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 “개인의 개별성에 초점을...집단으로 확대 말아야”
- 언론이 불쌍한 프레임 씌워...“표현이라도 긍정적으로 했으면”
- 상대 감정에 대한 이해와 배려 필요

바야흐로 벌레의 시대다. △급식충 △틀딱충 △맘충 △연금충 △한남충 △진지충 △지방충 △난민충 등 느닷없이 출몰하는 수많은 벌레(蟲)떼가 우리 삶을 좀먹고 있다. 최근에는 ‘오륙남’이나 ‘할매미’ 같은 변종도 등장한 형편이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말하는 사람에게 있어 말은 이미 형성된 사유를 번역하는 게 아니라 사유를 완성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에 앞서 생각도 없고, 말하는 동안에도 생각이 없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말은 사유를 완성하면서, 곧 사유 자체인 셈이다.

오스트리아 출생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에서 언어를 게임의 일종으로 봤다. 그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 안에서도 그 위계에 따라, 같은 낱말이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판의 졸(卒) 하나를 잃어버리면 옷의 단추 하나를 뚝 떼어 대신 사용하듯, 개별 낱말의 쓰임이 각 사회가 쓰는 언어게임판에 따라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층위의 삶을 긍정하면서도, 그 언어가 사용되는 규칙과 배경을 떠난 자아라는 개념은 허구라는 지적이다.

메를로-퐁티와 비트겐슈타인이 벌레가 들끓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모든 위계에 속하는 이들의 언어와 사유가 벌레로 가득 찬, 혐오 게임을 즐기는 매우 위험한 공동체”라고 진단하지 않았을까. 뉴스포스트는 이번 기획 기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비하표현’를 짚어보고 그 해결책을 들어본다. -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언론이 우리 세대에 ‘88만원 세대’, ‘N포 세대’ 등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이러한 세대 담론은 구성원들의 개별성을 무시한 것이며, 우리 세대의 실체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최정인(43)

3040세대는 포기한다는 것의 느낌이 안타깝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세대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은 불쌍한 세대로 낙인을 찍었다고 호소했다. (사진=픽사베이)
3040세대는 이들을 향한 88만원 세대, 3포 세대 등과 같은 표현에 대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세대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호소했다. (사진=픽사베이)

뉴스포스트가 만난 3040세대는 자신들을 지칭하는 △88만원 세대 △N포 세대 등에 대해 사회 구조적 문제를 특정 계층의 문제로 선을 그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들을 비하하는 △맘충 △꼰대 등의 표현에 대해서는 불쾌하지만, 그 언어가 나오는 배경에 대해서는 이해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본지는 중년 세대를 지칭하는 언어에 대한 3040세대의 생각을 들어봤다. 모든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서면으로 진행했다. 


생활고, 포기 프레임에 ‘불쌍한 세대’ 낙인


2000년대 후반 ‘88만원 세대’부터 2011년 ‘3포 세대’ 최근 ‘90년생’까지 언론에서는 꾸준히 청년을 하나의 세대로 묶어 얘기하고 있다. 

88만원 세대는 2007년 당시 20대 비정규직 평균 월급인 88만 원을 통해 청년들의 애환과 생활고를 표현한 말이다. 3포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의미다. 당시 88만원 세대, 3포 세대에 해당하는 청년은 중년이 됐다. 3040세대는 이러한 표현이 특정 세대에 대해 불쌍한 프레임을 씌운 것이라는 입장이다. 

최정인 씨는 “방송에서 88만 원 세대, N포 세대라고 하니까 주변에서도 우리를 그렇게 불렀다. 우리 세대에 불쌍한 프레임을 씌워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 같다”면서 “정작 우리는 그 안에 갇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배제됐다”라고 주장했다. 

이승재(45) 씨는 “포기한다는 것의 느낌이 안타깝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세대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라며 “이런 상황들은 표현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여겨진다. 말이라도 긍정적으로 했으면 싶은 개인적인 바람이다”고 말했다. 


“편견 언어 나온 배경 이해하지만 불편해”


중년세대는 혐오 표현을 들으면 불쾌하지만, 이런 표현을 쓰는 다른 세대에게 쉽게 충고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중년세대는 혐오 표현을 들으면 불쾌하지만, 이런 표현을 쓰는 다른 세대에게 쉽게 충고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3040세대는 중년을 혐오하는 ‘맘충’, ‘꼰대’ 등의 표현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하지만, 이런 표현들이 나오는 배경에 대해서는 이해한다고 말했다. 

김혜송(31) 씨는 “최근 몇 년 사이 별명처럼 프레임을 씌우는 단어가 늘어났는데 정보통신기술을 가장 잘 받아들인 10~30대가 편견 단어를 상대적으로 많이 만들어내고,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 시킨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어 “편견 언어로 불리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이 잘못됐거나 실수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왜 이런 단어가 나왔는지 이해를 하면서도, 너무 쉽게 사람을 판단해 그 틀 안에 가두는 느낌이 들어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김강기(31) 씨는 “세대별 편견·혐오 언어를 보면 찝찝하기도 하고 솔직히 한심하다”면서 “상대방에게 직접 그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을 하는 다른 세대에 대해 쉽게 충고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성연(42) 씨는 “삐뚤어진 시선으로 볼 수 있어서, 좋은 의미로 전달하더라도 왜곡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최근 들어 어린 세대가 예전보다 계산적이라는 느낌과 손해를 보면 안 된다는 강박증이 있는 듯한 모습을 접하게 되면서 안쓰러운 느낌과 불편한 느낌이 공존한다”고 털어놨다. 

하영민(37) 씨는 “같은 세대끼리도 편견 언어를 많이 쓰기 때문에 나 스스로 그런 편견 언어에 해당하지 않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크다”면서 “후배들에게 업무를 가르쳐주거나 조언해 줄 때도 ‘이게 꼰대 같은 발언인지, 정말 내가 꼰대인 건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개인의 문제, 일반화하지 말아야” 


이러한 편견 언어 사용에 대해 3040세대는 개인의 행동을 집단으로 확대해 일반화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편견 언어를 사용하기 전 상대방의 감정을 생각하는 배려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형윤(42) 씨는 “한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 개인의 행동을 문제 삼아야 한다. 개인이 속한 집단 자체를 묶어 편견을 만들어내고 일반화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언어는 시대를 대변한다고 한다. 남에게 말을 할 때 최소한 ‘내가 반대로 그 말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까’를 먼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황인환(38) 씨는 “타인이 가진 의견이 본인의 생각과 다를 때 감정이 상하는 것은 이해한다. 다만 그 다름을 본인 생각하는 옳은 방식으로 바꾸고 싶다면 상대방의 감정도 고려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연 씨는 “편견은 편견일 뿐이다. 편견을 두고 바라보면 바르게 그은 선도 삐뚤게 보이고 휘어진다”면서 “함께 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반대하기보다는 이해하려는 관점과 선한 마음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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