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물레방앗간이 있었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동안, 낙하하는 물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면 고즈넉한 달밤, 그 방앗간 안에서는 수줍은 연인들의 역사가 만들어지곤 했다. 여자들이 집밖을 자유롭게 나올 수 없었던 그 시절,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엄격한 유교사상이 지배하던 그 시절, 피 끓는 청춘을 달래기 위한 그들만의 풍속이 존재했
허 이사는 김한철 사장의 방북을 앞두고 슈퍼카를 렌트했다. 이태리제 티벤치도르라는 모델이었다. 이 차는 1년에 50대 한정 생산되었다. 50억원 약간 못 미쳤다. 그는 이 차를 경부고속도로 변에 있는 허름한 건물 앞에서 세웠다. 시동을 끄자마자 바로 커버로 덮어씌웠다. 위장한 것이었다.이 슈퍼카는 대한민국 빵체인점의 7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타센 베이커
조선시대의 기생들은 요부의 기질을 타고나야만 최고의 기생으로 칭송받았다. 그 중 경주에 관기로 있던 한 기생과 그녀에게 걸려든 순진한 선비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구전되면서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한양에서 내려온 젊은 선비는 부모의 덕에 꽤 넉넉한 노잣돈을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람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발길 닿는 곳 마다 관가에 방을 빌려 며칠씩 묵으며
루이 14세 태양왕의 업적 중에는 베르사유의 향락과 쾌락을 대대손손 세습시켰다는 불명예스러운 업적이 남아있다. 이 세습을 통해 왕정은 불행의 씨앗을 자손에게 물려준 것이나 다름없었다.루이 15세는 농후한 여인들에게 싫증이 나있었다. 성적 쾌락에 익숙해져 있는 여인들을 매번 만족시키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고, 영악한 여인들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왕의 침
9월 하순, 평양 일대에는 안개가 옅게 깔려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가는 평양 외곽의 들판을 썰렁했다. 인민들은 겨울을 날 생각에 절망을 하고 있었다. 긴긴 겨울을 나다보면 누가 죽어나갈지 아무도 몰랐다. 사랑하는 자식이나 부모가 죽어도 큰 소리로 슬퍼할 수가 없었다. 인민감시조가 따라붙어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지켰다. 시신을 광목으로 둘둘 말
문화적으로 성적인 모든 것에 금욕을 강요하는 집단들과 향락과 욕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추구하는 집단들이 있다. 종교적으로 강한 신앙심을 갖고 있는 아일랜드의 비그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천주교를 신봉하며 성인이 되어서도 늦게 결혼하고 제한적인 엄격한 금욕의 생활을 한다고 한다.이들 중에는 독신으로 생활하며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남녀가 30% 정도에
장 부장은 불법 리베이트에 대한 중압감과 양심의 가책으로 투신한 것이었다. 방송사 KMG 김한철 사장은 문상을 갔다. 이날따라 날씨는 구질구질해서 재수에 옴이 붙을 것만 같았다. 어디선가 뭔가 터질 것만 같은 그런 날이었다. 김 사장은 영정 앞에서 일어나 부인에게로 서너 걸음 옮겨 갔다.부인은 남편의 자살로 거의 실성한 상태였다. 병원에서도 안정시키라고 했
인터넷을 통해 외설스럽고 야한 사진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청소년들은 그러한 퇴폐적인 자료들을 아무런 제재 없이 손쉽게 접하고 있다. 이러한 실태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의 무분별한 성 경험과 충동적인 성 범죄를 부추기고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한창 성에 호기심이 생길 나이의 청소년 성교육을 등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이럴 진데 ‘
다음날 한국미디어그룹의 패싸움 뉴스는 신문, 방송으로 확대되었다. 심지어 지하철 무가지들까지 “KMG 사원들, 리베이트 놓고 패싸움 벌여” 기사를 톱으로 올렸다.무가지도 불티나게 가져갔다. 이 바람에 무가지들은 광고가 계속 밀려들어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여기다가 검찰이 KMG 대치동 건물을 시공한 MK건설을 압수수색했다는 소식이 퍼지
동선일보가 KMG 비리를 특종으로 보도했다. KMG 방송 사원들이 리베이트를 놓고 난투극을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세상은 다 썩어도 언론만은 청정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설상가상, 정권의 실세가 개입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정치권도 납작 엎드려 숨을 죽였다. 벌써 임기 중반을 넘어선 김남선 정권은 이 사건으로 휘청거렸다.조합장 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나와는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씩 친해지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없애는 것, 흥미로운 일이다. 사교성이 좋은 사람은 어딜 가나 환대를 받고, 소극적인 사람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사교성이 뛰어난 사람이길 바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 즐거
