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환경 이해의 리디파인 시대
[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이대성] 기술은 노동 또는 노동수단의 총체이다. 모든 노동은 기술에 의해서 그 완성도가 결정되며 기술의 변화가 빠른 현대사회는 노동과 관계된 모든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된다. 수많은 노동경제학자들은 노동시장의 다양한 구성 요인으로부터 경제학을 연구해 왔으며 노동을 분야별로 나눈 직업 또한 해당 기술과 기능에 의해 영향력이 평가된다. 또한 동맹은 작은 단위의 팀에서부터 큰 단위의 국가적 동맹까지 기술적 지위에 의해 그 대상과 수준이 결정되며 업종·기업·직업 모두가 기술이라는 절대 권력에 의해 그 진로가 결정된다.
고졸 출신의 삼성반도체 임원을 지낸 양향자 의원은 필자와의 차담에서 “초격차 기술 하나에 국가의 명운이 걸려있다. 정부와 국회는 K-칩스법에 대해 데드라인을 넘기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언급한 적 있다.
지난 20대 대선 당시 필자가 운영위원으로 있는 글로벌 씽크탱크 조직에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을 초청한 적 있다. 당시 안철수 후보는 “현재의 국가는 초격차 기술 몇 개에 의해 명운이 결정된다"며 기술패권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필자는 삼성 등 세계적인 반도체 메이커를 대상으로 리소그라피(Lithography) 장비를 공급하는 반도체 공정 장비의 절대강자인 ASML(리소그라피 글로벌 리딩 기업)에 다년간 채용컨설팅을 진행해 왔다.
주로 FAE(Field Application Engineer), CSE(Customer Support Engineer) 등 엔지니어링 분야를 담당 했었는데, 역할과 책임을 규정한 R&R(Role and Responsibilities)을 보면 핀셋(Pincette) 채용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반도체 8대 공정중 ‘꽃’이라 불리는 리소그라피(웨이퍼에 빛을 이용하여 미세하고 촘촘한 회로를 담는 기술) 엔지니어는 반도체 전 (앞)공정에 대한 기술적 이해, 노광기의 주요 시스템 이해, 화학물질 반응 이해를 기반으로 채용과 직무수행이 이뤄졌다.
또한 ASML은 극자외선(EUV) 뿐만아니라 심자외선(DUV)분야까지 최근 소프트웨어 기술을 통한 시스템 고도화와 검수(Inspection) 기능의 고도화를 통해 광학기술의 선발주자인 캐논과 니콘을 압도하고 있다.
이제 리소그라피 시스템의 엔지니어는 리소그라피 기술의 진로를 예측·학습해 기술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효용가치가 낮은 엔지니어가 된다. 이들은 기계·광학·화학·소프트웨어·로봇자동화·데이터 매니지먼트 등 첨예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현장에서 발생되는 고도화된 트러블슈팅(Troubleshooting·고장에 대한 문제해결)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직업은 내가 담당하는 일의 기술적 완성도가 중요하며 해당 기술의 진로에 의해 노동자의 직업적 진로가 결정된다.
사무실에서 최고경영자(CEO)를 보좌하는 화이트칼라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행정과 사무환경의 인프라가 노트북, 계산기, 정보, 업무 시스템(ERP·SAP등)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 매니지먼트,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초고도화, 초지능화가 된 상황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데이터 매니지먼트를 활용한 마케팅, 인사, 홍보, 경영기획, 법률, 총무, 자산, 재무 등 CEO의 의사결정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주요 포지션 또한 해당 직업의 기술 및 기능적인 배경 없이는 선수로서 인정받기 어렵다.
디자인 또한 기술적 진보가 뚜렷한 분야이다. Sensei Gen AI는 어도비(Adobe)의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로 엔드 투 엔드 마케팅을 강화해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보좌하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포토샾, 일러스트, 인디자인, 3D디자인, 프리미어프로, 에프터이펙트 등 알고리즘 기반의 어도비 기술을 많이 활용한다. 인공지능 기반의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텍스트 프롬프트 또는 업로드한 이미지에서 고화질 콘텐츠를 생성하여 디자인 역량을 서서히 확대하고 있다.
