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세계 10위권 항공사로 도약했지만
인수 대가로 슬롯 반납·부채 개선 과제 풀어야
항공협회장 공백에 LCC포비아 대응력 약화 우려
2025 을사년을 맞이하는 국내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경제성장률 1%대의 저성장 국면 예상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인상 예고로 수출 기업엔 비상등이 켜졌다. 고환율에 따른 원자재·에너지·운임비 상승은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500대 기업이 올해 투자를 작년보다 축소할 것이란 응답은 확대할 것이란 응답의 2배를 넘어서며 연구개발(R&D)·벤처 투자 또한 크게 위축될 여지가 커졌다. 이같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기업들의 출구 전략은 어떤 것인지, 올해 주목해야 할 산업은 어떤 것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지난해 5월 코로나19 위기단계가 '경계'에서 '관심'으로 하향되면서 항공 업계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여객 수를 회복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월 '제44회 항공의날 기념식'에서 업계가 1억2000만명 여객을 완전 회복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5월에만 한국과 일본을 오간 항공 승객 수가 1000만명을 넘어서며 항공 통계 제공 이후 최다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절차도 완료됐다. 2년 간 합병 준비를 통해 내년에 완전 합병하게 되면 우리나라에서 세계 10위권의 메가 항공사가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 항공사에 반납할 슬롯(노선)이 많고, 부채와 구조조정 책임까지 떠맡게 됐다. 연말 발생한 무안공항 활주로 이탈 사고는 LCC(저비용항공사) 공포증(포비아)으로까지 번질 위험이 커졌다.
조원태 회장의 건곤일척… 세계 10위권 메가 항공사로 우뚝
아시아나항공 합병 결정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띄운 건곤일척 승부였다. 합병을 결의한 2020년 11월은 아시아나항공이 유동성 위기로 존폐 기로에 몰렸을 때다. 정몽규 회장이 이끌던 HDC현대산업개발도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사를 밝혔지만 끝내 무산됐다. HDC 관계자는 "재실사 요청을 했지만 아시아나항공 모회사인 금호산업과 채권단으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아 인수가 무산됐다"고 밝혔다. 다만 코로나19에 따른 경영환경 악화와 부채 책임 리스크가 커진 데다, 재실사 요구에 대해 채권단인 산업은행 측은 사실상 매각 포기 수순이라고 표현한 만큼 HDC가 지지부진했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은 부채비율 2291%, 자본잠식률 56%에 이를 정도로 재무구조도 악화돼 새 인수자를 찾기 쉽지 않았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을 합병할 만한 기업은 국내 플래그 캐리어인 대한항공으로 범위가 좁혀졌다. 조 회장은 항공산업 위기 극복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병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창희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항공산업 역사상 주요 인수합병은 모두 항공사 간에 이뤄졌다"며 "사실상 항공산업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 없이는 항공사를 경영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이듬해 1월 총 14개 경쟁 당국에 기업결합을 신고했고, 8부 능선이었던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의 반독점심사는 조 회장이 당국의 경쟁총국장을 직접 만나 약속 이행을 강조하면서 지난해 2월 조건부 승인을 받게 됐다. 지난달에는 미국 법무부가 합병을 최종승인하면서 기업결합을 위한 14개 필수 신고국에 대한 승인을 모두 마쳤다.
대한항공은 같은달 11일 아시아나항공 지분 63.9%를 인수하고, 신주 1억3157만8947주를 취득했다. 2020년 12월 계약금 3000억원에 이어 총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최종 편입했다. 보유 항공기 238대, 매출 21조1000억원, 통합 자산 42조8000억원으로 글로벌 순위는 세계 10위권에 올라섰다.
슬롯 반납 많고 부채 개선 과제… '승자의 저주' 위험
국내 대표 항공사 두 곳의 합병인 만큼 독과점 우려에 따른 경쟁제한 조치를 피할 수 없었다. 영국과 EU 당국은 "합병 이후에는 충분한 경쟁 기회가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했고, 미국의 경우 양 사의 미주 노선 점유율이 높아 기업결합 심사가 늦어졌다. 합병 승인을 받기 위해선 노선 일부 이관과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이 필요했다.
대한항공은 파리와 프랑크푸르트 등 4개 유럽 여객 노선의 운수권을 티웨이항공으로 이관했다.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의 7개 슬롯(공항 이착륙 횟수)도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린틱에 넘겼다. 미국은 5개 노선에서 에어프레미아가 대체 항공사로 일부 운항을 하고 있다. 일본은 7개 노선에 국적 저비용 항공사 등이 구간 운항을 요청할 경우 슬롯을 일부 양도하기로 했다. 중국에선 9개 노선의 총 49개 슬롯을 반납했다.
가장 큰 쟁점은 화물사업부 매각이었다. 여러 협상대상자와 접촉 끝에 지난해 8월 에어인천에 부채 이관 없이 4700억원으로 매각을 최종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나 노조 측은 "에어인천은 총 직원수가 170여명인 작은 화물 항공사로 불투명한 만큼 항공 화물사업까지도 대한항공의 독점으로 귀결될 우려가 높다"고 비판했다.
공정위가 마련한 시정조치도 결합 이후 10년 동안 이행해야 한다. 공정위는 당초 경쟁제한 우려가 있는 40개 노선에서 2019년 대비 ▲물가상승분 이상 항공운임 인상 금지 ▲공급 좌석수 90% 이하 축소 금지 ▲항공 마일리지의 불리한 변경 금지 등 다양한 시정조치를 부과한 바 있다. 앞서 언급한 국가에 반납한 슬롯도 시정조치 이해로 폭넓게 인정했다.
적잖은 슬롯 반납과 아시아나항공의 높은 부채로 인해 실제 가치보다 높은 비용을 치르는 '승자의 저주'에 휩싸일 수 있다. 박현정 세종대학교 호텔관광대학 교수는 "유휴인력 구조조정에서 생기는 비용감축은 단기적 흑자전환에 불과하고, 인수자금 조달을 위해 부채비율이 증가할 수 있다"며 "반납된 슬롯에서 외항사의 시장확대가 이뤄지면, 국내 항공사의 규모도 감소될 수 있어 통합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공항공사·항공협회 수장 공백… 참사로 포비아 우려까지
이런 가운데 국내 항공사와 정부 간 가교 역할을 하는 한국항공협회의 수장은 공백 상태다. 한국항공협회장과 한국공항공사장을 겸직하던 윤형중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낙하산 논란과 전임 정권 인사인 점 때문에 사퇴요구에 직면했다. 지난해 4월 사표가 수리된 이후 현재까지도 두 기관 수장은 내정되지 않고 있다.
수장 공백 사태는 장기간 이어질 위험이 크다. 정부 인사 임명에 대한 야당의 반발이 큰 데다 탄핵 이후 행정부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사 추천 권리가 있는 기획재정부는 최상목 장관이 권한대행 직을 수행하고 있는 만큼 협회장 인선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협회장 인선이 늦어질수록 지난달 29일 발생한 무안공항 활주로 이탈 참사의 업계 대응에도 영향이 예상된다. 제주항공에서 사고발생 하루 만에 7만 건에 달하는 항공권 취소가 발생하는 등 LCC 포비아까지 확산되고 있다.
제주항공 지주사인 AK홀딩스 측은 지난 29일 장영신 회장과 임직원 명의의 사과문을 통해 "소중한 생명을 잃게 한 이번 사고로 많은 분들이 겪고 계신 슬픔과 고통에 깊이 통감하고 있으며,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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