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통과로 주주가치 증대 기대감 커져
최대 60% 달하는 상속세, 기업 경쟁력 약화 우려
'상법 vs 상속세' 해묵은 논쟁보다 둘다 개정하는 방향 필요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상법과 상속세는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주친화 경영 과정에서 최대주주는 상속세 폭탄 맞으면 경영권이 흔들립니다. 둘 다 개정해야 균형이 맞습니다."
국내 증시가 3년6개월만에 '삼천피(코스피 3000포인트)' 시대를 다시 열어젖혔다. 지난달 코스피 지수는 13.86% 급등해 월간 기준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고, 이재명 대통령 취임일인 4일에는 2.7% 오르는 등 역대 대통령 취임일 기준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 등 국내 주식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마련된 상법 개정안도 여야 합의로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했다.
상법 개정 통과에 주주가치 증대 기대감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주주'로 확대 ▲대규모 상장사 전자주주총회 개최 의무화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변경 ▲감사위원 선출시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에서 뜨거운 감자는 '3% 룰'이었다. 종전에는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최대주주와 가족·계열사 등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각각 3%로 허용해왔다. 개정안 통과 이후 합산 3%로 변경되면서 지분 쪼개기를 통한 꼼수 의결권 행사 가능성이 낮아졌다.
A 회사가 B, C, D, E 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해당 계열사들은 A 회사 지분을 쪼개 매입한다고 가정하면, 종전에는 3% 룰을 적용 받아도 A 회사가 실질적으로 15%의 의결권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몇몇 기업들이 소액주주 의결권 무력화를 위해 이같은 꼼수를 자행했는데 이젠 벽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물론 향후 기업들이 특수관계인에 대한 모호한 정의와 해석을 빌미로 해당 규제를 회피할 가능성은 있다. 특히 우호지분은 법적 특수관계인에 해당하지 않아서 편법을 차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고, 궁극적으로 우호지분도 특수관계인처럼 간주해 의결권을 제한하자는 목소리도 나오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소액주주 의결권 무력화 등 대주주의 횡포를 규제할 수 있는 장치가 생겼고, 대주주와 회사의 이해충돌이 발생할 경우 소액주주 동의 없이 진행하지 못하게 법적 기반을 닦았다는 점에서 이번 상법 개정은 충분한 의의가 있다.
60% 상속세에 49% 배당세, 주식담보대출까지
기업 입장에선 사실 3% 룰보다 천편일률적인 상속세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상속세가 훨씬 '독소조항'이다. 현행 상속세 제도에선 30억원을 초과하는 상속분에 대해 50%의 최고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기업의 최대 주주가 가족 등 특수관계인에게 주식을 상속할 경우에는 경영권 프리미엄 명목으로 주식 평가액의 20%를 가산해 상속분의 6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일본(55%)보다 높은 최상위권으로 평가받는다.
주식이 상속될수록 세금 부담은 더욱 늘어난다. 이병철 삼성전자 선대 회장이 이건희 전 회장에게 10조원의 삼성전자 주식 10%를 물려줬다고 가정하면, 세금을 낸 뒤 이 전 회장 수중엔 4조원이 남게 되고 이는 4% 정도의 지분에 불과하다. 이재용 회장에는 1.6조원 (1.6%) 정도 밖에 남지 않게 된다. 4대, 5대가 이어지면 수중에 남는 지분은 거의 없어진다.
이 회장을 비롯한 삼성 총수 일가가 내야 하는 상속세 규모는 전체 유산의 절반이 넘는 12조원에 달한다. 이 회장은 현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공탁한 삼성물산 주식 1263만8520주를 담보 삼아 상속세를 연부연납하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관련 수사가 시작된 2017년 3월 이후 급여를 따로 받지 않아 사실상 배당금으로만 세금을 내고 있다.
배당금으로 상속세를 마련할 수도 있지만, 연간 이자·배당소득이 2000만원을 넘을 경우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돼 최고 49.5%의 세금을 내야 한다.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3465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는데, 세율 49.5%가 적용된다면 1715억원을 납부하고 1750억원만 온전히 수령할 수 있다.
상속세 부담 탓인지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전략기획담당 사장의 주식담보대출도 1년 새 2.9조원에서 5.1조원으로 76% 가까이 늘었다. 4% 금리로 따져보면 이자만 1년에 2000억원을 넘는다.
단순 '재벌 프레임' 넘어 산업 경쟁력까지 저하 우려
물적분할·유상증자·전환사채 발행 등 주주가치가 비일비재로 훼손되는 상황에서 재벌 걱정을 왜 해야 하냐는 목소리도 있다. 총수 경영을 포기하고 지분을 매각해 능력에 맞게 살면 되지 않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단순한 비용 문제를 넘어 국내 산업 경쟁력이 저하될 위험이 존재한다. 넥슨을 예로 들 수 있다. 김정주 전 넥슨 회장의 별세로 배우자인 유정현 NXC 의장을 비롯한 유족은 약 10조원 규모 재산을 상속받았다.
상속세는 약 6조원으로 추정됐는데 유족은 지주회사 NXC 지분 29.3%를 기획재정부에 물납하는 방식으로 4.7조원을 냈다. 정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해 해당 NXC 지분을 공개 매각하려 했으나 아무도 입찰하지 않아 매각이 미뤄졌다.
최근 중국 기업 텐센트가 해당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텐센트가 넥슨의 최대주주 지위를 얻게 된다면 중국에 게임 산업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실정이다. 기업가치 증대를 목표로 한 사모펀드나 외국계 투자회사로 지분이 매각되면 국내 핵심 산업이 해외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다.
기업의 연구개발(R&D) 등 장기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 감소 문제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 8단체는 개정안 통과 이후 "자본시장 활성화와 공정한 시장 여건 조성이라는 법 개정 취지에 공감하지만, 이사의 소송 방어 수단이 마련되지 못했고 투기 세력 등의 감사위원 선임 가능성이 높아져 우려가 크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해묵은 논쟁보다 개선 위한 건설적 논의 필요
재벌 프레임으로는 상속세의 본질을 꿰뚫기 어렵다. 그렇다고 상속세를 무작정 인하하기보다는 연부연납 기간과 상속공제 확대, 외국자본의 M&A 규제 강화 등 점진적인 개선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 강화된 상법 개정 안은 이르면 이달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방침이다. 향후 투기자본 폐해 방지와 경영 자율성 증대를 위한 상속세 개정도 선행돼야 한다.
두 문제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해묵은 논쟁보다 실질적 개선을 위한 건설적인 논쟁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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