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학교 객원 교수 허은영 박사 인터뷰
美, 광고 기반 챗봇 출시...구매 유도 우려
AI 리터러시 교육 강화...어린이·청소년 시급
AI, 창의성 대체 못해...기후위기 해결 기대도
스마트폰과 SNS 이후, 인간관계의 패러다임이 또 한 번 변하고 있다. 대화하고 위로받고 심지어 사랑에 빠지는 대상조차 더 이상 '사람'일 필요가 없는 시대다. 인공지능(AI)은 고립과 불안을 채우는 새로운 형태의 유대를 만들어냈고, 그 물결은 청년층에서 고령층까지 세대를 가로질러 퍼지고 있다. 인간을 닮은 기술이 감정적 공백을 메우고 있는 한편, 그 친밀감에 걸맞은 책임과 제도는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AI와의 친밀감이 인간관계를 대체할 수 있을지, 그 그림자가 사회에 어떤 무게로 드리울지는 이제 막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단계다. 본 기획을 통해 AI가 열어젖힌 관계의 미래를 다각도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인간이 AI와 감정적으로 교류하는 '디지털 유대'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AI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사연은 해외 토픽에서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챗GPT와 같은 AI챗봇 앱과 소통하는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사회구조의 분절화가 과학기술 발전과 맞물리면서 미래에는 '디지털 유대' 현상은 더욱 빈번하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사회적 변화에 국내 학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는 사이버감성연구소를 설립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나타나는 감성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해당 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에서 객원 교수로 재직 중인 허은영 박사는 사이버감성연구소에서 소셜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 등을 연구하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허 박사와 지난 18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AI와의 '디지털 유대' 현상의 현주소와 문제점, 발전 방향 등에 대해 싶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허 박사는 해외 선진국뿐만 아니라 국내 학계에서도 AI와 인간의 감정 교류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학계에서는 AI와 인간의 '디지털 유대'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나.
AI와의 '디지털 유대'는 갑자기 툭 하고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기존에도 (인간은) 디지털 공간에서 상호작용을 해왔다. 소셜미디어에서, 메타버스 등에서 상호작용들이 이뤄졌다. 세부적인 내용이 조금 다를 뿐, 기존 연구들이 계속 연결돼 이어져온 것이다.
국내에서도 AI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챗봇'과 관련된 연구들이 많다. 구체적으로 ▲ 챗봇에서 이뤄지는 대화에 대한 담화 분석 ▲ 챗봇과의 감정 교류가 인간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 ▲ 챗봇이 주는 정보에 대한 신뢰도 ▲ 챗봇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등이 연구됐다.
-대학 현장에서 AI와 '디지털 유대'에 대한 관심을 체감하고 있는가.
챗GPT와 대화하거나, 챗GPT에게 고민 상담을 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다만 학생들은 AI와의 '디지털 유대'보다 학업 수행에 더 관심이 많다. AI를 사용해 과제나 논문을 작성해도 되는지, 사용해도 된다면 (학교에서는) 어디까지 허용하는지 궁금해한다.
AI는 대학 내 가장 큰 고민거리일 것이다. 학교에서 여론은 반으로 나뉜다. 학생들이 직접 쓰지 않는 글은 전부 표절로 보고 AI 사용을 강하게 반대하는 여론이 있다. 반면 무조건 AI 사용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졸업 논문의 경우 아직까지는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더 많다고 보시면 된다.
-AI와의 '디지털 유대'는 장려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규제해야 하는 것인가.
'양날의 검'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됐거나, 소통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AI와의 교류는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팬데믹 기간 동안 사회적 고립이 심화하면서 AI와 소통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기술 발달과 서비스 다양화로 AI와의 소통은 실제 사람과의 대화만큼 정교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AI와 친구처럼 대화하고, AI에게 사랑에 빠지고, AI를 연인이나 동반자로 여기게 됐다.
한국보다 AI 챗봇을 더 활발하게 사용하는 미국에서는 최근 관련 규제 법안을 논의 중이다. 챗GPT가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는 사례는 정말 많은데도, AI를 맹신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감정적인 유대감까지 더해지면 AI에 대한 잘못된 맹신이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심리학계에서 AI가 주는 조언을 맹신하다가 정신건강이 악화하는 사례가 보고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거대 IT 기업들이 챗봇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기업들이 출시하려는 챗봇이 광고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기존 챗봇들은 구독형 서비스를 기반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광고 제품을 사도록 유도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광고 기반 베이스는 제품 구매를 유도하거나,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악용할 우려가 더 크다.
