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유턴, 신호위반, 인도주행까지...“안전운전 필요성 알아야”
“고층 아파트까지도 들려”...오토바이 굉음에 자다가 화들짝
사회의 안전 위해 ‘정부·배달업계·노동자’ 등 머리 맞대야
배달음식은 좋아하지만 라이더는 싫다. 빠르고 신속한 배달은 좋지만 도로와 인도를 넘나드는 오토바이는 적대감이 든다. 배달대행업체가 우후죽순 생기며, 집 앞까지 오토바이에 점령당한 시민과 거리가 일터인 라이더와의 간극이 너무 크게 벌어진 모습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편리가 이 같은 곡예 운전의 대가라는 것을 부정할 순 없을 것. 위험천만한 운전을 야기하는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고 라이더만을 질타한다면 배달시장은 노동자들의 핏빛 죽음으로 더욱 붉게 물들어 갈 것이다. 뉴스포스트는 한층 성숙하고 안전한 배달문화를 만들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 주부 전지민(32·서울 강서구) 씨는 최근 5살 딸과 아파트 단지 내 인도를 걷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보고 놀랐다. 배달 음식 증가로 단지 내 오토바이가 많이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인도까지 주행하는 모습을 보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최근 배달 문화가 확산되며 거리에 오토바이도 더 많아졌다. 교차로 앞쪽마다 줄 서 있는 오토바이 부대를 볼 때마다 마치 동남아시아에 온 기분도 든다. 하지만 오토바이 주행량의 증가만큼 사회의 안전 문화는 좀처럼 정착되지 않고 있다. 시민들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오토바이 피하는 보행자 ‘주객전도’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남의 사람이 많이 몰리는 인도에 배달용 오토바이들이 미끄러지듯 줄지어 진입했다.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방어운전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오히려 시민들이 오토바이를 피해 가기 바빴다.
실제로 이륜차(오토바이) 법규 위반에 대한 공익신고 중 보도 통행이 가장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해 9월 발표한 2020년 5~7월 교통안전 공익제보단 실적(신고내용별) 자료를 보면 보도 통행이 1,645건(21.0%)으로 가장 많았다. 신호위반은 1,493건(19.1%), 안전모 등 인명보호장구 미착용 1,144건(14.6%), 중앙선 침범 414건(5.3%) 등이 뒤를 이었다.
배달 오토바이인 이륜차는 도로교통법상 차에 해당하기 때문에 운전자는 차도와 보도가 분리된 도로에서는 차도로 통행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도로교통법 제13조 제1항에 따라 범칙금 4만 원 및 벌점 10점이 부과된다.
특히 이륜차가 인도 주행 중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12대 중과실 보도침범사고에 해당해,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더라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라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단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시민들이 대부분이다. 대학생 정진식(23) 씨는 “오토바이가 인도로 다니고 심지어는 주차돼 있어 불가피하게 차도를 통해 지나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단속은 본 적이 없다”며 “불법 행위에 대한 단속 횟수를 늘리고 과태료를 올리는 등 보행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운전자들에게도 차량 틈새로 끼어드는 오토바이는 골칫거리다. 직장인 김민정 (30) 씨는 “밤 운전 시 오토바이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데, 눈 깜짝할 사이 파고들어 놀란 경험이 많다”며 “명백한 신호위반을 하면서 휴대폰을 보는 경우도 봤다. 문제는 위험한 곡예운전으로 인해 도로에 있는 모두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다수의 운전자들이 오토바이와 사고가 날까 두려워한다. 상대적으로 많이 다칠 수밖에 없는 라이더들이 스스로의 몸을 아끼는 마음으로 안전 운전을 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굉음 소리에 시민들 ‘분통’
오토바이 소음에 대한 불편함도 토로했다. 현재 이륜차 소음 기준치는 ‘소음‧진동 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105db(데시벨)이다. 이는 철도 소음(100db)과 맞먹는 수준으로, 일반적인 생활 소음 기준치가 65~70㏈, 공사장과 옥외 설치 등이 40~70㏈인 것을 감안하면 현행 소음 규제 기준치가 지나치게 높게 허용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8년 7월 경찰 단속에 적발된 이른바 머플러(소음기)를 개조한 오토바이 소음은 119db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투기 이륙 시 소음은 120db로 이에 맞먹는 도심 속 오토바이 소음이 상당한 수준인 것. 이런 굉음이 늦은 오후나 밤 시간대 단지 내 주행을 하면 수면에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직장인 장동수(58) 씨는 “자정이 넘어서까지 계속되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에 잠에서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고층 아파트인데도 크게 들리는 걸로 봐서는 불법으로 배기관을 개조한 것 같아 험한 말이 저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모두를 위해 사회적 논의 필요
신속하고 편리한 배달 문화가 확산한 이면에는 배달 노동자를 향한 따가운 시선이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배달 문화 확산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시민과 노동자의 안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토교통부 중심 관련 부처 합동으로 지난 2017년 9월에는 ‘이륜차 음식배달 종사자 보호를 위한 안전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또 지난 9월 2일 국토교통부는 오토바이 관리를 자동차 수준으로 대폭 강화한 내용을 담은 ‘이륜자동차 관리제도 개선방안’도 내놨다.
그렇지만 ‘콜’이 곧 돈이라는 근본적인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정부가 내놓은 제도적 장치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배달 노동자들의 도로 교통안전의식 고취는 것은 물론 정부·플랫폼 업체·소비자 등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직장인 조민수(35) 씨는 “빨리빨리의 민족이라고 해도 배달 오토바이 문제로 불편을 겪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안전한 도로 및 보행 환경을 위해 배달 시간 정상화, 즉 지금보다 더 걸린다고 하더라도 이런 방향을 추구하는 것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것이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