동선일보 윤 기자는 한국미디어그룹 KMG의 난투극 취재를 마치고 현장 사진을 찾아 나섰다. 이런 모럴해저드가 방송사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묵과 할 수가 없었다. 피투성이 KMG사원들이 맨 처음 이송된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사회부장 김남효였다.“예. 부장님, 윤 기잡니다.”“아. 윤 기자 지금 어딘가?&
오랜 시간동안 여자들은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 사회적으로 동등해지려고 노력해왔고,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등 사회 각층에 여성들의 역할이 상당히 커졌다. 그런 연유에서 인지는 몰라도 요즘 여성들은 자신의 파워를 자랑하기 위해 점점 남성화 되는 경향이 있다. 성욕에 있어서도 만찬가지다. 여전히 세계의 모든 문화권에서
한국미디어그룹 KMG 김한철 사장은 ‘손은지’라는 이름 석 자에 그만 흐물흐물 무너졌다. 정권 실세를 믿고 김 사장은 KMG를 좌지우지하면서 자기 야망을 키우는 데만 몰두하고 있었다. 기둥뿌리가 썩어 주저앉든 기왓장이 깨져 물이 새든 아무 관심이 없었다. 비자금 만들고 색(色)을 즐기는 데만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방 국장은 이쯤
16세기 유럽에서의 목욕은 손님 접대라는 묘한 연결고리가 있었다. 모든 남녀가 함께 목욕을 하면서 활발한 사교활동이 이뤄졌기 했기 때문이다. 이 공동목욕탕 문화는 욕실에서 손님을 맞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아무리 지체 높은 귀부인이라 해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목욕 하던 중에 손
10여 년 전 사람들을 쇼킹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장국영의 자살사건으로, 자살 그 자체도 이슈가 됐지만 그보다도 그가 양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화제가 됐다. 이처럼 오늘날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양성애자의 수는 의외로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거에도 양성애자가 존재하였을까. 그렇다. 분명 조선시대에도 있었으
대한민국 방송사 한국미디어그룹 KMG 김한철 사장과 손은지 양과의 섬씽은 이렇게 출발했다.지난 가을 연예인 전속사 박희락 사장이 김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개 전속사 사장이 한국미디어그룹 사장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삼성전자에 부품을 납품하는 사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전화를 거는 것과 같았다.평소 못 보던 번호가 뜨기에 잠깐 망설이다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동녘이 조용히 밝아오고 있었다. 그럴수록 방 국장은 주체할 수 없이 가슴이 벌-벌-벌 뛰었다. 이 사건이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숨이 턱 막혀 버렸다.새벽 6시, 시동을 걸었다.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했지만 병원에서 머물 수가 없었다. 김 사장이 출근하면 바로 자기를 찾을 게 뻔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인데 사실대로 밝히는 것이 사태해결에 도움
승합차에 타고 있던 성수동 막내파 깍두기들은 시그널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폭력청부가 들어오면 주문대로 손을 봐주는 것이 주업이었다. 김 대장은 깍두기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었다.“얘들아, 내 말 잘 들어라잉. 첫째는 무기는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된다. 알겄냐?”“합”대답이 승합차 지붕이 들썩거릴 만큼
우리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녀 혹은 그가 느끼는 성적 쾌감을 명확히 알 수는 없다. 남자가 성관계를 가졌을 때 느끼는 쾌감과 여자가 느끼는 쾌감은 어떤 상상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호기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진 남자라도 자신과 관계 중인 여성의 느낌을 100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다. 반대로 여자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