-AI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게 중요한 거 같다. 이를 위한 사회적, 제도적 방안이 있다면 무엇인가.
법적인 장치는 빅데이터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많은 개인정보들이 빅데이터로 활용되면서 차별적인 정보가 그대로 결과에 반영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 금융기관에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대출 심사를 했는데, 흑인들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왔다. 빅데이터가 학습한 정보가 인종차별적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결론이 나온 것이다. 개인정보 수집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어디까지 활용할지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아울러 AI 문해력 교육도 필요하다. 학교 등에서 진행하는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 교육을 AI 분야까지 확장해야 한다.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AI와의 감정적 교류를 어디까지 관리해야 하는지 등을 교육해야 한다.
-AI와의 '디지털 유대'는 향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필요한가.
기업들은 AI가 아동과 청소년, 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잘못된 정보나 신호를 주지 않도록 개발 단계에서 면밀히 고려해야 할 거 같다. 미국에서 챗봇에 중독된 청소년이 자살을 하는 사건이 있었다. 해당 청소년의 부모는 개발 단계에서 기업의 과실이 있었다며 거액의 소송을 걸었고, 기업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며 맞서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고립이 점점 심화하는 상황에서 챗봇 사용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이 점점 정교화하면서 사람들이 챗봇을 실재하는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점점 더 의존하게 되고, 중독에 빠질 수 있다. 이 부분도 개발 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점이다.
미국에서 발생한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워낙 기술을 잘 활용하고, 빨리 받아들이기 때문에 단점까지 배울까 봐 걱정된다. 챗봇을 장기간 사용했을 때 심리적·정서적으로 안 좋은 영향이 더 많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소셜미디어 중독도 문제인데, 챗봇 중독까지 이어지면 어떡하나. 해외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계기로 우리가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교육적 방안이 필요한 시기다.
본지는 지난달 말 각 세대를 대표하는 시민 패널들과 '디지털 유대: 미래 방향' 좌담회를 진행했다. 다음은 좌담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던진 질문이다.
- 인간이 AI와 감정적 교류를 할 수 있는 만큼, 미래에는 AI에게도 사람처럼 자아(自我)가 생길 수 있는지 궁금하다.
'AI에게 자아가 생긴다'라기 보다는, 사람들이 'AI에게 자아가 있다'고 믿는 거 같다. 기술이 점점 더 정교해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AI에게도 자아가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에게 자아가 생길 수 없다.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분야에서는 인간과 컴퓨터,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을 연구한다. 파라소셜 릴레이션십(Parasocial Relationship, 준사회적 관계)은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 등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유대감을 느낀다는 이론이다. 두 가지를 합쳐 인간이 컴퓨터와 준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많은 연구가 이뤄져 왔다.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사람처럼 느껴지는) AI나 로봇이 개발된 것이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었던 정서적·감정적 교류까지 AI가 대체하고 있다. AI의 일자리 대체는 더 빠르게 진행 중이다. 미래에도 AI가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일자리가 있을까.
인간의 창의성 분야는 AI가 대체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AI는 효율성을 높여준다. 효율성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예술, 창의성이 요구되는 분야는 AI가 대체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챗GPT로 이미지를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 지브리스튜디오 만화로 변환하는 작업이 유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 삼아 사용했지만, 한편으로는 저작권 문제로 거부감을 드러내는 반응도 많았다. AI 생성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과 관련해 관심도 높아졌다. 또한 AI를 사용한 광고에 대해서는 아직도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미 AI가 작사, 작곡, 그림, 소설,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작품에서 활용되고 있다.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작업도 AI가 대체할 수 있지 않나.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 예술작품은 수용과 소비가 중요하다. AI가 만든 소설이나 그림, 음악에 대해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 소비를 하지 않을 거 같다. 진짜 사람이 만들고, 직접 그린 작품에 대해 소비나 수요가 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 세계 사람들의 공통된 화두는 단연 기후위기다. AI 개발로 탄소 배출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반대로 AI를 통해 기후위기를 해결할 방안은 없나.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AI를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AI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공장 가동이나 건물 관리 시 에너지를 가장 절약하는 방안을 AI가 알려준다. 다수 지방자치단체에서 진행 중인 '스마트 도시' 사업도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목적이 크다.
AI 사용으로 엄청나게 많은 전기를 소모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다 보면 운영의 효율성을 통해 에너지 낭비를 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기후위기 문제도 AI를 활용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