리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사회적 기업 ‘러블리페이퍼’는 폐지 수거 어르신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7년 5월 설립됐다. 폐박스를 시중가보다 5~6배 이상 높은 가격으로 매입하고, 사들인 폐자원을 재활용해 캔버스 작품 등으로 재탄생시켜 판매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인천 부평구 소재 러블리페이퍼 사무실에서 만난 기우진 대표는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어르신은 현재 세 분, 저희에게 폐지를 파시는 분은 여섯 분”이라며 “점점 고용 인원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인천 부평 소재 러블리페이퍼 사무실에 폐자원을 활용한 캔버스 아트가 정리돼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달 30일 인천 부평 소재 러블리페이퍼 사무실에 폐자원을 활용한 캔버스 아트가 정리돼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러블리페이퍼 설립 계기가 궁금하다. 특별히 폐지 수거 어르신에 집중한 이유가 무엇인가.

제가 20대 때 결혼을 좀 일찍 했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입던 옷이나 공부하던 책을 가져다 팔기도 했다. 그러다가 30대 초반에 대안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삶에 안정기가 찾아왔다. 20대 때는 치열하게 나 자신을 위해 살아왔지만, 30대 때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이웃은 누구이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 등이다.

지역사회에서 폐지 수거 어르신들을 마주하면 문제집과 전공서적을 고물로 팔던 제 20대 때가 생각났다. 저는 어려운 시기에 잠깐 폐품을 팔았던 것이지만, 어르신들은 꾸준히 하시는 일이다. 어르신들도 분명 돈이 필요해서 하시는 거겠지만, 폐지 수거가 매일 하기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하실까 의문이 들었다. 이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오게 된 거다.

-러블리페이퍼에서는 폐지 수거 어르신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 근무하는 어르신들의 반응은 어떤가.

하루는 어르신께 “러블리페이퍼에 와서 일하면서 달라진 게 뭐예요”라고 여쭤봤다. 그러자 어르신께서 “눈을 뜨니 출근할 곳이 있어 좋다.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일해서 좋고 설렌다”고 말씀하셨다. 대답을 듣고 머리 한 대 딱 맞은 기분이었다. 역시 저는 세속적이었다. (웃음)

제가 생각하는 ‘모범 답안’은 금전적인 이유였다. 러블리페이퍼는 다른 곳보다 폐지 비용을 5.4배 더 많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금전적 여유보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걸 더 좋아했다. 그 이후로 다른 어르신들을 고용하려고 할 땐 “저희가 돈을 더 드린다”라는 말 대신 “우리와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다”고 하면서 접근한다.

-폐지를 시중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는데, 수익 면에서 어려움은 없나.

많은 기업들은 제조 원가를 낮추기 위해 고민하지만, 저희는 반대로 제조 원가를 어떻게 하면 높일지 고민한다. 폐지의 매입 가격을 어떻게 높일지 말이다. 폐지 수거 노인들은 현재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폐박스를 팔고 있다. 저희는 그 가격이 그분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아니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폐지 가격을 낮춰서 수익을 창출하는 게 아니라, 매입한 폐지를 어떻게 하면 더 큰 부가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재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처음에는 폐박스로 캔버스를 만들고, 아트를 만들어서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한 가지 비즈니스 모델만 있었다. 지금은 이것을 DIY 키트로도 만들었다. 기업의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과 학교 교육, 시민 교육 등과 연계해 키트를 판매하니 수익이 좋아졌다. 이제는 쌀 포대를 수거해서 종이 가죽을 만드는 작업도 하고 있다. 업사이클 제품과 일자리를 동시에 늘려가는 게 저희한테는 또 하나의 중요한 수익 창출 모델이다.

종이 쌀 포대를 재활용한 가방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종이 쌀 포대를 재활용한 가방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을 상대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어떤 내용인가.

환경과 사람을 살리는 ‘새활용(업사이클, Upcycle)’이 가장 대표적인 교육 내용이다. 버려지는 폐자원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살린다는 것이다. 러블리페이퍼가 업사이클하는 목적은 단순히 폐자원을 다시 한번 사용한다는 걸 떠나서 어르신들의 삶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꼭두새벽부터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담아 홀로 외롭게 일하던 어르신이 우리와 함께 즐겁게 일하게 된 변화를 말이다.

