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아청년회 장세일 회장 전격 인터뷰
“팬데믹 속 농인, 비장애와 장애 사이 껴 있는 샌드위치”
“치료 지연으로 농인 사망...대구서 겪은 1차 대유행”
“수어통역 사업, 국가가 나서야...처우도 함께 개선”
모든 인류가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 채 처음 마주한 재난(災難). 전례 없는 재난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할수록 더 잔인하게 다가왔다. 개인의 노력이나 정부 정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제적 위기에 처한 사람들. 삶 전반의 균형이 깨진 채 고립돼 잊혀가는 사람들. <뉴스포스트>는 팬데믹 속 사회적 약자가 돼버린 그들의 이야기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별님·김혜선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는 온 국민에게 재앙을 불러다 줬지만,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했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생계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코와 입을 가리는 마스크가 일상화하면서 표정으로 전하는 의사 표현은 더욱 어려워졌다. 수어통역 없는 온라인 강의, 면접 등은 청각장애인 청년들의 원활한 사회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지난 18일 팬데믹 속 청각장애인 청년들의 고충을 듣기 위해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 카페에서 한국농아청년회 장세일 회장를 만났다. 평소 같았으면 손님들의 발걸음으로 부산스러웠을 주말 이른 오후 시간대였지만, 감염병 여파로 카페는 비교적 조용했다. 그는 인터뷰 동안 청각장애인들이 코로나19 장기화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수어통역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현장에도 통역이 필요했다. 임동초 수어통역사가 자리에 함께해 청(聽)인인 취재진과 장 회장을 연결해줬다. 장 회장은 “팬더믹 상황에서 농(聾)인들은 의사소통을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 역할을 수어통역사가 해준다. 하지만 농인들은 수어통역사를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상황이 정말 많았다”며 “언론에서는 수어통역사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손뼉 치지만, 실생활이나 의료·법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족하다”고 전했다.
팬데믹 시대의 청각장애인
장 회장은 충남 예산에서 농통역사로 일한다. 농통역사는 수어가 능숙하지 못한 농인과 수어통역사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예산으로 오기 전 장 회장은 1차 대유행의 중심지였던 대구에서 2019년부터 올해 4월까지 거주했다. 팬데믹을 누구보다도 온몸으로 겪은 그는 “지역 병원을 가도 수어통역사가 없어 검사를 받지 못했다. 검사가 필요한데도 수어통역사 없어서 의사소통이 잘 안돼 제가 확진자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었다”며 “(집단 감염 발발) 2달 후에야 검사를 받았는데, 그때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대구 지역에서 급격하게 환자가 증가하면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는 장 회장은 실제로 의사소통 문제로 치료 시기가 늦어져 사망한 농인 확진자를 목격하기도 했다. 병원에서 응급 통역을 부탁해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현장에 갔으나 병원 측에서는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이유로 치료를 미뤘고, 해당 환자는 결국 사망했다. 장 회장은 임시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1차 대유행을 피부로 겪었던 장 회장은 팬데믹 속 청각장애인을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 껴 있는 샌드위치’라고 비유했다. 비장애인 그룹에 들어가기엔 의사소통 지원이 안 돼서 고통을 겪고 있으나, 지체·시각장애인 그룹에 비하면 청각장애인들은 신체적으로 자유롭다는 이유로 각종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지원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누구나 코로나19가 의심된다면 어렵지 않게 검사받을 수 있지만, 청각장애인에게는 이마저도 어렵다. 장 회장은 감염 의심 농인을 위한 수어 통역 현장 서비스가 필요하고 강조했다. 그는 “처음 갔을 때는 의사소통이 안 돼서 검사를 거절당했지만, 이제는 자주 검사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진 덕에 제가 혼자 가서 받는다”며 “수어 통역사가 관리소마다 한 명씩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전했다.
필담 등 기타 의사소통 방식을 활용하면 되지 않냐는 반문에 장 회장은 응급상황을 예시로 들며 반박했다. 그는 “비장애인 성인들도 몸이 아픈 상황에서는 필담을 나눌 수 있겠는가. 농인들도 똑같다”며 “몸이 아픈 상황에서는 환자가 편한 언어를 사용하는 게 제일 좋은 거다. 의료진의 언어 선택에 맞출 수는 없는 거다”라고 지적했다.
비수도권은 더욱 열악
온 국민을 고통에 몰아넣은 팬데믹이 청각장애인 인식 개선에 의외의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장 회장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이전인 2019년보다 수어통역 서비스가 일부 확대됐다. 실제로 코로나19가 발발한 지난해부터 정부 브리핑과 공영방송 저녁 메인 뉴스에 수어통역이 제공됐다. 하지만 중앙을 벗어나면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서울 등 수도권과 비교해 비수도권 지역의 수어통역 사업은 열악하다.
장 회장이 거주했던 대구 지역만 하더라도 일일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이 지원된 것은 나중 일이었다. 지역 내 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의 끊임없이 팩스 민원을 제기한 덕에 이뤄졌다. 장 회장은 “서울은 예산도 많아 많은 민원을 해결해 주고 있다. 하지만 비수도권 수어통역 사업은 지자체 예산 형편에 따라 시행 여부가 달렸다”며 “재난 상황에서는 지자체에만 맡기지 말고, 중앙 차원에서 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회장이 거주하는 충남의 경우 1차 대유행 당시 대구보단 상황이 양호하지만, 역시 부족하다는 게 당사자의 설명이다. 그는 “농인이 필요하면 영상 통역을 지원한다던가 여러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면서도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상 서비스는 효용성이 많이 떨어진다. 농인이 아파서 누워 있는데, 거기서 기기를 들고 영상을 보는 건 불편하다. 이 때문에 수어통역사 현장 지원이 가장 좋다”고 강조했다.
열악한 지자체의 현실만이 청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게 아니다. 수어통역사에 대한 낮은 인식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수어통역사의 처우는 영어 등 기타 외국어 통역사들보다 현저히 낮다는 게 장 회장의 설명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전염병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통역사를 지원하고, 임금 역시 다른 외국어 통역사와 같은 수준이다.
장 회장은 “코로나19 지원센터에 수어통역사 파견 시 보수 지급이 어떻게 되냐고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다. 수어통역사는 1회당 5만 원을 주는데, 다른 외국어 통역사는 1회당 40만 원을 준다는 것이다. 동등하게 수준 향상이 필요하다”며 “미국 농인에게 물어봤는데, 거기서는 코로나19가 발발했을 때 수어통역사 파견 시 정부가 다 지원을 한다. 다른 외국어 통역사와 수어통역사의 보수 체계를 보니 동등한 수준이다.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저는 청인들과 함께 살고 싶은 농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어통역사에 대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어통역사는 일반적인 대화를 넘어 고급 언어적 기술이 필요하다. 법원, 의료 등 전문 용어를 다 알아야 한다. 훌륭한 직업으로 존경받아야 한다”며 “수어통역사 없이 농인 스스로 헤쳐나가기엔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이 존중받았을 때 농인의 인권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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