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제·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 강화된 상법 개정안
"기업활동 옥죄는 규제 입법…투기자본 이사회 장악 우려"
"경영판단원칙 지키면 배임죄 처벌 적어…필요한 제도"
"지배주주와 분리된 독립이사 판단으로 배임죄 보완 가능"
[뉴스포스트=최종원 기자] 코스피 지수가 전날 종가 기준 3230선을 넘어서며 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달 코스피 지수는 13.86% 급등해 월간 기준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고, 이재명 대통령 취임일인 4일에는 2.7% 오르는 등 역대 대통령 취임일 기준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 등 국내 주식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마련된 상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주주'로 확대 ▲대규모 상장사 전자주주총회 개최 의무화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변경 ▲감사위원 선출시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강화된 상법개정안도 지난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해 특정 후보자에게 집중 투표할 수 있는 제도다.
경제8단체는 이에 "정부와 국회, 기업이 위기 극복을 위해 하나로 뭉쳐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국회가 기업활동을 옥죄는 규제 입법을 연이어 쏟아내는 것은 기업들에게 극도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사업재편 반대, 주요 자산 매각 등 해외 투기자본의 무리한 요구로 이어져 주력산업의 구조조정과 새로운 성장동력 확충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배임죄가 형사 처벌 요건에 해당해 경영 부담이 높은 환경에서, 독립이사 도입·집중투표제 등으로 경영 자율성이 더욱 침해돼 자칫 이사회가 행동주의 펀드 등 투기자본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세계 유일 배임죄로 경영 위축? 주주 보호 위한 공적 장치"
배임죄는 형법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통해 재산상 이익을 얻거나 제3자가 이익을 얻도록 해 사무 처리 위탁자나 이해관계인의 재산상 이익을 침해하는 범죄다. 한국은 특히 형법상 일반·업무상 배임죄 외에 회사법상 특별배임 규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죄 규정까지 처벌 범위가 넓은 국가로 꼽힌다.
상법 개정 과정에서 배임죄는 더욱 이슈로 떠올랐는데, 이사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되면서 배임죄 처벌 가능성이 커진 데다 외국 기업들의 한국 투자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이같은 목소리를 반영해 배임죄를 민사화하는 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오기형 의원은 "배임죄 범위가 과도하게 확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고, 대법원이 판례로써 확립한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해서도 법제화 요구가 있다"며 "이러한 요구에 대해 입법을 전제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핵심은 경영상 판단이 여러 정보에 근거해 성실하게 이뤄진 것이라면, 결과에 무관하게 해당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다. 김남근 의원은 "민사적 절차를 중심으로 해결하고, 고의성과 중대성이 명확한 경우에만 형사 책임의 제한적 부과 방향이 필요하다"며 "경영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이해관계자의 권익을 균형 있게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다만 소송 남발로 인해 경영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소송이 제기돼도 충실 의무를 저버렸다는 입증 책임이 있는 만큼 성립이 쉽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이용우 경제더하기연구소 대표(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는 "작년부터 지금까지 삼성, 현대차에서 28차례 이사회를 열었는데 이중 이사충실 의무 대상이 된 건은 4건 밖에 없었다"며 "일반적으로 M&A(인수·합병)와 유상증자는 모든 주주에게 동일한 영향을 주는 만큼 소송 대상이 되지 않는데, 이사충실 의무로 소송이 남발된다는 건 논의를 흐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경영판단원칙에 근거해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판례도 언급했다. 이 대표는 "2017년 경 김승연 한화 회장에 대해 한화 SI 업체에 일감 몰아주기를 했다는 의혹으로 2심까지 벌금형이 나왔다가 3심(대법원)에서 무죄가 나온 판례가 있는데, 경영판단원칙이라는 취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선관주의 의무와 충실의무를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판단을 했던 결과"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미국은 배임죄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선 "미국은 회사가 투자자의 신뢰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를 했을 때 사기법을 적용해 배임죄보다 엄격하게 다룬다"며 "(배임죄가) 남용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런 사항들은 개선하면 되고, 없앨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조계도 배임죄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천준범 변호사(와이즈포레스트 대표)는 "실제로는 부당내부거래에서 배임죄가 많이 성립되는데, 이는 지배주주 이익에만 부합하고 회사에는 손해를 끼치는 행위로 공정위에서 조사하고 검찰 고발로 이어져 업무상배임죄로 갈 수 밖에 없다"며 "고의가 없다, 사익 편취 목적이 아니다, 손해액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검찰 관계자도 배임죄 폐지에 대해 회의적 시선을 보냈다. 정성두 법무부 상사법무과 검사는 "특수관계인 부당지원 및 사익편취 배임죄는 주주 보호를 위한 일종의 공적 집행 장치로 기능해 시민사회에서도 필요성을 인정하는 의견이 많다"며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또는 포섭되지 않는 영업상 중요자산의 유출 행위도 배임죄로 규율하고 있는데, 이처럼 다방면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어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하고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립이사·집중투표제 도입, 지배주주 견제에 긍정적"
독립이사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이 대표는 "사외이사라는 단어에는 비회사인이 회사 일에 간섭한다는 나쁜 선입견이 자리하고 있다"며 "독립이사 제도와 감사위원 확대는 지배구조로부터 독립된 판단을 하라는 취지인 만큼 다수결, 대주주 입맛대로 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성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독립이사의 취지가 잘 통용되지 않는다면 이사충실 의무 도입 의의가 크지 않을 수 있다"며 "이사는 지배구조를 위해 행동할 수 밖에 없기에, 독립이사 기능을 강화해 독립적으로 소신대로 행동할 수 있게 하면 배임죄 보완도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중투표제도 독립이사제도 도입과 함께 거수기 이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꼽힌다. ESG 평가 기관인 서스틴베스트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사외이사 전원이 모든 이사회 안건에 찬성한 기업 비율은 전체의 95.3%에 달했다. 이사회 내 지배주주의 영향력이 이처럼 크다 보니 결국 독립성 강화 차원에서 두 제도 모두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기업의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질 것이란 주장에 대해선 "경영권 방어의 최우선은 경영을 잘하는 것이지 그 이상의 방어권은 없다"며 "행동주의 펀드가 선임한 이사가 경영 내용을 캐내 기밀을 유출할 수 있다는 건 내부자거래 금지 위반애 해당하는 위법 행위로 불법인데 이런 사항들로 호도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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