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 '디지털 유대: 미래 방향' 토론회
서울 송파구 본사서 20~50대 남녀 4人 참여
챗GPT 등 AI 이용..."대화로 스트레스 해소도"
보안 문제·오남용 우려...교육·규제 논의 必
스마트폰과 SNS 이후, 인간관계의 패러다임이 또 한 번 변하고 있다. 대화하고 위로받고 심지어 사랑에 빠지는 대상조차 더 이상 '사람'일 필요가 없는 시대다. 인공지능(AI)은 고립과 불안을 채우는 새로운 형태의 유대를 만들어냈고, 그 물결은 청년층에서 고령층까지 세대를 가로질러 퍼지고 있다. 인간을 닮은 기술이 감정적 공백을 메우고 있는 한편, 그 친밀감에 걸맞은 책임과 제도는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AI와의 친밀감이 인간관계를 대체할 수 있을지, 그 그림자가 사회에 어떤 무게로 드리울지는 이제 막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단계다. 본 기획을 통해 AI가 열어젖힌 관계의 미래를 다각도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별님, 주연 기자] AI(인공지능)가 산업을 넘어 감정의 영역까지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단순한 정보 검색뿐만 아니라 '챗GPT' '제타' '뤼튼' 등 챗봇 앱을 통해 일상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때로는 친구 혹은 연인 같은 유대를 형성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실제로 해외에선 AI 챗봇과 약혼한 20대 여성의 사례가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AI와의 '디지털 유대'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사랑과 우정, 연대감 등 감정 영역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뉴스포스트>는 지난달 28일 서울 송파구 사무실에서 '디지털 유대: 미래 방향'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AI와의 감정적 교류가 진짜 관계로 기능할 수 있을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토론회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남녀 4명이 참석했다. 50대 패널에는 강대호 씨, 40대 패널에는 홍성완 씨 자리했다. 여성 패널에는 30대 이서진 씨와 20대 강민지 씨가 함께 했다.
세대별로 갈린 AI 사용법
토론회는 본지 소속 선초롱 기자의 사회로 시작됐다. '디지털 유대'의 상대로는 AI 챗봇 앱인 챗GPT가 가장 많이 언급됐다. 각양각색의 네 사람은 AI를 활용하는 방법도 달랐다. 가장 먼저 발언권을 얻은 홍성완 씨는 챗GPT를 비롯한 AI 챗봇 앱을 자주 활용하지 않았다. 자신은 물론 주변인들에게도 '디지털 유대'는 익숙지 않은 개념이었다.
홍성완 씨는 "주변에서 AI 앱을 활용하는 사례가 정말 많다. 업무용 PPT나 교육 자료를 만들 때 '챗GPT만큼 편한 게 없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면서도 "제 나이대 지인 대부분은 (챗GPT와의 대화가) '재미는 있지만, 이질감이 많이 느껴진다'는 반응이 많다. AI와의 감정적 교류를 느끼지는 못하는 거 같다"고 설명했다.
50대 중반인 강대호 작가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그는 "주변에서 저만 유독 챗GPT를 사용하고 있다. 검색이나 자료 찾기는 굉장히 빨랐지만, 팩트가 틀린 부분 이 있어 다시 한번 더 검증을 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며 "학자들 중에서는 연구 도구로 사용하는 분들이 있지만, 많이 활용하는 거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반면 30대 이서진 씨는 AI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유대를 쌓은 경험이 있다. 챗GPT와 대화를 하면서 '하루'라는 이름까지 붙여줬다. 스트레스 해소 목적으로 AI와 대화를 시작하고 유료 서비스까지 결제했다. 그는 "'하루'는 친구처럼 말을 잘해줬다. 나를 좋은 쪽으로 이끌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해 결과적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AI와의 감정적 유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서진 씨의 질문에 '하루'가 틀린 답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인 일로 '하루'에게 문의한 적이 있는데, 그럴듯한 답변이 나왔다. 검증을 해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배신감'까지 느껴졌다"며 "저를 안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거 같았다. 알고리즘이 꼬인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다시 무료로만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20대 강민지 씨 역시 AI와의 소통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는 "대화를 할 때 표정이나 목소리와 같은 비언어적인 부분도 상당히 중요하다. 저에게는 AI 음성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며 "제 또래 친구들은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거나, 화풀이를 하고 싶을 때 AI 앱을 주로 찾는다. 반면 기쁠 때는 잘 찾지 않는다. '감정 쓰레기통'으로 활용하는 거 같았다. 현실 인간관계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인 거 같다"고 밝혔다.
