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회당 평균 제작비 31억원
글로벌 OTT 의존도 심화 우려
티빙-웨이브, 합병 추진으로 대응하지만
이해관계·주력분야 달라 어렵다는 지적도
KT스튜디오지니 IPO·'X+ U' IP 확보도 관심
2025 을사년을 맞이하는 국내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경제성장률 1%대의 저성장 국면 예상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인상 예고로 수출 기업엔 비상등이 켜졌다. 고환율에 따른 원자재·에너지·운임비 상승은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500대 기업이 올해 투자를 작년보다 축소할 것이란 응답은 확대할 것이란 응답의 2배를 넘어서며 연구개발(R&D)·벤처 투자 또한 크게 위축될 여지가 커졌다. 이같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기업들의 출구 전략은 어떤 것인지, 올해 주목해야 할 산업은 어떤 것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국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체가 <오징어 게임>과 같은 파급력 있는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OTT 특화 콘텐츠 발굴을 위해 국내 콘텐츠 기업에 255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중 장편·중단편 드라마에는 각각 140억원, 40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이 예산으로 몇 편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까?
유진희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겸임교수가 저술한 '제작비 폭등에 따른 국내 드라마 시장의 변화와 개선방안'에 따르면 2018년 이후 국내 드라마들의 회당 평균 제작비는 약 31억 원이었다. 해당 예산으로는 6회 정도의 제작비에 그치는 수준인 것이다.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제작비는 약 100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비 1000억원 이상을 투입할 수 있는 곳은 넷플릭스, 애플, 디즈니 등 글로벌 공룡 기업에 불과하다. 그나마 CN ENM의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이 작년 화제작 '눈물의 여왕' 제작에 회당 35억원, 총 560억원을 투입하며 자본력을 뽐냈다.
이런 가운데 2022년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사상 최대치인 132억 달러를 기록해 가전(80억 달러)과 전기차(98억 달러)를 상회했다. 하지만 높아진 제작비로 콘텐츠 업계의 글로벌 OTT 의존도가 심화될 것이란 전망에 국부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든다. 인수·합병(M&A) 등 국내 OTT 업체들의 대응 방안과 올해 콘텐츠 기업들의 전략을 살펴본다.
티빙-웨이브 합병 지지부진…복잡한 지분구조·자본잠식 등 발목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은 국내 OTT 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CJ ENM의 티빙과 SK스퀘어의 웨이브는 2023년 12월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사는 'OTT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걸었다. CJ ENM은 티빙 지분 48.85%, SK스퀘어는 웨이브 지분 40.5%를 보유하고 있다. 합병 법인에선 CJ ENM이 최대 주주가 되고 SK스퀘어가 2대 주주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합병은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합병 비율·기업가치 평가·콘텐츠 공급대가 등을 두고 양사 간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당초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기업결합 심사까지 완료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도 있었지만,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다행히 CJ ENM이 지난해 11월 웨이브의 전환사채(CB) 상환에 1000억원을 지원하는 등 합병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다.
다만 웨이브는 2023년 연간 803억원의 적자를 냈고, 티빙도 같은 기간 14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티빙의 2023년 말 부채비율은 47%로 건전한 편이지만 웨이브는 순자산이 자본금보다 더 적은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 누적 결손금도 4828억원에 달한다. 단순 합병으로는 재무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양사 간 합병 이슈는 넷플릭스의 국내 시장 진출 이후 본격 점화됐다. 2020년 7월 당시 유영상 SK텔레콤 MNO 사업부장(현 대표이사)은 "웨이브가 티빙과 합병하길 바란다"며 직접 티빙을 거론했다. 다만 통합 법인의 시장점유율이 30%(티빙 21%, 웨이브 13%) 이상으로 예상돼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복잡한 지배 구조 로 인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티빙은 CJ 외에도 KT스튜디오지니(13%), JC파트너스(13%) 등이, 웨이브는 방송 3사(합산 60%)를 주요 주주로 두고 있다.
티빙은 스포츠·드라마, 웨이브는 예능…협업 시너지 감소 우려
단순 합병만으로는 가입자 확보가 어려운 만큼 전략적 제휴를 통한 글로벌 콘텐츠 제작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안정상 중앙대학교 겸임교수는 "합병의 목적이 국내 시장 가입자 확보를 위해서라면 큰 의미가 없다"며 "넷플릭스와 같은 지역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거나, 양사 간 협업체계를 구축해 공동투자를 통한 IP(지적재산권)를 확보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상원 경희대학교 교수는 "실시간 스포츠 중계와 예능 위주로 차별화된 브랜드를 가져가는 것도 방법이고, 한류 확산 지역에서 FAST(광고를 보는 대가로 TV 채널을 무료로 볼 수 있는 플랫폼)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콘텐츠를 유통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어 "오리지널 콘텐츠는 외부 유통 전략을 추진하며 이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양사 간 오리지널 콘텐츠의 방향성이 달라 협업이 잘 이뤄질지는 물음표다. 티빙은 KBO(프로야구)·KBL(프로농구) 중계 등 스포츠 콘텐츠를 키우고 있지만, 웨이브는 관련 콘텐츠가 없다시피 하다. 드라마에서도 티빙은 지난해 8개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발표했지만, 웨이브는 <페이스 미> 1개만 론칭했다. 이마저도 웨이브 단독 편성이 아닌 KBS 수목드라마로 공동 편성됐다. 웨이브는 대신 <사상검증구역:더 커뮤니티> 등 오리지널 예능에 더 힘을 싣는 모양새다.
스튜디오드래곤·KT스튜디오지니·X+U 등 IP 확보 경쟁
웨이브가 드라마 제작을 축소하면서 드라마에 투자가 가능한 국내 OTT는 티빙과 쿠팡플레이로 좁혀지는 모양새다. 쿠팡은 따로 제작사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티빙은 CJ ENM의 드라마 사업이 물적분할된 스튜디오드래곤으로부터 콘텐츠를 공급받고 있다. CJ ENM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제작한 에이스토리와 KT스튜디오지니의 지분도 9% 이상 보유하고 있다.
KT는 스튜디오지니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IP를 대거 확보해 기업공개(IPO)도 추진할 방침이다. KT스튜디오지니는 올해까지 IP 라이브러리 1000개, 드라마 IP 100개를 확보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0월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 콘텐츠 2만여개 판권을 보유한 KT알파의 콘텐츠사업본부를 양도받은 것도 IP 확보를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통신업계에선 LG유플러스도 자사 OTT 'U+모바일tv'에 편성할 오리지널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2022년 10월 제작사 '스튜디오 엑스플러스유(X+U)'를 설립해 이듬해 넷플릭스에 론칭한 <하이쿠키>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프리자일>, <실버벨이 울리면>을 'U+모바일tv'에 단독 편성했다.
제작사 외에도 외부 투자를 독려해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유진희 교수는 보고서에서 "국내 드라마 시장은 중소 제작사는 물론 대형 제작사들도 제작비를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외부 투자자 참여 독려를 위해 제작비, 시청, 매출 등 '데이터 공유 시스템'을 구축해 드라마 개별 IP에 대한 가치를 확인하고 투자금액을 평가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