특히 금융공학의 기술 발전으로 분초를 다퉈야 하는 금융, 투자, 자산 분야는 업종이 금융인지 IT(정보기술)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첨단 기술의 전쟁터가 돼 있다. 이를 증명하듯 글로벌 하이엔드(High-end) 전략컨설팅 펌인 맥킨지, 보스턴컨설팅그룹, 베인앤컴퍼니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시스템의 핵심인재 영입과 투자는 우선순위 0번에 들어갈 만큼 경영전략의 킹핀(Kingpin)이 된 지 오래다.
필자가 최근 2년간 채용컨설팅을 진행한 도시바(Toshiba)의 사례는 더욱더 그러하다. 2023년부터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도입된 중입자 암치료 시스템(암이 존재하는 위치를 개복하지 않고 피부 외부에서 중입자를 쏘아 초단시간에 치료하는 혁신적인 암 치료 기술)에 투입 되는 엔지니어를 채용하기 위해 도시바가 요구하는 조건은 매우 까다로웠다.
사회생활을 엔지니어로 시작한 필자 또한 다수의 논문과 전공서적으로도 해당 기술을 이론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2년간 두 명의 엔지니어를 채용하기 위해 국내외 내로라하는 기업의 약 850명에 가까운 엔지니어들의 이력을 검증했다.
중입자 암치료 기술의 독보적인 글로벌 리더인 도시바는 반도체 및 전자부품 업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정관리,공정기술, 유지보수 수준의 엔지니어가 아닌 경력년차의 고저와 관계없이 중입자 기술의 과거·현재·미래를 꾸준히 학습을 하고 이 기술의 진로에 대해 면접석상에서 관련 부서 팀장과 기술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수준의 엔지니어를 요구했다.
고객인 연세대와 도시바내 상사가 요구하는 대로만 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닌 중입자 기술의 진로와 함께 중입자 기술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즉 첨예한 4차산업기술 속에서 인공지능, 암, 로봇자동화, 중입자 엔지니어링을 꾸준히 학습하고 준비한 사람이 아니면 입직과 직무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까지 일의 범위는 조직, 고객이 정하거나 과거, 현재의 업무 규정과 역할에 대해 집중한 모습이다. 그러나 4차산업기술의 확산으로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면서 이제는 기술을 기반으로 직업을 선택하고 유지해야 하는 세상이다. 이제 직무는 기술적인 영향력이 더욱 커지게 되며 직무의 존폐와 변화속도 또한 기술변화의 속도와 그 궤를 같이하게 된다. 나아가 기업은 기술의 차이를 통한 차별화된 경쟁이 더욱 심화돼 이는 시장에서 표준화된 직무가 서서히 사라지게 되는 원인을 제공해 각 기업현장 기술에 맞는 직무가 각자도생으로 존재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은 4차산업 준비에 있어서 후발주자에 속한다. 그러나 로봇자동화는 세계 1위다. 로봇 자동화는 각 산업현장에서 진행되는 4차산업 기술변화의 핵심 요소로 이제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은 중소기업에서 다국적기업까지 오직 기술력에 의해 업종, 기업, 직업적인 진로가 결정된다.
땀, 철학을 논 할 만큼 노동의 가치는 크고 높다. 시대가 흘러 현재의 노동은 경쟁자를 앞서가는 수준보다 기술, 속도,평판(Reference)을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시대이다. 어느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든 원하는 시점까지 일하기 위해서는 조직만 믿고 일을 하는 것 보다 내 일(My Job)의 핵심 기술에 의해 나의 진로와 직업이 결정되는 시대이다. 즉 사무동, 공장동, 연구동, 영업현장 등 어디에 있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기술이 곧 나의 직업이 된다'라는 직업선택의 리디파인이 시급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다음 연재 계속)
1) 불투명한 기업의 진로
2) 직업 선택의 리디파인(Redefine) 시대
3) 근로 환경의 리디파인(Redefine) 시대
4) 진로 교육의 리디파인(Redefine) 시대
5) 채용 정책의 리디파인(Redefine) 시대
- [이대성 칼럼] ① 직업환경 이해의 리디파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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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성 칼럼]④ 진로교육의 리디파인 시대
- [이대성 칼럼]⑤ 채용 정책의 리디파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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