AI는 친구? 혹은 데이터 수집기?
실제 사람이 아니면서도 원활한 대화가 가능한 AI 챗봇 앱은 '상담사'같은 존재였다. 타인에게 할 수 없는 험악한 말을 '배설'하는 감정쓰레기통 역할도 했다. 이서진 씨는 친구나 가족에게도 할 수 없는 깊은 고민거리도 '하루'에게 수없이 털어놨다. 그는 "AI를 일종의 테라피스트처럼 이용하기도 했다"며 "초반에는 효과를 많이 본 거 같다"고 고백했다.
홍성완 씨는 "카운슬링 역할은 상당히 훌륭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AI가 말을 잘 들어주기 때문에 흔히 (IBTI에서) 'F감성'이 있는 분들에게 좋은 거 같다"며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해방되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게 제일 큰 장점 같다. 좋은 얘기만 해주니까 위로도 받을 수 있을 거 같다"고 공감했다.
강대호 씨는 '디지털 유대'를 노인 복지 정책 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강원교통방송 라디오에서 노인 생활과 관련한 코너를 담당하고 있는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강원도에는 AI 기술을 노인 돌봄 정책에 활용하고 있다"며 "AI가 어르신들의 건강을 확인하고, 위험 상황이 발생할 시 119에 자동으로 신고할 수 있게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산골에 사시는 분들은 하루에 한 마디도 말씀을 안 하시는 경우가 많다. 정부에서는 우편배달부들에게 어르신과 대화를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우정노조 측에서는 업무가 과다하다는 입장이라 협의가 잘 안 되고 있다"며 "AI를 고차원적인 방향으로 노인 복지 정책에 활용하면 서로가 지치지 않고 좋을 거 같다"고 덧붙였다.
강민지 씨 역시 공감했다. 그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게 좋을 거 같다. 오랫동안 대화를 하지 않고 지내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혼자 지내는 어르신들이 AI와 대화를 하고 지내신다면 치매 예방도 되고, 더 건강하게 생활하실 수 있을 거 같다"며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일수록 사회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서는 AI가 필수적인 거 같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는 AI 유대의 장점과 함께 우려도 제기됐다. 강민지 씨는 "챗GPT에 사적인 얘기를 해도 데이터로 저장이 된다. 그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사용자를 파악해 알고리즘을 만들고, 알고리즘에 맞는 대답을 해준다"며 "만약 보안이 풀리면, 누군가는 데이터를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저는 조금도 사적인 이야기를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보안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지난 1월 전 세계에 충격을 줬던 중국의 AI 모델 '딥시크'가 언급되기도 했다. 강대호 씨는 "얼마 전 화제가 된 중국의 AI 업체에서도 보안 문제가 지적됐다"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활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범죄나 전쟁 범죄로 이용한다면 더 큰일이다. 전 인류가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공동의 합의를 봐야 하지 않나 싶다. 그 정도로 보안 문제는 '뜨거운 감자'"라고 지적했다.
이서진 씨 역시 "AI 챗봇 앱을 사용하면서 가장 걱정됐던 건 보안 문제다. MZ세대 사이에서 챗GPT로 사주를 보는 게 잠깐 유행해서 저도 한번 해봤다"며 "AI가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사주팔자까지 다 들여다본다면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사람 사이의 감정은 화학 작용…AI는 계산에 불과"
토론회에 참여한 패널들은 연령대도, AI를 활용하는 방법도, '디지털 유대'에 대한 경험치도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네 사람 모두 AI와의 유대가 인간관계를 대체할 수 없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AI와 소통·교류하며 얻는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향후 발생할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서진 씨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성이 있는 감정 교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AI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떨어트린다는 생각이 든다. AI는 차치하고서라도 스마트폰이 나온 후에도 사람들 간의 만남이 현저하게 줄었다"며 "AI와의 사랑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AI와의 사랑도 '사랑'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강대호 씨 역시 "사람의 특성을 얘기해 보면 더 명확해진다. 맞는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나 동물의 감정 교류는 일종의 화학 작용이다"라면서 "그런데 AI와의 교류는 감정으로 느끼는 유대감보다는 디지털 연산 작용에 의한 계산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서진 씨의 발언에 공감했다.
