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기본적으로 관종...공동체 없이 예술도 없어
코로나19 이후 관객들의 박수와 참여가 없어진 게 아쉬워
소통의 불씨 지피기 위해 오페라 등 타 장르와 융합 노력

모든 인류가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 채 처음 마주한 재난(災難). 전례 없는 재난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할수록 더 잔인하게 다가왔다. 개인의 노력이나 정부 정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제적 위기에 처한 사람들. 삶 전반의 균형이 깨진 채 고립돼 잊혀가는 사람들. <뉴스포스트>는 팬데믹 속 사회적 약자가 돼버린 그들의 이야기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말이 사라진 시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통이 줄어들면서, 어느새 언버벌(unverbal) 일상이 익숙해졌다.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과 치열한 이해득실이 오가는 생업 전선, 그리고 낭만으로 가득했던 대학로 등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대화는커녕 한 번의 ‘작은 헛기침’조차 우리의 편도체를 자극하는 스트레스 요소로 작용하는 시국이다.

마임팀 '마블러스모션' 소속 마임이스트들과 동료들이 무대 연습 영상을 보고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마임팀 '마블러스모션' 소속 마임이스트들과 동료들이 무대 연습 영상을 보고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무언극(無言劇)인 마임(mime)은 이런 소통과 대화가 단절된 시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마임이스트들은 26일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마임이란 예술로 소통과 연대, 그리고 공동체 정신의 가치”를 표현하겠다고 말했다. 무언극을 통해 말 없는 예술로 말 없는 위로를 건네겠다는 설명이다.

이날 뉴스포스트는 서울 도봉구 소재 연습실에서 마임이스트들을 만나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마임이란 예술이 전하는 위로와 연대의 의미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해 진행했다.
 


“마임이스트는 침몰하는 타이타닉의 바이올리니스트”


뉴스포스트 취재진이 연습실을 방문했을 때 마임팀 ‘마블러스모션’과 동료들은 오는 11월 무대 준비에 한창이었다. 우리나라 판소리의 창(唱)과 마임을 융합해 꾸미는 무대였다. 창에 맞춘 마임이스트들의 무언의 몸짓이 연습실에서 아우성치고 있었다. 마임이스트들은 현장에서 파도가 됐다가, 나무가 됐다가, 아귀(餓鬼)가 됐다.

마임(mime)의 기원은 기원전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임의 어원은 그리스어 미모스(mimos)다. 미모스는 ‘흉내내다’, ‘모방하다’란 뜻이다. 마임이 인간이나 동물, 사물의 행동을 모방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썩 이름을 잘 지은 셈이다.

백승환 마임이스트가 코미디 마임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백승환 마임이스트가 코미디 마임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마블러스모션’ 소속 백승환(34) 마임이스트도 이날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서울예대에 진학한 스무 살 이후 마임의 매력에 푹 빠져살았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백승환 마임이스트는 학과 수업보다 서울예대 마임 동아리 ‘판토스’ 활동에 열성이었다. 그는 올해로 15년째 마임이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백승환 마임이스트는 “만화가가 되고 싶어 디자인학과에 지원했지만, 진학한 뒤에야 디자인학과가 그림을 그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방황하던 중 ‘판토스’를 알게 됐고, 이후 마임이스트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 현대 사회에서 마임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국, 전염병 우려에도 불구하고 마임 무대를 이어가야 하는 당위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백승환 마임이스트는 “예술가는 태생적으로 ‘관종’이고, 마임이스트도 그렇기 때문”이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마임이스트를 포함해 모든 예술가들은 ‘관종’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인정과 소통이 없는 예술은 의미가 없다”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현장에서 관객들의 박수와 참여가 없어진 게 마임이스트로서 가장 아쉽다”고 했다.

이어 “팬데믹 초기에는 설 무대가 없어 1년 동안 방황했지만, 이후 소통이 단절된 사회에 무언극의 마임으로 관객들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을 돌려주고 싶었다”면서 “시민분들께서 마임이란 예술을 재밌게 보시면서 위로를 받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임으로 인간의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정훈 연출.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마임으로 인간의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정훈 연출.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마임 무대 연출가인 이정훈(49) 마임이스트는 전염병 시국일수록 ‘마임’이란 예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폭정을 일삼는 왕과 때로는 신까지 조롱하며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무언극의 정신으로 연대의 가치를 알리겠다는 설명이다.

이정훈 마임이스트는 “마임은 인간의 몸짓만으로 원론적인 이야기를 던지는 예술”이라면서 “언어는 때로 진실을 가리지만, 몸짓은 항상 진실하다”고 마임 예술의 가치를 말했다. 그러면서 “마임으로 소통이 단절된 팬데믹 시국에 인간이 나아가야 할 희망과 연대의 가치를 ‘말없는 노래’로 표현하겠다”면서 “침몰하는 타이타닉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코미디 마임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말한 이명찬 마임이스트.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코미디 마임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말한 이명찬 마임이스트.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마블러스모션’ 소속 이명찬(35) 마임이스트는 “몸짓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표현하는 마임은 한계가 없는 가장 순수한 예술 형태”라면서 “때론 신을 비판하고, 직접 신이 되기도 하는 마임이스트로서 팬데믹 시국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을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조금 더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오페라와 뮤지컬, 판소리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과 융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늦은 시간까지 무대 연습을 이어나간 마임이스트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늦은 시간까지 무대 연습을 이어나간 마임이스트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이미 많은 마임 무대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취소되거나 기약 없이 미뤄진 상황. 그럼에도 이날 낮 2시부터 이어진 이들의 연습은 취재진이 인터뷰를 마치고 연습실을 나선 저녁 6시까지 이어졌다.

백승환 마임이스트는 “4단계 격상 전까지만 해도 소규모 공연은 가능했지만, 지금은 공연이 거의 다 취소된 상황”이라면서 “하지만 비대면으로라도 관객들을 만나 마임이란 예술로 소통의 불씨를 지피고 싶어 무대를 준비한다”고 고된 연습의 이유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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