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대학동 고시촌 자리 잡은 5060세대 1인 가구
감염에 대한 걱정보다 일자리 감소가 가장 큰 어려움
코로나19 여파로 생존 서비스 제한... 사각지대 놓여
모든 인류가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 채 처음 마주한 재난(災難). 전례 없는 재난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할수록 더 잔인하게 다가왔다. 개인의 노력이나 정부 정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제적 위기에 처한 사람들. 삶 전반의 균형이 깨진 채 고립돼 잊혀가는 사람들. <뉴스포스트>는 팬데믹 속 사회적 약자가 돼버린 그들의 이야기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갑갑해서 나와 있어요. 더위는 밖이나 고시원 안이나 차이도 없고, 당장 일자리도 없어 답답하니까...”
지난 14일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의 한 슈퍼 앞에서 만난 민병준(56)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일자리가 줄어 1년 가까이 일을 쉬고 있다며 담배 두 개비를 연달아 피웠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의 일상을 뒤바꿨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전염병보다 일자리 감소,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상황이 더 치명적이다. 쪽방촌, 고시원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의 경우가 그렇다. 무료 급식시설, 생활시설, 의료서비스 등 이들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서비스들이 중단됐기 때문. 최근 제한적으로 이용이 가능하게 됐으나, 언제 다시 중단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졸인다.
이날 뉴스포스트는 ‘신림동 고시촌’으로 불리는 대학동 일대를 찾아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고시촌 주민의 주거 실태를 살펴봤다.
서울 관악구 대학·신림동 일대는 고시 공부를 하는 수험생과 학원들이 즐비해 ‘고시촌’으로 불렸다. 지난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되면서 고시생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50~60대 중장년 1인 가구가 자리 잡았다.
민 씨는 “5년 전만 해도 학생들이 많아서 방을 구하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방이 남아돈다”라며 “장사도 안돼 가게도 망하고 거리도 다 죽었다”라고 말했다.
10년 전 지인의 일자리 소개로 이곳에 터를 잡게 됐다는 민병준 씨는 코로나19 이전부터 공사장 일용직 일을 해왔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새벽부터 인력 사무소에 나가봐도 일자리가 없어 끼니는 이틀에 한 번 무료급식소를 이용한다.
고시촌 언덕은 오가는 차들도 속도를 줄일 만큼 경사가 가파르다. 민 씨는 고시촌의 가장 높은 곳, 관악산 자락에 위치한 보증금 없는 월세 18만 원짜리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다.
한낮 기온이 34도에 달하는 날씨. 고시촌 초입부터 민 씨의 고시원에 가기 위해 15분가량 언덕길을 오르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고시촌의 끝, 관악산 산자락에 닿아서야 고시원 건물이 나왔다. 민 씨는 현재 사는 곳이 싼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2018년 발표한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 조사’를 보면 전국 고시촌·고시텔의 한 달 임대료는 평균 33만 4,000원이었다. 대학동 고시촌의 월세는 평균 18~20만 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저렴한 수준으로 자연스럽게 주거취약계층이 모이게 됐다.
민 씨가 거주하는 고시원에는 1층 4명, 2층 3명 등 총 7명이 살고 있으며, 길게는 18년까지 오래 머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방은 다닥다닥 붙어있었으며, 각 층에 하나씩 공용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었다. 음식은 해당 층의 공용 냉장고를 이용해야 하며, 지하에 있는 공용주방에서 음식을 조리한다.
민 씨의 방 양쪽 끝에는 각각 행거와 책상이 있었으며, 가운데 이불을 펴고 민 씨 한 명이 눕자 발 디딜 공간도 없었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은 위생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어 열악한 주거 환경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주거취약계층은 기저질환을 지닌 경우가 많아, 코로나19 감염 시 고위험군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특별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밀집도가 높은 고시원은 거리두기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위생시설도 열악한 곳이 대부분이다.
민 씨는 “월세가 30만 원인 원룸에는 방 안에 화장실이 있지만, 고시원은 방만 내 공간이고 화장실과 주방은 공용으로 이용한다”라며 “이 시국에 공용 화장실이나 주방 등 공동 사용 공간은 불안하지만, 월세를 10만 원이나 더 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짧은 장마가 끝나고 이어진 폭염은 재난으로 지정돼 정부에서는 에어컨이나 선풍기 등 냉방 기구를 틀고 바깥 활동을 피하라는 예방수칙을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누울 만큼의 공간만 존재하는 고시촌 주민들에게는 지키기 쉽지 않은 일이다. 선풍기와 손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나고 있지만, 찜통더위에는 무용지물이다.
민 씨는 고시원에 가기 위해 올라야 하는 가파른 언덕도, 좁은 집도, 무더위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호소했다.
그는 “방은 낮에도 컴컴하고 갑갑해서, 날씨가 더워도 밖에 나와 햇빛도 쐬고 시원한 휴대폰 매장에 들러 쌍화차를 타먹고 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힘든 건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가 통 없다는 것이다. 새벽부터 인력 사무소에 나가봐도 일이 없어 막막하다”라며 “배달 일이라도 해볼까 싶지만, 포화 상태고 오토바이도 없어 사실상 일을 전혀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 답답하다”라고 토로했다.
민 씨는 생계 문제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보 소외 또한 겪고 있었다. 최근 55~59세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예약이 있었지만 민 씨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그는 본인이 접종 연령에 해당한다는 사실도 몰랐으며, 예약 날짜와 시간, 방법 등도 알지 못했다.
민 씨는 “얼마 전까지 TV가 없어 소식을 알지 못했다. TV도 이틀 전 주워온 것이다”라며 “접종 예약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라고 물었다. 예약 일시를 안내하고 휴대폰으로 사이트에 접속해 예약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자 “복잡해 보인다. 우리 연령대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힘들겠다”라며 체념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자 정부는 국민들의 이동을 막는 가장 원초적인 조치를 강화했다. 그렇게 민 씨는 3평짜리 고시원 방에 격리된 채, 평범한 일상이 중단됐다. 일자리를 잃은 후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만 틀어박혀 보내며 대인관계도 맺지 않는다. 소위 코로나 외톨이다. 팬데믹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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