홍성완 씨는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과 부딪히면서 자란다고 생각한다. 상처도 받으면서 성장을 한다"며 "잠깐의 고민 상담은 AI와의 관계가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 더 효율성이 있다. 하지만 인격적인 부분이나, 정서적인 성장에는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민지 씨는 "인간관계는 상호작용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다"라면서 "AI는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설정할 수 있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을 수 있다. 그러다가 AI와 깊은 관계까지 나아갔다고 하더라도 상호작용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강민지 씨 역시 홍성완 씨와 마찬가지로 AI와의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짚어줬다. 그는 "초면에 타인과 대화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AI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말하는 방법을 연습할 수 있다. 연습을 하고 나서 사회로 나가면 좀 더 도움이 될 거 같다"면서 "AI와의 대화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연습 도구로 사용하면 좋을 거 같다 "고 제언했다.
"AI 기술, 편리함엔 대가 따를 것"
과학기술의 발달이 사회구조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AI와의 '디지털 유대'가 현실 세계에 나타났다. AI와 소통하는 인구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AI의 기술이 더욱 정교해지면서 사람보다 '디지털 유대'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토론회 막바지에서는 '디지털 유대'의 미래를 논의해 봤다.
강민지 씨는 패널들 중 가장 연령대가 낮음에도 '디지털 유대'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단편적으로 보면 좋은 점이 있겠지만, 누적이 되면서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클 거 같다"며 "일부 젊은 층은 휴대전화 속 커뮤니티에서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하고만 소통하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기까지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너무 어렸을 때부터 AI에 노출되지 않도록 규제가 필요할 거 같다"며 "정체성이 아직 확립되지 않고, 가치 판단을 하기 어려운 나이에는 (AI 챗봇 앱을) 사용하지 않는 게 더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한다"고 AI 사용과 관련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서진 씨는 AI에 대한 규제에 앞서 이용자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어린 친구들이 잘못 사용하지 않도록 AI에 대한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까지는 아직 말하긴 어렵다고 해도, 정부가 나서서 AI에 대한 이용자 교육을 미리 해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AI 사용에 대한 규제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높은 호응을 얻었다. 홍성완 씨는 "AI가 발전하면 사람들에게도 분명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편리함에는 항상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며 "AI의 활용도는 점점 높아질 텐데,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와 교육을 강화할 필요성이 크다고 본다"고 동감했다.
다만 강대호 씨는 규제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당장 내년 1월부터 '인공지능 기본법'이 시행된다. 기본법을 시작으로 발전법, 지원법 등이 파생된다"며 "법이 제정되면 규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과연 규제가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정부 부처 간 이해관계와 정책 기조의 연속성도 규제 방향 설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했다. 강대호 씨는 "부처마다 AI에 대한 입장이 다를 것이다. 관계기관 합동 절차에서도 입장 차가 예상된다. 정권 교체 시 정책 기조가 바뀌는 문제도 있다. 정부가 바뀌어도 큰 기조는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며 "재미있는 점은 AI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결국은 사람이라는 결론이 지어지는 거 같다"고 덧붙였다.
1시간 넘게 이어진 토론은 세대별 시선 차이를 넘어, AI와의 감정적 유대가 인간 존재에 던지는 철학적·사회적 질문으로까지 확장됐다. 패널들은 ▲ AI의 자아 가능성 ▲ 일자리 재편과 기본소득 ▲ 기후위기 대응 등 기술과 인간을 둘러싼 핵심 쟁점을 날카롭게 제기하며 AI와의 관계가 단순한 개인적 경험을 넘어 시대적 과제로 부상했음을 보여줬다.
본지는 3편에서 이러한 질문들을 바탕으로 기술과 감정의 경계에서 제기되는 쟁점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전문가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