아울러 폐지 수거 어르신의 활동 자체를 재해석한다. 보통 폐지 수거 어르신에 대해서 ‘가난하다’, ‘불쌍하다’, ‘안쓰럽다’ 등의 반응이 나온다. 그분들이 하는 폐지 수거 활동에 대한 진정한 의미는 부여하지 못한 채 말이다. 학생들에게 폐지 수거 어르신들의 활동을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인 관점에서 가르친다.

폐지 수거 어르신들의 활동으로 지역 사회가 깨끗해진다. 이들이 1년에 9톤 정도의 폐지를 수집하는데, 이를 나무로 환산하면 80그루 정도다. 폐지 수거 어르신들 덕분에 종이 회수율, 재활용률이 높아진다. OECD 가입 국가 중 우리나라의 재활용률은 2위로, 이분들의 공이 크다. 이분들이 없으면 지방자치단체는 공공 예산을 들여 폐기물을 수거해야 한다. 환경 보호뿐만 아니라 절세 역할도 하고 있다. 폐지 수거 어르신은 단순히 빈곤 노인이 아니라 ‘자원 재생 활동가’다. 자원 재생 활동가들을 어떻게 지원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교육하고 있다.

-자원 재생 활동가를 위한 지원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2019년에는 재활용품 수거 노인 지원 법률안 초안이 나왔고, 러블리페이퍼가 주관해 국회에서 공청회도 열었다.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폐지 수거 어르신 상당수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나 차상위 계층인데, 폐지 수거를 이유로 지원하면 중복 수혜의 문제가 생긴다는 게 반대론의 주장이다. 

저희는 폐지 수거 어르신 지원법이 기존의 복지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기존은 경제적 결핍을 지원하는 법이고, 우리는 어르신들의 활동 결과에 대해 지원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폐지 수거 활동이 환경과 지역 사회에 기여하기 때문에 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폐지 가격의 최저가를 보상하는 ‘폐지 매입 보상제’나 폐지 수거 어르신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등록제’ 등도 포함된 법률안이다. 지금은 거의 폐기 처분된 상황이다.

지난달 30일 인천 부평 소재 러블리페이퍼 사무실에서 기우진 대표가 폐자원을 재활용한 캔버스 아트를 보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달 30일 인천 부평 소재 러블리페이퍼 사무실에서 기우진 대표가 폐자원을 재활용한 캔버스 아트를 보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친환경적인 사업건을 많이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종이 쌀포대로 종이 가죽을 만드는 거다. 또 하나는 우유 팩 같은 종이팩 수거를 어르신들을 통해 전담하는 방안이다. 어르신들이 만약 폐박스가 아닌 종이팩을 수거하면 노동의 강도는 훨씬 줄어드는 반면 부가가치는 높을 것이다. 종이팩은 폐박스보다 훨씬 가볍지만 kg당 가격은 2.5배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유팩을 수거할 수 있는 기반은 없다. 우리가 그 수거 체계를 만들 것이다.

아울러 내년에는 인천도시공사에서 위탁받은 ‘새활용 마을 작업소’가 준공된다. 어르신들도 이곳에 오셔서 일할 수 있고, 친환경 카페나 제로웨이트 숍 등이 운영될 예정이다. 더 나아가서는 새활용 전문 자원센터를 열어 근로 능력이 없거나, 적은 어르신들을 고용하면 어떨까 계획 중이다. 3~4년 단위 중장기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우리 주변에 폐지 수거 어르신이 너무 많다. 폐지 수거 어르신들을 위한 사회적 기업인 러블리페이퍼도 있지만,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저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폐지 수거 어르신들께 직접 전달해주면 어떨까 싶다. 음료 한병 나눠드리면서 ‘수고하세요’라고 한마디 해주시면 그분들은 정말 좋아하실 거다.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어르신들도 많다. 폐지를 수거함으로써 지역이 깨끗해지고, 자원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분들의 생각을 인정해드리자는 것이다. ‘수고하세요. 어르신 덕분에 좋아지고 있어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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